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말할 수 있었는데
'아, 그럼 진작 말했어야. 진짜 사람 속터지게 하네.'
남편과의 대화 중 머릿속으로 생각도 없이 그냥 입 밖으로 이 말이 술술 나와버렸다.
말을 하고 나서 속으로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이거..우리 엄마가 아빠한테 자주 하시던 말씀인데....?!
가끔 친정엄마가 친정아부지를 잡아 먹을듯이 쏘아 붙이고 투덜댈때마다 '엄마 좀 예쁘게 말해봐유~' 라고 했었는데
이젠 내가 그 말투 그대로 남편에게 하고 있다니..
물론 이해는 한다. 솔직히 아부지가 사람을 좀 속터지게 하시긴 하지만..ㅎ
그래도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엄마가 아무리 구박하는 말을 퍼부어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데 엄마아빠의 사이만 나빠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도 그러고 있다니..아이고야..
사실 남편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친정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투 그대로 말하고 있으니 우리아이가 얼마나 상처 받았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평소에는 그냥 내 말투 그대로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하다가도 순간적으로 화가 나면 내가 어린시절 들었던 모진 말들을 그대로 뱉어내는 걸 보면 나도 뭔가 치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한번 쏟아내고 나면 멈추지 않고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감싸면서 계속 가시박힌 말들을 쏟아낸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어김없이 반성을 하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나는 친정부모님처럼 살지 말아야지. 서로 다정한 말해가면서 사랑하면서 잘 살아봐야지 싶었는데, 오늘도 남편과 말다툼을 하고 날카로운 말로 공격을 하고 원망을 쏟아냈다.
내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 가기는 커녕 악화시켰으니 최악의 방법을 택한 것이다.
만약 그 상황에서 내가 살짝 말투만 바꿨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겠지. 물론 그것은 남편도 마찬가지. 하지만 내가 남편의 의식에 들어가서 말투를 변화시킬 수는 없기에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간절하게 원하는건 나이기 때문이다.
해줘! 라고 명령하는 것보다 해줄수 있어?라고 부탁해야 한다는데 하... 쉽지가 않다. 특히 상대방이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면 이성이 사라지고 오로지 저걸 막아내서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더 공격을 하게 된다.
하지만 변해야한다. 변해야만 한다.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말투를 어느샌가 이제는 남편이 아이에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남편은 나에게 영향을 참 많이 받는 사람이다. 내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는 듯 싶지만 시간이 지나보면 내 의견대로 하고 있고, 내가 했던 문장 말투까지 그대로 복사하듯 말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부정적으로 말하거나 내가 했던 구박들을 아이에게 쏟아내는 것을 보고 비로소 나 자신을 객관화 할 수 있었다.
굳이 저렇게 말을 해야 했을까? 이렇게 말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다음에 나는 이렇게 말해 봐야지.. 하면서 말이다.
로션을 제때 챙겨바르지 않는 아이를 보며 너는 도대체 왜 그러냐며, 로션을 바르지 않으면 커서 피부과에다 돈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말해주고 싶다.
'자기가 걱정하는건 이해해. 아빠니까 충분히 그런말 할 수 있지. 그런데 로션을 바르면 좋아질 점을 말해주는 건 어떨까?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 중에 자기가 스스로 로션을 야무지게 챙겨바르는 아이는 거의 없어.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
사실 저 한 문장을 쓰면서도 여러번 고쳐서 쓰는 나부터 신경을 써야겠다.
내 안의 다정한 나야 어서 나와서 우리 가정을 지켜주렴.
앞으로 금쪽이처럼 종이에다가 써서 중얼중얼 연습해야겠다. 오늘도 다정하게 살아보겠습니다.
더 이상 대대손손 내려오는 부정적인 말투는 이제 내 대에서 끊어 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