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 소금김ㅣAX선임디자이너
이번에 풀어낼 이야기는 삼성화재 브랜드를 고도화시키기 위해 오랜 기간 다듬어 왔던 디자인 에센스들 중 ‘일러스트’의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며 아래 작업 중 '브랜드 일러스트 시스템'에 대한 후기이다.
https://www.behance.net/gallery/84921061/Samsung-Fire-Marine-Insurance-Brand-Color-Illustration
무엇보다 일러스트 포트폴리오가 구축된 이후 약 2년여간 어떤 변천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 어떻게 현장에 적용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
일러스트는 브랜드 에센스 중에서도 특히 고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감성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툴이다. 고유의 일러스트나 캐릭터를 통해 아이덴티티를 좀 더 효과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기에 이를 적극 활용하는 브랜드들도 부지기수이다.
삼성화재는 그간 명료한 직선 스타일의 일러스트로 커뮤니케이션 해왔다. 위트 있고 쉬운 이미지들은 상품의 내용을 전달하는데 유용했으나, 인물 간의 스토리 부재와 직선적인 스타일로 이뤄져 삼성화재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를 담기에는 다소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또한 다양한 매체에 적용하기에는 확장성이 부족해 소극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각 매체 특성에 맞춰 각기 다른 일러스트가 적용되어 정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브랜드 가치를 담아내면서 사용성을 한꺼번에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먼저 삼성화재의 가치를 담기위해 슬로건인 ‘당신의 봄’을 반영한 일러스트레이션 스타일을 구축해고객들에게 따스한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개했다. 또한 보험이라는 업종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삼성화재가 고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가계도’를 구성해 한 가족 내에서 발생하는 보험이 필요한 각종 상황을 묘사하여고객이 상황에 몰입하고공감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이를 통해 상품의 원활한 이해를 돕고 고객에게 보다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일러스트 스타일에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behance.net/gallery/84921061/Samsung-Fire-Marine-Insurance-Brand-Color-Illustration
이런 디자인 원칙 하에 전문 일러스트 작가를 섭외하여 일러스트 라이브러리를 제작했다. 메인 26컷, 서브 32컷, 총 58컷이 다음과 같이 초기 구성되었다.
내가 Plus A에 합류한 시점은 이미 위와 같은 단계가 진행된 이후였다. 혹시 브랜드 고유의 스타일을 지닌 일러스트 구축 이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일반적으로 아이덴티티 도출 단계와 그 가치가 잘 표현된 초안을 접한 경우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물 도출 이후 그것을 실제 현장과 매체에 적용하면서 새롭게 변형하고, 디벨롭시킨 사례들까지 본 경우는 적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해당 사례에 대한 이해와 맥락이 부족한 상황에서 Plus A에 입사해 처음 받은 미션이 구축된 일러스트를 실무 환경에 용이하도록 수정ᆞ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때 당시 고객 접점에서 중요한 매체였던 세일즈 제작물, 즉 보험상품 안내장에 적용 가능하도록 일러스트의 확장성을 끌어올려야 했는데 내 입장에서는 이미 작가님이 만든 것에서 무엇을 바꿔야 할지 난감했다. 어느 지점을 왜, 어떻게 손봐야 할지 당황스러웠지만 적용 환경에 대한 스터디와 앞으로의 지속적인 활용성을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몇 가지 사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경 공간 활용부터 컬러, 조합 세팅까지 다음과 같이 순차적으로 다듬어져 업무환경에 정착되기 시작했다.
일러스트가 적용될 포맷이 점차 구체화되면서 구축된 일러스트의 보완점을 찾을 수 있었다. 초기 일러스트는 이미지 사이즈만을 염두하고 제작이 되었는데, 평면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다 보니 실제 적용 공간의 비율과 일러스트의 밸런스를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어떤 비율의 공간에 적용이 되건 일러스트를 적절하게 받쳐줄 배경에 대한 가이드가 필요했고, 그래서 상품 안내장 시안을 제안하면서 전반적인 스타일을 건드리기보다는 구축된 일러스트를 받쳐줄 수 있는 배경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했다.
초기에는 밝고 가벼운 느낌을 연출하기 위해 흰색 또는 옅은 배경 컬러를 염두해 일러스트 스타일이 설정ᆞ제작이 되었다. 이를 동일하게 유지하고자 했고, 적용 공간 모두가 일러스트에서 확장된 공간으로 느껴지게끔 자연요소 및 배경 요소를 적절하게 배치하는 방향으로 정리되었다. 대신 일정 자연물(잎사귀, 꽃, 구름 등)과 배경 요소를 모든 컷에서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통일시킴으로써 일러스트 컷 별로 일관성을 가지도록 했다. 스토리 연출 부분에 코퍼레이트 컬러인 spring blue의 비중을 높이고 배경 요소들은 옅은 그레이 계열로 구성해 메인 컬러를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추는 데 집중했다.
