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할퀴듯 스치는 문장을 그 자리에서 낚아채기란 영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걸을 때, 혼자일 때 꽤 매력적인 문장이 떠오르는데, 글을 쓰려고 마음먹고 앉으면 어떤 문장을 써도 그 순간만큼의 강렬한 매력이 줄어들고 마는 것이다. 할퀸다는 것은 그 순간에는 그토록 강렬했기 때문인데 대부분은 생각으로 끝나고 말아버려 아쉬움으로 남아버린다. 어쩌면 그 할큄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이 다행일지 몰라도, 때로는 그 강렬함을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서 그래서 나는 써야 한다. 문장의 할큄은 아프지 않다. 다만 짜릿하고 강렬할 뿐이다.
걸을 때 탄생하는 문장들은 결국 그렇게 떠돌다가 사라진다. 그래도 나는 걷는다. 걸으면서 정리한다. 무질서하게 부유하는 생각들과 마음속 어지러움을. 엉켜 버린 관계의 실마리도 사실 걷다 보면 알아서 스르르, 느슨하게 풀려버리는 신비를 경험한다.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도, 오고 가고 머물지 않는 감정도, 어느 누군가와의 갈등도, 애정도 그 어떤 것도. 이건 허무주의와는 맥락을 달리 하는데, 어느 순간에 나를 강렬하게 잡아놓았던 문장처럼 어떤 생각과 감정도 모두 사라지고 마는 것을 받아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그 순간에 충분하게 머무는 것으로 만족한다.
죽기 전까지 살고 싶은 삶의 모습과 방향이 지금 갖춰져 있지 않은 것 같아도 이미 내게 필요한 것은 다 주어져 있는 걸지도 모른다 (무덤까지 가져갈 수 없는 물질들은 모두 제하기로 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내가 눈을 감는다면, 후회 없이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가끔 내 마음처럼 어지러운 내 방과 몇 달 동안 요리에 흥미를 잃어버려 질서 없는 냉장고 안, 다용도실의 극악스러움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데... 고양이들과 내 딸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지 또 생각해본다. 내가 편해야 그들을 잘 챙길 수 있어서 미안한 마음이 자주 올라온다.
그 외의 것에서 스스로에게는 부끄럽지 않은지 가슴에 손을 얹어 잠시 또 들여다본다.
걷고, 읽고, 쓰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데, 스스로에게도 나를 기억할 소중한 이들에게도
먹고, 자고, 그저 가끔 걷는 사람으로 기억될까봐 요즘은 조금 부끄럽다.
누구는 내게 그 이상 어떻게 더 열정적으로 사느냐고 반문도 하지만 열정의 기준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다르게 적용하기 때문에 이 한마디만 덧붙여 본다.
누구든 그들 나름대로 다 애쓰며 살고 있지 않으냐고...
오늘은 걸으면서 이런 단어 조합을 건졌다 <타인 관찰일기, 나의 개방일지>
가끔은 타인을 관찰하고 내게 울림을 주는 사유를 마음 안에 나열한다. 그건 주로 글로 남기지 않는 편인데 아마 관찰만 하고 끝나기 때문일 수 있다. 주로 나는 어떤 책이든 영화, 드라마에서 단어나 구절, 심리학 이론의 한 맥락, 대부분은 순간적으로 할퀴고 가는 문장에 나의 현재를 대입해보는 식으로 나의 관찰일지를 많이 썼던 편이다. 이건 일기 이상의 것도, 이하의 것도 아닌데 가끔은 아무개의 산문집이나 에세이들이 이렇게들 나오니, 내게도 희망이 조금 생긴다는 것이다.
꾸준히 쓰고 또 써서 언젠간 나의 글들을 묶어 책으로 내고 싶다. 그건 구색을 갖춘 에세이집일수도 있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독립출판물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럼에도, 나는 쓸 것이다.
쓰는 행위는 나를 차분하게 하고 정리하게 하고 반성하게 한다.
쓰는 행위가 나를 돌아보게 하고 겸손하게 하고 계획하게 한다.
나는 오늘 오천보도 걷지 않았지만 생각을 많이 건져 올리고 또 던져버렸다. 순간에 충분히 머물기로 하는 나의 기치, 20대 때부터 나의 원동력이었던 문구 “Live the moments to the fullest”를 요즘 더 알차게 살아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