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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철 Aug 22. 2023

교실은 지식의 전달장이 아닌 삶을 연습하는 작은 사회다

지혜로운 학생을 길러내기 위한 지식의 활용

우리는 종종 단어의 의미가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유목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식과 지혜를 같은 선상에 두고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물론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합니다. 모두가 지식을 가지고 싶어 하고, 또 지혜로운 사람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꼭 지식이 있어야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 같고, 지혜로운 사람은 응당 지식이 많은 사람일 것 같습니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

그런 관점에서 지식과 지혜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꽤나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지식은 교육이나 경험을 통해 배운 정보들의 축척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는 학습하고 경험함으로써 또는 누군가에게 전해 들으며 배운 모든 정보를 의미합니다. 지혜는 지식보다는 포괄적인 의미로 좋고, 옳으며, 진실한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의 품성입니다. 


즉, 지식은 말과 글을 통해 배울 수 있지만 지혜는 말과 글을 통해 배울 수 없으며, 지식은 머리에 존재하고 지혜는 마음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삶으로 무르익는 것으로 삶에서 우러나옵니다. 영국의 음악가인 마일스 킹턴은 "지식은 토마토가 과일이 아님을 아는 것이고, 지혜는 과일 샐러드에 토마토를 넣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식은 알고, 지혜는 이해합니다. 


저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지식이 많은 학생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학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지혜는 기술과 같아서 자꾸 사용할수록 개발되고 내재화됩니다. 그래서 현실과 같은 학습환경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혜로운 학생을 길러내는 교육환경은?

독일의 학교, 특히 빌레펠트 실험학교나 헬레네 랑에 학교와 같은 진보적인 학교에는 교실이 따로 없습니다. 그냥 생활공간 자체가 교실이 됩니다. 심지어 100명의 학생들이 한 공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 공간은 마치 사회를 닮았습니다. 작은 칸칸을 나누어 아이들을 나눠놓고 각자의 책상과 의자를 정해주고 거기에 앉아있어야 할 것 같은 교실이 아닙니다. 책 읽는 공간이 있으면 누워 있는 공간이 있고, 요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공작을 위한 공간이 마련됩니다. 문과 벽으로 나눠있는 것이 아니라 책장과 가구로 파티션 되어있을 뿐 모두 하나의 공간입니다. 이러한 공간을 '폴리스(POLIS)' (작은 사회)라고 부릅니다. 


이번 여름 방학에 뉴질랜드 특수교육을 탐방하고 온 후배를 만나 뉴질랜드의 교육은 어떤지 물었습니다. "어떤 게 가장 인상적이야?" 그랬더니 후배가 하는 대답 "다른 것도 다른 건데, 교실에 책상이 없는 게 참 신기하더라고요" 뉴질랜드의 특수교육에는 책상이 없다고 합니다. 독일의 사례를 배웠던 것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독일 교실의 독서공간


그러면서 뭔가 마음에 울림이 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머리의 한쪽에서 '너 뭐 놓치는 거 없니?'하고 물어옵니다. 아하! 내가 키워내고 싶은 학생은 지식이 많은 학생이 아니라 지혜로운 학생인데, 내 교실에는 여전히 책상이 있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것과 뉴질랜드의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내 교실에는 그걸 적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지식은 가득하면서도 지혜는 없는 내 모습에 여전히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한국의 전형적인 교실

교실이 수업시간에 바르게 앉아 교과서를 통해 지식을 배우기만 하는 곳이 아니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 역동적인 공간이라면? 작은 사회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합니다. 2학기가 되면 교실 배치를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해보아야겠습니다. 한국의 교육에서 당장 개별 책상과 의자를 치워버릴 수 없겠지만, 내게 주어진 66제곱미터의 공간을 작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변화를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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