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AX디자이너의
브랜드 아이콘 제작기

author - 수돗세ㅣAX디자이너

이 글은 아래 작업에 대한 후기이다.

https://www.behance.net/gallery/84338977/Samsung-Fire-Marine-Insurance-Brand-Icon-Design






부푼 꿈을 안고 입사하게 된 신입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하루빨리 재미있으면서도 중요한 업무를 맡고 싶어 한다. 나 또한 그랬다. 나에게 가장 먼저 주어진 일은 삼성화재 브랜드 아이콘 제작이었다. 말 그대로 PLUS A에 정식 출근해 책상에 앉은 지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얼떨결에 아이콘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궁금했다. 내가 왜 이걸 그리는지부터 이 업무의 목표까지. 그리고 나는 3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그걸 그리고 있다. (음?) 이제는 이 일, AX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 수 있을 것 같다. 


흔히들 신입 시절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처음 맡은 일을 추억 삼아 화제에 올린다. 그것은 처음 맡았던 일에서 벗어나 ‘그때 나 정말 고문관이 따로 없었어’ 따위의 말로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고, 처음 맡은 일을 몇 년이 지나서까지도 자신의 주된 업무로 삼고 있는 디자이너는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난 지금도 삼성화재의 브랜드 아이콘을 만들고 있는가? 


AX(Advance eXperience)는 BX 그 너머의 이야기이다. 

우린 각종 디자인 커뮤니티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 개씩 업로드되는 멋진 브랜딩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일관되면서도 센스 있는 브랜드 전략과 그에 따른 멋진 브랜드 디자인들. 하지만 대부분 그 이후의 이야기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그래서 저게 실제로 나온 거야? 멋진데!’ 정도일 것이다. 지금부터 나는 삼성화재 브랜드 아이콘을 통해 BX디자인, 그 너머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1. 규정하기


삼성화재 브랜드 슬로건, '당신의 봄'


단순한 아이콘에 브랜드가 가진 가치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브랜드의 메시지를 디자인 모티브로 포착해 이를 아이콘에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실제 과정은 간단치 않다. 삼성화재 브랜드는 ‘당신의 봄’이라는 슬로건으로부터 출발한다. 보험이 고객과 세상의 위험을 살펴본다는 의미의 ‘봄’과 보험을 통해 고객이 따뜻한 ‘봄날’을 누린다는 의미가 함께 담겼다. 



우린 삼성화재의 브랜드 아이콘을 개발하기 위해 기존에 개발되어있던 '봄길'모티프를 활용하였다. 삼성화재는 삶의 우여곡절마다 함께 하는 파트너십을 상징하기 위해 봄의 한글 자형에 담겨져 있는 구부러진 라인을 ‘고객과 함께 걸어가는 봄길’로 상징하였고, 이를 그래픽 모티프화 하였는데 우린 이부분을 모든 브랜드 요소에 심게 되었다.

특히 애정이 가는 녀석들






2. 유지와 확장


하나의 디자인 원칙을 기반으로 위와 같은 브랜드 아이콘을 전개하는 것. 뭐, 여기까진 통상적인 BX영역에서 다루는 이슈일 것이다. 그 이후, AX디자인은 우선 필요한 모든 아이콘을 제작한다. 말 그대로 모든... 삼성화재처럼 규모가 큰 기업은 그만큼 필요한 아이콘도 많다. 간단한 서류 아이콘부터 척추 디스크 아이콘까지. 

얹히다 귀찮아서 여기까지만 가져왔다


AX디자인은 지금 당장, 현장에서, 실제로 그 브랜드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먼저 파악한다. 삼성화재 같은 경우 리뉴얼 전의 아이콘이 쓰였던 제작물을 모두 모아 분류하고, 어떠한 것들이 쓰였는지 파악했다. 그 결과 약 19가지 카테고리에서 200여 가지의 아이콘이 쓰였음을 알 수 있었고, 추가적으로 필요한 아이콘들까지 총 300여 가지의 아이콘을 앞에서 설명한 디자인 원칙을 가지고 닥치는 대로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질병’ 카테고리의 아이들... 삼성화재는 손해보험사다. 사고와 더불어 질병을 다루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주요 질병에 대한 아이콘이 꼭 필요했다. 동글동글한 사람의 신체부위를 기하학적인 아이콘으로 만드는 것부터, 봄길 모티프를 심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카테고리였다.














이때 특히 내가 주의했던 점은 바로 ‘유지와 확장’이라는 AX디자인의 첫 번째 가치이다. 300개가 넘는 아이콘을 비슷한 볼륨으로, 비슷한 밀도로, 일관된 규칙과 그래픽 모티프를 적용하여 하나의 브랜드 에센스로 보이게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본질적으로 아이콘은 ‘아이코닉’ 해야 한다. 동어반복 같은 말이지만, 말 뜻 그대로 아이콘은 브랜드의 성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업물이기 때문이다. 제작물의 목적, 성격, 크기, 레이아웃 등 모든 것이 달라도 적용되는 아이콘은 일관되어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할 수 있다.
(이때 적용했던 세세한 그리드와 그래픽적인 규칙들은 여기에서 상세하게 볼 수 있다. )  


이렇게 AX영역의 기본은 약속하고 합의한 브랜드 디자인 전략을 충실히 유지하고, 해당 브랜드 디자인 에센스가 모든 영역에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확장하는 것이다.






