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지나? 그 허구의 글에 나오는 상상 속 사건들이 이제는 내 삶의 실체적 진실보다도 현실 세상에 더 강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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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뉴욕 증권가를 움직이던 한 남자와 그의 비밀스런 아내에 대한 소설, 자서전, 회고록, 일기의 양식을 빌어 쓴 소설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잡한 형식과 기존 양식에 대한 해체는 포스트모더즘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공통의 인물에 관해 네 가지 다른 시선과 다른 양식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책을 읽으며 독자는 '진짜' 이야기와 '가짜'이야기를 계속 구분하고 재구분하는 작업을 반복하게 된다. 사실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트러스트>라는 허구 속 이야기라는 점에서 진실에 대한 에르난 디아즈의 해체적 작업을 마주한다.
철학자 가다머는 어떤 이가 사건이나 텍스트를 바라볼 땐 항상 그가 서 있는 지평 위에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같은 사건을 보더라도 해석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것과, 한 인물이 어떤 사건을 다른 시공간 속에서 달리 해석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는 사실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텍스트 또한 하나의 지평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즉, 해석이 이루어질 땐 언제나 두 지평간 융합이 발생하며, 해석을 통해 내가 선 지평은 재구성된다. 나는 이제 해석하기 전의 내가 아니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지평 융합'이 읽는 내내 반복된다. 헬렌이라는 인물이 책을 읽어나갈 수록 계속 달리 보이는가 하면, 2장의 따분한 자서전은 3장의 회고록을 읽고나서 보면 재밌는 진술로 가득하다. 책 속 인물들 또한 여러 장면에서 이러한 구도를 재현하는데, 헬렌과 아이다가 각각 자신의 아버지를 떠나 주체로 독립하는 과정이나, 앤드루가 자서전을 쓰며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모습, 아이다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대한 여러버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설정 등등이 모두 역동적으로 '지평 융합'을 그려낸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하고있는 그 생각의 지평은 어디로부터 구성되었는가? 오래 전 헤겔은 이 같은 질문을 무한히 반복해 나가면 의식이 본질에 다다르는 절대적 정신에 이른다고 봤다. 반면, 가다머는 절대적 이해는 허구라고 본 듯 하다. 진리는 알 수 없다. 만약 가능하다면, 나의 지평을 허무는 절대적 타자에 의한 '계시'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진실에는 다가설 수 없고 저마다 자신의 지평을 '트러스트'할 뿐이다.
여러가지의 악기로,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게 구성 (compose)이라면 이 책은 작가의 의도대로 훌륭한 심포니를 연출한다. 글을 쓰면서 내 지평이 바뀌는 걸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