앞선 프로젝트 제안을 위해 일러스트를 만지면서 많은 스터디가 선행되었다. 또한 컬러시스템도 동시에 진행하기도 했고, 제안이 통과되면서 전반적인 수정 작업이 필요했다.
˙컬러
새롭게 정립된 컬러시스템을 일러스트에 적용해야 했다. 초기 일러스트의 경우, 블루톤 중심으로 전개되어 있었는데 이는 전반적으로 통일성을 느낄 수 있었지만 밝고 긍정적인 무드를 전하기에는 다소 단조로웠다. 부드럽다기보다 차분해 보였다. 그래서 메인 컬러인 spring blue를 중심으로 새로 정립한 서브컬러 시스템의 비중이나 추가적으로 필요한 컬러군(인물 피부, 머리, 액세서리 등)을 일러스트 용으로 구축했다. 특히 검은색을 대신할 색상이 필요했는데, 삼성블루의 경우 가시성이 매우 높은 색이라 일정 면적을 넘어서면 전체적인 균형을 무너뜨릴 정도로 존재감이 강했다. 그래서 검은색과 삼성블루를 대신해 전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인디고 색상을 추가했다.
˙조합 SET 구성
기존 삼성화재의 일러스트가 넓게 쓰이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제한된 사용성이었다. 상황은 잘 연출되었지만 재구성이 어려워 초반에 구축한 라이브러리 이외의 상황에는 적용할 수가 없었다. 다양한 환경에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조합이 가능하도록 재구성해 지속적으로 확장 가능한 SET를 구성해야 했다.
작가님이 구축한 일러스트를 기반으로 조합형 일러스트로 만들기 위해 인물 신체 구조에 맞춰 관절 별로 조립 가능하도록 분해해나갔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신체 균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했다. 작가님이 구성한 인물들의 신체 구조는 단순했지만 개성 있는 형태였다. 추후 재구성할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를 그대로 분해하게 되면 이후 작업자 개개인의 스타일이 개입될 여지가 있었다. 또한 간결하게 표현된 손은 전체적인 스타일 강화를 위한 부분이었으나,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는 데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상황 표현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손’은 좀 더 디테일을 가질 수 있도록 수정했고, 인물 신체 또한 좀 더 사실적인 인체 비례를 반영하여 수정했다. 작업자의 개성이 개입할 여지를 줄이기 위해 사실적인 표현에 근거해 수정한 것인데, 확실히 일러스트 톤을 균일하게 맞추기 수월해졌고 표현할 수 있는 상황과 인물별 디테일이 늘어나면서 좀 더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표현 추가
삼성화재 일러스트는 전반적으로 평면 공간 안에서 모든 연출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밝고 가벼운 느낌을 주기 위해 인물 표현 외에는 일정 부분 생략하고 단순화해서 표현한다. 특징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이 조건은 메인 그래픽이 사람으로만 표현할 수 없을 때 발목을 잡는 제약 조건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안전운전파트너>와 <덴탈파트너>가 이에 해당한다.
<안전운전파트너>의 경우 자동차 전면부가 메인인데, 사람보다 더 큰 물체가 넓은 공간을 차지하게 되니 매우 둔탁하고 단조로웠다. 특히나 메인 상황 및 요소에는 spring blue 컬러를 적극 사용하기로 했는데, 적용 면적이 다른 컷들에 비해 커서 일러스트의 무게감이 강해졌다. 그렇다고 기존의 회색을 적용시키면 메인 색상 비중이 작아지고 배경 가이드마저 어긋나게 되는 상황. 또 신규 상품인 덴탈 파트너의 시안 역시 치아가 메인 오브제로 확정되면서 단순한 형태를 메인 콘텐츠로 보이게끔 하는 표현이 필요해졌다.
여러 컬러나 컨셉라인을 만드는 등 여러 시도 끝에, 새로운 표현이 필요하다고 의견이 모였다. 기본적으로 처음 규정했던 메인 콘텐츠에 걸맞게 spring blue를 이용해 테스트를 다시 시작했고, 하이라이트 표현을 통해 약간의 입체감을 허용하면서 주변과 밸런스를 맞추었다. 평면적인 일러스트를 지향하면서 입체감을 허용해야하는 상황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가벼운 하이라이트 만을 사용해 최대한 이질감을 덜어내고자 했다.
