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기독교가 아니니까
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하면 족히 30분은 넘기는 내가 나도 이상하지만 더 이상한 건 시어머니와의 통화가 재밌다. 한국말로 수다 떨 사람이 없는 곳에 살며 느끼는 수다의 갈증을 풀어준다. 내가 자유로운 시간에 한국의 친구들은 직장이다 육아다 바쁠 시간임을 알기에 전화를 망설이게 되지만 시어머니는 언제나 내 전화를 반가워해주신다. 해외에 산다는 이유로 기껏해야 한두 달에 한 번 전화를 드리니 그러실 만도 하다.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는 아들 대신 아들의 회사 생활, 손자의 학교 생활을 전해 들을 수 있으니 더없이 반가운 전화일 테다.
시어머니 생신을 맞아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조잘조잘 수다 떨 생각에 신이 났다. 생신 축하드린다는 말과 함께 근황 토크가 오가고, 다가오는 명절 이야기가 이어졌다. 차례상 차리기의 노고는 빠질 수 없는 소재다.
기독교인인 어머님은 종교가 없는 아버님의 뜻에 따라 30년이 넘도록 제사상을 차렸다. 그간의 고생을 토로하시며 당신 며느리들은 이런 고생 안 시키고 싶다, 내 제사는 지내지 말라는 며느리 사랑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묵직한 한마디가 날아왔다.
"너도 교회 다녀야겄다. 큰 애는 기독교고 친정도 독실해서 제사 안 받으려고 할 텐데 우짜니. 교회 안 다니는 니가 받어야지"
둘째 며느리인 나에게 넌지시 제사는 내 몫임을 알리는 말씀이었다.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말에 나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답했다.
"저도 제사 안 받을 건데요. 어머님~~"
내 대답에 적잖이 당황하신 눈치였다. 서둘러 전화를 끊으시려다 시아버지 친구 얘기를 꺼내셨다.
"아버지 친구 중에 며느리 맘에 안 든다고 아들 불러다 이혼하라고 한 친구도 있어야? 그 집 아들도 대답을 못하다가 받을게 많으니 결국 이혼하겠다고 했대. 아버지는 그 친구한테 니가 잘못한 거라고 하긴 했다는데 그래도 야 그런 집도 있어"
아들 인생 망치는 그런 분과 친구냐며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가장이 되어서도 그렇게 부모에게 휘둘리는 남편이라면 이혼하는 게 낫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지만 말을 삼켰다.
"어머 세상에 그런 분이 계세요? 어머.." 하며 대충 둘러대고 말았다.
제사 얘기에 이어 며느리를 이혼시키려는 다른 집 시아버지 이야기는 마치 협박처럼 들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가 제사를 받지 않겠다는 이유로 이혼을 강요한다면, 그리고 내 남편이 그 뜻을 받들어 올린다면, 기꺼이 해드리리라. 나도 그런 시부모님과 남편은 사양한다.
큰 며느리는 기독교라 열외이니 둘째인 내가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말에 적잖이 불편함을 느꼈다. 종교가 있는 며느리는 그 신념을 존중하여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종교가 없는 나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그 주체로 선택되는 것이 불편했다. 그렇다고 제사는 무조건 큰며느리가 준비해야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한쪽만 존중받는다는 것이 언짢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사상을 차리는 주체가 며느리들에 한정되는 것이 불편하다. 정작 조상에게 절 한번 하지 않는 며느리들이 그 주체가 되고 아들들은 뒤로 한 발 빠져있다. 만약 내가 교회에 다닌다면 이 집안의 제사는 자연스레 없어지는 것일까. 자손인 아들들과는 상관없이 며느리들의 종교에 따라 제사의 유지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다. 제사상 차리기가 당연히 며느리의 몫이라는 뜻일 테지만 그 당연한 것이 왜 당연한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명절이 되면 시댁 주방에 여자들만 모여 전을 부친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정확히는 며느리라는 이유로 강요받는 노동이 싫다. 명절이 다가오면 미디어에서 차례상을 간소화하자고 이야기한다. 며느리들을 일에서 조금이라도 해방시켜 주자고 외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상을 차려도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온 가족이 함께 일 한다면, 또는 노쇄한 시부모님은 거실에서 손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들들, 며느리들이 일을 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기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노동의 양 문제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여자라는 이유로 한쪽의 노동만을 당연시하는, 성별과 상관없이 똑같이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그 인식이 문제다.
차례를 지내고 친척들과 다 같이 식사를 할 때 남자 상, 여자 상을 따로 차리는, LA갈비를 잘라 뼈가 안 붙은 고기는 남자상으로, 뼈가 붙은 고기는 여자상으로 내는, 설거지는 반드시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시댁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평등이겠지.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은 이유 중 하나다.
또다시 시댁에 가면 단지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많은 것들이 당연시되겠지. 그 기분이 참 별로다.
어색하게 마무리된 통화를 마치고도 사실 마음에 큰 타격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진짜로 제사를 받지 않을 거니까. 어머님의 삶을 존중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같은 방식의 삶을 살 생각이 없다. 그 전통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어가면 되고, 그게 싫다면 그만 두면 된다. 각자의 방식으로 조상을 추도하면 된다. 그것을 선택할 권리는 나에게 있지, 다른 누구에게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