3. 고도화하기


AX디자인은 유지와 확장에서 머물지 않는다. 더 나은 솔루션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브랜드 아이콘의 경우 확장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이슈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이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모두 고도화 과정의 일부가 된다. 아래에 작업 당시 진행했던 고도화 과정을 조금 공유하고자 한다. 


뱃지의 활용
삼성화재 브랜드 아이콘은 작은 뱃지를 붙여 해당 아이콘이 뜻하는 의미를 더할 수 있다. 현재까지 약 8가지의 뱃지가 활용되고 있는데, 초창기 뱃지는 원 프레임과 기호가 같은 굵기를 지니고 있었다. 이를 여러 제작물에 실제 적용해보니, 뱃지 내 기호의 시인성이 상당히 낮았다. 어떤 뱃지의 경우엔 여백이 적어서, 어떤 뱃지는 여백이 너무 많아서 시인성이 낮아졌다. 각 기호마다의 굵기와 여백 테스트를 진행하고, 추가적으로 뱃지 자체의 영역까지 조금 손을 본 뒤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확정되었다. 

확실히 좀더 낫다



선에서 면으로
처음 아이콘 세트를 완성하였을 때, 모든 아이콘의 요소가 라인이었다. 하지만 아이콘에 따라 굉장히 작은 오브젝트를 표현해야 할 경우가 있는데, 라인으로 이러한 영역을 표현하는 경우에는 크기가 작아짐에 따라 모바일 환경 등에서 라인이 뭉쳐 보이는 현상이 발생한다. 때문에 아이콘 가이드라인를 조금 더 느슨하게 수정하여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일부 장식 요소에 면적인 요소를 적용할 수 있게 바꾸었다. 확실히 면으로 채우니 시인성이 우수하다. 

222222



컬러버전
삼성화재의 메인 브랜드컬러는 봄의 의미를 담은 스프링블루다. 아이콘의 기본 세트는 스프링블루와 화이트, 블랙 버전이 전부였다. 하지만 현업에 적용 후 시간이 흐르며 추가적인 니즈가 발생하였다. 브랜드 아이콘 자체가 플랫 아이콘이기 때문에 소위 시선을 확 잡아끄는 디자인 요소로써 활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콘의 본래 목적은 대상의 특징을 기호로 강조해 하나의 시각언어로 기능하는 것이지만, 좀 더 확장된 목적인 ‘디자인 요소’로써 기능하게끔 하는 버전도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이에 기존 라인 아이콘에 면을 삽입하여 화면 전환이 빠른 모바일 환경 등에서 사용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컬러버전을 적용하여 현재 테스트 중이다. 


디자인 라이브러리
디자이너들 외에도 브랜드아이콘을 유용하게 쓸 수 있을까? 사실 아이콘은 디자이너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반 임직원들 또한 각종 보고서나 발표 자료 등을 제작할 때 아이콘을 광범위하게 활용한다. 이렇게 일반 임직원들이 제작하는 각종 양식에서 브랜드아이콘이 보인다면 어떨까?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내부의 인력까지 브랜드 아이덴티티 일관화를 위해 힘써주고 있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임직원들 또한 ‘우리 브랜드만의 디자인’을 통해 우리가 어떠한 가치를 지향하는지, 우린 어떤 브랜드인지 심도 깊게 알게 된다. 이렇게 업무 효율성과 내부 브랜딩 강화를 위해 우린 삼성화재 브랜드 아이콘을 사내 전산망에 등록하였다. 이제 삼성화재 임직원이라면 누구나 브랜드 아이콘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며, 본인의 업무 성격에 따라 PPT, Word, Excel 등 다양한 템플릿에서, 다양한 버전, 다양한 의미의 아이콘을 활용할 수 있다.


임직원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BX는 씨앗이다. 


난 지금도 가끔 삼성화재의 브랜드아이콘을 제작하고 있다. 아직도 필요한 아이콘이 남았고, 여전히 그리고 있다니! 이쯤 되면 아이콘 그리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처럼 쉬울 수도 있지만 아이콘마다의 형태, 적용되어야 할 규칙 등을 생각하다 보면 여전히 내겐 새롭고, 어려운 디자인이다. 실제로 누워서 떡을 먹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런 것들을 보면 정말 브랜드 디자인은 처음의 그 시작이 정말 작은 부분이란 걸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몇 가지 브랜드아이콘만 예시로 제작한 후 손을 떼었다면, 과연 지금처럼 삼성화재의 모든 전사 제작물에 브랜드 아이콘이 적용되고, 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고도화되었을까? 


심어 놓은 씨앗에 물을 주고 가꿔서 꽃이 피게끔 하는 게 AX디자이너의 역할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