2018년 중순, <개인보험>의 메인 컷은 대다수가 가이드에 따라 개선 작업이 진행이 되었고, 수정 완료된 컷을 기준으로 실무 영역에도 정착이 되고 있었다. 신규 상품들과 운영 업무에서 필요한 컷들은 가이드를 바탕으로 충분히 내부 제작을 소화해내던 때였는데, <기업보험>관련 메인 일러스트 제작 요청이 들어왔다. 2018년 하반기에 삼성화재는 브랜드 홈페이지를 대대적으로 리뉴얼했는데, <기업보험>도 <개인보험> 톤에 맞추어 소개하기 위해 신규 일러스트 21컷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내부에서 제작하기로 결정된 후, 기존 메인컷 일러스트처럼 구성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담아낼 보험의 성격이 달랐다. 2017년 초반 당시 큰 방향성은, 고객에게 친근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가족 중심의 따뜻한 스토리였다. 특히 보험의 역할을 ‘컨셉라인’이라는 일종의 시나리오를 통해 인물들의 상황을 보호하는 연출이 주된 구성이었는데, 이런 연출이 기업보험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게 맞는지 검토가 필요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계약의 주체가 개인인가, 기업인가’에 따라 차별화된다. 개인 보험은 계약자 본인의 전반적인 삶에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나의 재산, 가족, 건강과 같이 개인이 보험을 가입하는 이유는 불안정한 미래를 대비해 심신의 안정과 보장을 통해 행복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보험은 영리 목적을 추구하는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경영’의 맥락에서 계약하는 보험으로 여러 위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것인데, 이런 성격을 감안하면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결국 구성을 동일하게 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전체적인 톤을 유지하면서 다른 구성을 고민했다. 기업보험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감성적인 개입을 줄이고 명확한 사례 표현에 집중했다. 특히 보험을 의미하는 ‘컨셉라인’이란 가상 장치는 기업보험에서는 생략했다. 보험이 개입해야 할 곤혹스런 상황을 위주로 표현하고자 했고, 관련 있는 직업군 혹은 인물들을 함께 연출했다.
또한 개인보험과 다른 점이 있는데 이는 적용 매체였다. 개인보험의 경우, 오프라인 인쇄매체가 메인 적용 매체였다. 그래서 적용될 공간의 비율도 1:1에 가깝고 스케일이 꽤 큰 사이즈였다. 하지만 기업보험은 온라인 환경에서 고객과의 접점을 가지는 특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좁은 공간에 배치해야 했다. 반신의 인물과 현장 묘사를 나란히 배치해 온라인환경에서 보다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사실 작업자 입장에서는 기업보험을 연출하는 것이 훨씬 편안했다. 개인보험은 보험 내용을 담으면서 긍정적이어야 하며 컨셉라인과 함께 연출해야 해서 여간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었다.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기업보험은 직관적으로 보험이 필요한 상황을 표현하면 되었기에 이런 구성을 결정하기까지 고민한 이후에는 비교적 수월하게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때 참 많은 분들의 손을 빌렸다. 주어진 시간도 촉박했고 운영업무와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구성에 대한 고민과 동시에 작업이 진행되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총 21컷을 작업하는 데 7명의 손을 거쳐야 했다. 심지어 컷을 배분하는 식의 방식도 적용할 수 없었다. 많은 이의 손을 탔지만 결과적으로 꽤 균일한 톤의 일러스트가 제작되었다. 짧은 시간 내에 작업자가 많아도 균일한 톤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앞단에 차근차근 쌓아 뒀던 일러스트 히스토리 덕분이었다. 만약에 앞에 쌓아놓은 고민과 경험이 없었다면 제시간에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2017년 4월 첫 일러스트 발주 이후 1년 6개월 만에 개인보험부터 기업보험까지 총 53컷의 메인 일러스트가 구축되었고, 2019년 현재 추가 개별 컷들이 쌓여 약 380컷의 일러스트 라이브러리가 구축되었다. 물론 지금도 이 라이브러리는 계속해서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스타일 정립 이후 실무 적용에 약 8개월, 정착시킨 후 추가 일러스트를 만들어 라이브러리를 확장해 가면서 어느덧 2년 넘는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 어느 구성원이 어떤 업무를 진행하던지 균일한 톤과 퀄리티, 스타일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현장과 디자이너 사이의 긴밀하고 끊임없는 협력과 관심이 필수적이다. 물론 그 이야기인즉슨, 입사 이래로 2년 넘게 동일한 스타일을 구축하고, 확장하고, 변형하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끔 내가 디자이너인지 일러스트레이터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일러스트를 만지기도 했지만, 그렇게 많은 케이스를 다루어 왔는데도 계속 새로운 이슈가 생긴다. 작은 이슈일지라도 이런 사항들을 보수하고 개선시켜나가지 않는다면 처음 삼성화재 일러스트를 마주쳤을 때처럼 사용성을 잃거나 한 순간에 정해진 스타일을 벗어난 잡초들이 우거져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런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며 우리가 쌓아온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환경에 맞춰 변화시키기 위해 계속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런 재정립 단계 이후의 업무들이 얼핏 살펴보면 여타 화려한 브랜딩 영역에 비하면 한 곳에 멈춰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이유와 이해관계가 얽혀 계속해서 보완ᆞ갱신되고 있다. 우리 작업들이 어떤 맥락에서 브랜드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는지, 때로는 일관성을 해치게 되는 상황들을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 브랜드 가치를 지키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AX디자이너로서 좀 더 세밀한 고민의 영역에 들어서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고민들을 통해 단순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디자인에 깊이와 내러티브를 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브랜드 가치는 멈춰있는 것이 아니기에, 깊이를 찾고 의미를 더하는 것, plus x advance lab에서 지내는 동안 느낀 AX디자이너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