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평일 대낮에 버스를 탔다.
날씨가 좋았던 탓에 멍 때리고 창밖 너머로 아무 곳이나 보고 있기 참 좋았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데, 우리 동네쯤 왔을 때 한 노부부가 장바구니 같은 짐을 끌고 하차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요즘은 워낙 급하게 운전하는 기사님이 많으셔서 젊은 나조차도 넘어질까봐 빠릿빠릿하게 타고 내리는지라, 이 노부부께서 안전하게 내리시는지 가만히 주시하고 있었다.
두분의 거동이 그리 편치 않은 모양인지 짐과 함께 버스를 빠져나가는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느린 걸음으로 겨우 먼저 버스에서 내린 할머니는 뒤에서 할아버지가 전해주는 무거운 짐을 받아 내렸다.
뒤이어 할아버지가 내리고 그러는 동안에 할머니는 그 짐을 끌고 먼저 한걸음 한걸음 하고 있으니,
금방 내려온 할아버지는 얼른 옆으로가 잽싸게 짐 손잡이를 빼앗아 끌고가버리신다.
턱을 괴고 지긋이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나는 할아버지의 표정은 무심해보였지만,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결혼에 대한 환상도 없고 결혼이라는 단어가 그다지 희망적인 느낌은 아니라는 생각을 꾸준히도 해온 사람이지만, 몸이 잔뜩 기운 백발의 노부부가 함께 걸어가는 것을 보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결혼이 너무 하고싶어진다.
게다가 손이라도 꼭 잡고 있으면, 나도 나중에 저럴 수 있을까하며 괜스레 설레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한평생을 같은 보폭으로 발 맞춰 걸어왔을텐데, 그럼에도 여전히 꼭 붙어 다니고 싶은것도.
빠르게 변하고 가볍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찐’이라고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