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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그릇 Sep 17. 2023

 #4. 글을 계속 쓰겠다는 다짐

좀처럼 습관이 되지 않는 글쓰기를 습관으로 만들기  

요즘은 부쩍 나를 움직이고 말하고 쓰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건 고통일 거예요. 고통이 나를 움직이거 하고  말하게 하고 쓰게 합니다. 쓴,


저는 결혼과 동시에 임신하고 18개월 터울로 딸둘을 출산하고 육아하며 이혼의 과정과 함께 11번의 국내외 이주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은 물론 뿌리 깊은 증오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한 분야에서 일하며 나아지지 않는 생활, 모이지 않는 돈에 대한 원망, 시도해보고 좌절하고 나를 생각만큼 돌보지 않으며 30대 후반까지의 나의 삶을 그렇게 흘려 보내왔습니다. 흔히들 결혼을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 말하곤 하니까 나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29살의 나이에 했고 미국 아빠와 한국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두 딸을 2011년, 2012년에 연년생으로 출산하며 연년생 엄마 대단하다, 힘들텐데 잘하고 있다, 연년생을 참 쉽게 잘 키우고 있네, 같은 타인의 소리를 들으며 나름 엄마라는 고귀한 타이틀을 달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려고 애썼습니다.


텍사스 출신 미국인 백인 아빠를 닮은 첫째 딸은 미국에서, 부산 출신 한국인 엄마를 더 닮은 둘째 딸은 한국에서 태어나 2011년부터 2023년까지 텍사스 - 버지니아 - 경기도 - 서울 - 경남 - 제주안에서 이사를 평균 년 1~2회씩 하며 살아왔습니다. 1년을 채운 연애 끝의 국제결혼으로 주변인들의 우려보다는 축복을 더 많이 받았던 젊은 부부. 제주에서의 허니문의 축복으로 생겨 이듬해 미국에서 태어난 첫 딸과 미국 정착 이듬해에 버지니아에서 생겨 그 이듬해에 한국에서 태어난 둘째 딸, 그렇게 우리 넷은 정착을 위해 함께 애쓰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어디가 가장 적합한지, 어느 곳이 가장 우리에게 어울릴지 찾아오는 과정에서 '나'를 잃어가고 엄마의 모습에도, 아내의 모습에도 제대로 적응해가지 못한 체로 저는 결국 최근의 정착지인 제주, 그 바로 전의 정거장 '경남'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한 사람은 정착을, 한 사람은 변화를 원하는 삶의 형태가 이어지니 결국, 우리 부부의 결속은 단단해지기 보다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점점 직업과 정착에 대한 가치관에 대해 합의를 보기 힘들었고 모든 것이 막막하게만 느껴져 점점 대화가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화가 이어질 때마다 각자의 입장과 억울함, 희생의 정도가 강조되고 상대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려는 노력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아마도 부부가 지칠만큼 지쳤기 때문이겠죠. 그렇게 소통의 오류는 생활 전반에서 번져갔고 부정적인 감정의 폭발로 이어지면서 결국 둘 모두의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어요. 그렇게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이혼을 선택했습니다.


돌이킬 수 있다면 돌아가겠냐는 가정이 그래서 소용이 없습니다. 다시 강조해봐도 돌이킬 수 없을만큼 가버린, 그러니까 낭떠러지 끝에서 한 선택이었고 지금의 평온해진 저를 만드는 과정에는 이혼이 필수였기 때문이죠. 글을 참 많이 썼습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할 글들도, 아무나 봐줬으면 하는 글들도 그렇게 울면서 많이 썼어요. 내 안에는 별거와 이혼 전에는 알 수 없던 종류의 깊은 슬픔과 좌절감, 두려움과 상실감으로 무언가가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고통이라는 이름 아래에 켜켜히 무늬처럼 새겨졌던 아픔들이 글로 터져나오고 슬픈 표정과 알 수 없는 마음으로 승화되면서 그렇게 버텼던 것 같아요. 글을 계속 썼던 것이 저를 버티게 했던 원동력임은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가 안에서 채워지면 글을 씀으로써 길어 올리면 된다. 안에서 충분히 숙성되어서 쓰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다. 안에서 터질 것 같다 싶을 때 길어 올려야 글이 시원하게 일사천리로 나올 것이다" 라고 말한 임경선 작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내 안에서 가득 채워진 고통이 글로 흘러 나올 때는 차라리 그것이 치유이고 만족이었습니다.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특히 나의 글이 공감받을 때의 기쁨은 지난 고통을 모두 상쇄할 수는 없었지만 희석시키는 역할은 충분히 해주었던 같아요.  


저는 이 글을 '김봄소리'의 연주를 들으며 쓰고 있어요. 그녀의 이름은 봄소리, Sound of spring, 이라는 순한글입니다. 이렇게 봄이 오는 소리가 이토록 선명하고 아름답게, 온 몸의 세포 구석구석까지 스며 들어온다는 것은 이제 나도 희망을, 기쁨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경지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통의 과정 중에 글쓰기 만큼 힘이 되었던 건 사실 셀 수 없이 많았지만 Janine Jansen이 연주하는 브루흐 - 바이올린 협주곡 1번연주곡을 빼 놓을 수가 없어요. 이 곡을 들면서 키워왔던 내면의 '짱짱한' 힘은 아마 곡 전체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부드러우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선율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관현악기가 주는 느낌 중에서도 첼로의 중후함과 깊이, 바이올린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에 매료되는 것 같아요. 요즘은 확실히 바이올린에 빠져있기는 하답니다.


한 송이의 백합을 연상시키는 그녀의 화이트 드레스,  깔끔하고 우아한 포니테일, 과하지 않지만 그녀의 매력이 빼곡하게 드러나는 메이크업, 연주의 클라이막스마다 말그대로 '절정'을 표현하는 그녀의 표정. 강약의 힘과 세기를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선율, 곡선이 예술같은 팔과 활의 움직임과 음색의 향연은 말 그대로 flawless, a single most elegant and beautiful lily blooming alone and yet flawless indeed.


한 사람의 연주자가 이만큼의 음악을 연주하기까지 과연 어떤 시간을 지나왔을 지 알 수 없지만 늘 아름답고 희망적이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그녀가 이 곡을 마스터하기 위해  견뎌왔을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꽃처럼 피어난 것만 같아 감동이 더 합니다. 매일 꾸준히 오래 연습해왔을 겁니다.


저에게 글쓰기도 과연 이런 과정이어야겠죠. 당장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인내하며 이겨내는 것, 매일 조금씩 애쓰며 결국은 한송이 꽃으로 피어나가기 위해 시간을 견디는 일. 계속 해보겠습니다.

Youtune, BBC Proms 연주회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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