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애로운 엄마라는 가면을 쓰고 산다
나는 경험해 본 적 없는 자애로운 엄마를 연기하며 사는 삶은 결코 쉽지 않다.
나의 엄마는 가정보다 당신의 삶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엄마가 이 얘기를 들으면 억울하다 하겠지만 내가 봐 온 엄마는 그랬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엄마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중요했고, 돌아가신 후론 엄마의 연애가 중요했다. 먹이고 입히는 것은 빠짐없이 챙겨 주셨지만 엄마의 여가 시간을 우리와 같이 보내는 일은 없었다. 엄마가 예쁘게 꾸미고 나갈 때마다 작은 언니는 엄마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는데, 엄마는 그런 언니에게 매를 들어 떼어내곤 했다. 언니를 보며 맞지 않으려면 엄마를 우리 곁에 붙잡아 두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배우고 마음속에 새겨 넣었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적었더라도 온 마음으로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엄마라면 달랐을까, 하지만 엄마는 무뚝뚝하고 짜증이 많은 사람이었다. 셋째인 나는 언니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편이었고 ‘언니들은 안 그런데 너는 왜 이리 까다롭냐’는 핀잔을 밥 먹듯 들으며 자랐다. 또 셋째만큼은 아들이길 간절히 바랐던 엄마는 내가 태어나고 딸이 없는 옆 집에 나를 주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어린 나에게 하기도 했다. 버려주지 않아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에게 그 잔인한 이야기를 한 엄마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이런 내가 엄마가 되었고, 따뜻한 엄마가 되려니 무던히 어렵다.
힘들다는 말보다 어렵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나는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인지 배우지 못했고 배우지 않은 것을 잘 해내려니 무척 어렵다. 나의 엄마와 달리 다행히도 나는 아이 때의 정서 발달이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고 덕분에 적어도 엄마처럼 기분에 따라 자식에게 가시 박힌 말과 행동을 쏟아내는 엄마가 되지는 않았다. 수많은 육아 서적과 강의 덕분이다.
아이가 생긴 이후로 나는 내 이성을 꼭 붙들고 살고 있지만 이것은 마치 자애로운 엄마라는 가면을 쓰고 사는 삶 같기도 하다. 좋은 엄마 역할을 맡은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때때로 이 역할이 버겁다. 아이가 내 뜻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는 내가 배운 것처럼 아이를 비난하고 상처의 말을 쏟아내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날카롭고 짜증스럽던, 아이보다 당신의 감정이 더 중요했던 엄마의 모습이 꿈틀거린다.
그럴 때마다 다시 이성의 끈을 잡고 이해심 넓은 엄마의 가면을 쓴다. 아이가 나 같은 어른으로 자라지 않았으면 하는 강박이 나를 붙잡는다.
언제쯤 이 가면을 벗고 편안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