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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그릇 Aug 08. 2023

신뢰롭고 신뢰로운 마음


~롭다, ~로운  

라는 한글의 어미가 문득 참 아름답다고 느낀다.



이런 제주의 노을이 신비롭고, 신비로운  노을앞에선 겸허해지는 것처럼 한글의 풍부함에 간혹 압도당한다



그리고 그 접미사로 형용사가 되는 로운,

이로운, 의로운, 새로운, 슬기로운, 괴로운, 지혜로운, 자비로운, 따사로운, 흥미로운, 평화로운, 호기로운, 여유로운, 명예로운, 자유로운, 경이로운, 향기로운 은혜로운 신비로운, etc, etc. . . .  

그런데 신뢰롭다? 신뢰로운, 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단어이며 자주? 들어본 적도 없지만 써 본적도 없는 표현 같기는 하다.

신뢰하다, 믿다, 는 주어가 1인칭이라면
신뢰할만하다, 믿을만하다는 ~를 믿을만하다라는 주어가 목적어이자 객체라는 인상을 받는다.

내가 믿고 신뢰하고자 하는 의지나 노력없이도 믿을만하고 신뢰할만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주어를 1인칭이 아닌 2,3인칭으로 쓴다고 하면 신뢰 + 를 할만함. 이라는 뜻으로 누구누구는 신뢰롭다, 신뢰로운 누구누구, 라고 충분히 가져다 쓸 수 있겠는데...

결국 누군가를, 무언가를 믿고, 신뢰하기로 의지를 세우는 나와 어떤 상황에도 믿을만한 사람, 신뢰할만한 너가 만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나 자신도 사실은 어떤 상황에서도 완벽히 자신을 신뢰하거나 믿는다고 할만큼 자신있지는 않기에 우리라는 관계에서 신뢰를 주제로 하는 연주회에 독주가 아닌 합주가 필요하지 않을까.

믿어달라고 한 적 없는 사람을 혼자 믿어버리고 뒤통수를 맞았다고 억울해하는 소녀의 마음으로가 아니라 정말 믿을만한 사람인지, 나의 신뢰를 줄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는 더 오래 두고 지켜보며 판단할 것. 그 기간의 길고 짧음도 결국 본인의 선택이고 이로 인해 마음을 미리 당겨와서 아파할 필요없다. 후불제로 마음 상해할 필요도 더더욱 없어야할 것.

자신의 기준대로 상대의 말을 믿고 행동을 믿고 달라졌다고 실망하기보다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를 보고 믿음을 쌓아가기.

그렇게 거짓말하기 힘든 것들, 우리의 신체에는 그런 신호들이 있다. 가령 눈빛의 순수함에 보태 눈의 깜박임 정도, 시선이 머무는 지점을, 보조개가 있다면 그게 패어지는 깊이를, 입꼬리의 올라간 각도를, 가식없이 은은하게 오래 머무는 미소를, 함께 보내는 시간 동안 머무는 온도를 믿어보면 어떨까 하는 거다.

나 스스로도 간혹 믿지 못할 때가 있는데 남을 믿는다? 믿고 싶은 거겠지. 그를, 그녀를 믿는다, 믿을 수 있다라고 말해버리는 순간 오히려 마음의 감옥에 갇히는 걸지도 모른다.

오히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건 느낌에 기반한 끌림이지 사실에 기반한 사고가 아니다.
이러다 뒷통수 C 게 맞으면 아파. 마이 아파.

그 사람에게서도 나에게서도 나오는 말과 행동의 정도..  그 진정성을, 그 일관성을 믿어보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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