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레이 Sep 21. 2024

어디 사세요? 그쪽으로 절 좀 올리게

생에 첫 단행본 출간을 앞둔 초보 작가, 알잘딱깔센 편집자 만나다!


      책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저자의 역할이 6이라 가정한다면 나머지 4는 편집자의 손에 달렸다고들 한다. 편집자는 저자가 쓴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은 후 이것이 글이 아닌 한 권의 책이 되도록 만드는 모든 과정을 총괄한다. 빨간펜 선생님이 되어 단어와 문맥이 맞는지 교정교열을 보고(전문 교정교열사가 상주하고 있는 출판사여도 대부분 1차적으로는 편집자가 보는 경우가 많다.), 내지의 배열과 페이지 레이아웃을 짜고(조판), 디자이너와 소통해 전체적인 만듦새를 정비한다. 지업사에 종이를 발주하고, 인쇄소에 직접 전화를 걸어 일정도 체크하고, 감리도 간다. 탈고를 미루는 작가에게 채권자처럼 독촉도 하고, 출간 이후 진행할 북토크, 저자 사인회와 같은 각종 행사 관련 일정도 확정 짓고, 그 사이 보도자료도 만든다. 책 표지를 시작으로 날개, 첫 장을 지나 끝장, 다시 날개 그리고 뒤표지에 이르기까지 편집자의 손이 닿지 않는 구석이 없고 출간 후에도 편집자의 업무는 끝없이 이어진다. 


     직접 겪어보니 내가 한 것은 그냥 글을 쓴 것 밖에 없었다. 물론 처음 초고를 쓸 당시부터 어렴풋이 구상했던 얼개나 표지 시안 레퍼런스, 구성 포인트 등을 정리해 전달하긴 했지만 그것을 검토해서 반영하고, 나의 색깔과 의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더 빛날 수 있게 매무새를 다듬어 준 것은 편집자였다. 계약을 기다리며 알잘딱깔센 편집자님이 배정되기를 바라고 또 바랐는데, 그는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세심하게 내 원고를 들여다보고 오류를 찾아내 수정을 요청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전혀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도 돌봐주었다. 한마디로 120%를 해내는 데 그가 어디 사는지 하루라도 빨리 알아내 그 방향으로 절이라도 올려야겠다. 증쇄로 보답한다면 더 좋겠지만. 그가 손봐준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1. 목차 워딩 변경 제안 

내 책은 3년간 했던 탐조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까지 총 5개의 계절로 묶어 담은 에세이다. 따라서 목차도 5부 구성. 계절의 흐름 순인데 어느 날 편집자는 내가 써 둔 목차 안에 들어가는 하위 제목들을 바꾸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탐조인들이라면 제목만 들어도 설렐 법한 새 이름과 공감대를 형성할 거리가 많지만 실제로 편집자가 보내온 변경된 가안의 목차를 보면 비탐조인들이 공감할만한 혹은 감성적으로 끌릴 만한 소제목이 많다. 총 24개의 에피소드 중 바뀐 소제목이 절반 이상이다. 



2. 각주 속 인용 기사 출처 확인

탐조는 야생 조류를 관찰하는 행위다 보니 자연 생태계와 손을 나란히 할 수밖에 없다.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기후 위기와 멸종위기종 지정 등과 같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기사들을 인용하거나 참고하여 각주를 달은 것이 더러 있는데 그는 이런 내가 언급한 모든 기사의 출처를 확인하고, 발행 날짜, 헤드라인 제목을 체크해 하나의 통일된 순서로 정리했다. 작가인 내가 1차적으로 확인을 했지만 나도 사람이다 보니 오류가 있고 실수가 있는데 이를 몇 번이고 크로스체크 한 것. 



3. 적절한 사진 배치

내 책은 사진이 많이 들어간 에세이라 각 에피소드마다 원고의 레이아웃이 중요하다. 글을 다 읽고 사진을 보는 것과, 글을 읽는 중간에 사진을 통해 내용을 조금 더 이해하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가독성을 위해 전자가 나을 수도, 혹은 후자가 득이 될 때도 있다. 최종 원고 파일을 전달할 당시 각 에피소드마다 들어가는 사진의 번호와 캡션을 따로 정리해 공유했는데, 편집자님은 조류학자도 아니면서 내가 이야기하는 새에 대해 완벽히 흡수하고 적절한 위치에 사진들을 배치했다. 심지어 내가 요청했던 풀페이지인 사진 이외에도 좌, 우수 구성을 할 때 작게 넣은 사진이 있는가 하면 크게 키운 사진이 있고, 캡션의 위치도 각각 다르지만 일정 부분에서는 맞춰 통일성을 높였다. 



4. 행갈이와 문장을 적절히 끊기

나는 짧은 문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몇 년 전 모 작가가 SNS에 올린 짤막한 글들을 모은 에세이가 베스트셀러에 올라 서점가에서 화제가 됐을 때, 그 책을 샀지만 한 장 읽고 다시 중고 서점으로 보냈을 만큼 문장의 호흡이 짧은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실제로 글을 쓸 때에도 마침표 하나 찍지 않고 대여섯 줄이 넘게 풀어내는 것은 내게 일도 아닌 편. 편집자님은 이를 대번에 끊어냈다. 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는 적당한 호흡과 나의 문체, 톤 앤 매너를 적절히 유지하면서도 문장의 흐름을 자연스레 매만지는 기술은 존재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실제로 조판이 끝난 내지를 보면 내가 글을 이렇게 잘 썼나 싶을 정도로 호흡이 기가 막히다. 첫 시작은 짧게 끊었지만 중반부로 가면서 길어지고 읽는 이로 하여금 감정을 쌓게 한 다음 긴 호흡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부분이 많다. 나는 이 부분이 특히 고맙다. 



5. 나의 요구사항을 100% 수용한 표지 디자인

처음 표지 시안을 받았을 땐 취향과도 그다지 맞지 않고 현 도서시장의 유행과도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시안은 시안일 뿐. 나는 적절한 레퍼런스를 서너 개 더 찾아 이런 느낌으로 한다면 어떨지 제안했고, 그 레퍼런스를 토대로 가안의 디자인을 해 보냈다. 편집자님은 이를 적극 수용해 내가 보낸 디자인 2종에 다른 디자인 3종을 더해 총 5종의 2차 시안을 보내왔다. 물론 디자인은 담당 디자이너가 하는 것으로 편집자가 직접 마우스를 굴리진 않지만 가운데서 조율하는 것은 모두 그의 몫이니 이것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곧 인쇄를 앞둔 시점에서 그간의 여정을 돌아보니 이외에도 그가 노력해 준 것들이 수도 없이 많아 어찌 다 갚아야 할까 싶다. 그의 말을 잠시 빌리자면 당연히 하는 일이고, 밥 벌어먹고사는 업이니 사례할 것 없다 했지만 조만간 책 작업이 마무리되면 자리라도 한 번 만들어 따듯한 식사라도 한 끼 함께하고 싶다. 나의 원고를 읽어 준 첫 독자이자, 나보다 더 내 책에 진심인 사람. 적게 일하고 늘 많이 버는 삶 사시기를. 이 자리를 빌려 편집자 B님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ㅂㅈㅇ 편집자님! 고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 인감 들고 왔는데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