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교사라는 직업을 부러워하는 가장 큰 이유, 여름과 겨울에 방학이 있다는 것인데요. 그 좋은 방학을 이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교직 20년 차에 접어들면서 보니 이제 몸도 자연스레 적응이 되었는지, 학기말이면 체력이 거의 바닥난 듯한 느낌도 많습니다. 교사들끼리는 “몸이 힘들어지는 걸 보니 방학할 때가 되었나 보다”라는 말도 하지요.
나약하고 배부른 소리라고요? 그러지는 않습니다. 학기 중에 얼마나 진심으로 아이들을 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일반 직장인의 경우 업무가 대체로 예측이 가능하고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월간, 주간, 일간 업무 계획이라는 것도 있고요. 자기가 일의 양과 범위를 어느 정도는 당기고 밀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혀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주당 수업시수라는 건 정해져 있지만 이 조차도 아이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나의 개인 사정에 따라 미루거나 당길 수 없습니다. 아이들과 관련된 일은 더욱 그렇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을 상담하는 일이나 돕는 일에 우선을 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영혼을 갈아 넣는다고 합니다. 응당 그래야 하고요.
방학을 할 때 제가 꼭 아이들에게 잊지 않고 하는 부탁이 있습니다. (명령에 가깝습니다.) 그건 바로 "오늘 헤어지는 이 모습 그대로 다시 만나기"입니다. 살이 좀 쪄서 오는 건 괜찮습니다.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던 아이들을 한 달이나 못 본다는 것은 꽤 큰 변화이기 때문에 저는 꼭 이 부탁을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약속을 잘 지킵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20년 가까이 여름과 겨울에 방학을 반복하다 보니 방학식 때 분명 보았던 아이가 개학 때 보이지 않는 불상사도 있었습니다. 그런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보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부탁합니다. 아니, 사실 기도에 가깝습니다.
방학 중에는 깜짝 만남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모르는 저만의 숙제입니다. 학기 중에는 반 아이들 모두에게 골고루 사랑을 주어야 하는 책임 때문에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아이들을 살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아이에게는 비밀로 하고 부모님과 약속을 한 뒤 아이들을 찾아갑니다.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와 집에서 만나는 아이는 참 많이 다릅니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찾아낼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 비밀을 알고 나면 개학 후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가 달라 보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방학에는 연수가 있습니다. 연수는 크게 자격연수와 직무연수로 나뉘는데 자격연수는 일정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연수로 1급 정교사 자격연수가 대표적입니다. 물론 그다음 승진의 결과에 따라 교감 자격연수와 교장 자격연수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직무연수는 교사라는 직무를 잘 수행하기 위한 다양한 연수를 포함합니다. 학기 중에 이루어지는 직무연수는 주로 온라인 방식인데 이론적인 내용이 많다고 하면 방학에 진행되는 연수는 주로 실기 중심으로 활동적이고 재미있는 연수도 많습니다. 저는 이번에 디지털 드로잉 연수를 신청하고 일주일간 받게 되는데 목적은 다양한 수업 활동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업자료를 개발하기 위함입니다. 아이들의 얼굴이나 다양한 자료에 귀엽고 깜찍한 그림을 그려 넣으면 아이들이 조금은 더 잘 보아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담습니다.
마지막으로 여행을 갑니다. 아이들은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고, 교사들도 각자 목적에 따라 다른 여행을 합니다. 저는 이번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건축가 가우디에 대한 견학과 프라도 미술관 관람입니다. 그리고 유라시아 대륙의 끝인 호카곶을 직접 가보는 것도 기대됩니다. 그곳에서 저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고, 많은 사진과 영상을 담아 올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개학하면 그 사진과 영상을 풀어놓으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느덧 개학이 가까울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학기가 시작되겠지요. 서로 한 뼘 정도는 성장했으리라 믿습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보따리로 가지고 와서 풀어놓으면서 웃고 떠들겠지요. 학교는 그렇게 자라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