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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밤 Jan 02. 2023

닮고 싶은 그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영국인 엄마

적어도  달에   이상은 꼭 만나는 아이 친구 엄마가 있다. 나의 가난한 영어에도 개의치 않고  먼저 만나자고 해주는 고마운 엄마이다. 그녀는 영국인이고 미국인 남편과 결혼하여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는 20 중반이고, 둘째 아이는 이제  20살이 되어 부모 품을 떠나 자기들의 삶을 개척하고 있으니 키운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늦둥이 막내가  아이보다    많은 남자아이인데, 아이가 현지 유치원에 잠깐 다닐  만난 친구이다. 유치원을 그만두고도 꾸준히 만나고 있는 유일한 친구이다.


그녀는 참 차분하고 멋진 엄마다. 그녀를 만나면 책에서 보던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이 겹쳐진다. 적당히 아이를 통제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엔 한없이 기다려준다. 큰 소리를 내는 법이 없고 늘 차분히 설명한다. 아이 셋을 키운 짬에서 나오는 여유일까, 아이도 엄마도 참 편안해 보인다.


어느 날, 아이가 나에게 화를 표출하면서 "엄마 싫어. 죽이도록"이라고 했다. 처음 듣는 일곱 살 아이의 거친 말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몇 초간 숨이 멎었다. 요즘 학교 친구들과 Among us라는 온라인 게임을 흉내 내는 놀이를 한다고 했었다. 사람을 죽인 범인을 찾는 게임인데, 부쩍 '슥'하며 칼로 사람을 베는 시늉을 하고 "I will kill you"라는 표현을 자주 했었다. 영어의 'kill'과 한국어의 '죽이도록'은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아이 앞에서 언어에 대해 예민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쓰며 키워온 내 입장에서 아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너무 큰 충격이었다. 놀란 나는 뭐라고 가르쳐야 할지 그 짧은 시간 동안 고민하다 무서운 얼굴로 수많은 말을 쏟아냈다.

"화가 나는 건 이해하지만 그런 말을 쓰는 건 안돼. 화를 표현할 때는 네 마음을 말로 잘 설명할 수 있어야 돼. 누구도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어. 죽인다는 말은 하면 안 돼. 다시 그런 말 하면 그땐 정말 크게 혼나게 될 거야."

그 외에도 여러 말을 덧붙인 것 같다. 정색하는 나를 보며 아이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한국인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이곳에서 그 말의 무게를 아이는 경험해본 적이 없고, 추측컨대 친구들과 놀이 때 사용하던 kill 정도의 무게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이는 내 장황한 설명을 듣고서는 알겠다고 수긍했지만 그저 그 엄한 분위기에 놀랐을 뿐인 듯했다.


이 일을 영국인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그 순간 말을 잃었고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고 얘기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뭐라고 했는지 물었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I said don't say like that"라고 말했다. 그것 말고 할 말이 뭐가 있겠냐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뭔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참 그녀 다운 반응이었다. 간단명료하고 차분하다. 그리고 순간 깨달았다. 나는 화를 냈고, 그녀는 아이를 가르쳤다.

"그렇게 말하면 안 돼"라고 가르치고 끝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불안감이 밀려왔던 것 같다. 이제 시작이구나. 앞으로 거친 말을 계속 사용하면 어떡하지. 지금 바로 버릇을 고쳐놓아야겠다. 다시는 그런 말 못 하게 해야지. 여러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쳤고 내 불안은 입을 통해 정신없이 밖으로 나와버렸다.


누군가 그랬다. 육아는 매일 내 밑바닥을 확인하는 일이라고...

나도 그녀처럼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엄마가 되고 싶은데 현실은 아이랑 똑같은 초딩이 되어버린다.

그래도 주변에 배울 점이 많은, 존경스러운 사람이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다음에 또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그때는 나도 그녀처럼 현명하게 대처해야지.

모든 걸 한 번에 해결하려고 조급해하지 말아야지.

오늘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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