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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녘 Jul 25. 2019

오늘은 연어덮밥

어떤 음식을 한번 잘못 먹어 탈이 나면 그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그 음식을 손도 안 대게 된다. 좀처럼 안 맞는 음식이 없는 나에게 연어가 한때 그런 음식이었다. 지금이야 전보다는 일식집도 많이 생겼고 연어장 같은 것들도 판매하고 있지만, 내가 연어를 처음 먹었을 때만 해도 연어가 생소하기만 했다. 초밥집에 가서 10피스짜리 모둠초밥을 시키면 한 개 정도 끼여서 나오던 연어를 처음 맛본 후에도, 나는 여전히 연어가 맛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두껍고 물컹한 것을 두어 번 씹기만 하면 어느새 스르륵 녹아버리는 그 식감이 좋고 고소하기는 했지만, 기름기가 많아 그런지 두 개, 세 개 먹고 나면 속이 느끼해져서 그렇게 많이는 먹지 못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결국 그 두툼하고 부드러운 식감 때문에 다시 찾게 되었다.

한 번은 시내에서 연어가 맛있기로 소문난 초밥집에 갔는데 그날이 내겐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날이었다. 연어 맛집인 만큼 연어 초밥 10피스에 연어샐러드도 시켰다. 웨이팅 때문에 배가 고픈 상태이기도 했고 생각보다 연어 샐러드의 드레싱이 잘 어울려 맛있게 먹느라 허겁지겁 먹었다. 게다가 그때가 한여름이어서 그랬던 걸까. 집에 와서 제대로 탈이 나고 말았다. 원래 그렇게 음식을 먹고 탈이 나서 고생한 기억이 거의 없는데, 겨우 잠에 들기 직전까지 화장실을 여러 차례 갔다 와야 했다. 그날 먹은 게 연어 말고는 특별히 없던 터라 분명 연어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인터넷에 그 가게의 최근 후기를 보아도 탈이난 사람은 없어 보였다. 게다가 연어로 유명한 집이라 엉망인 것을 쓰지도 않을 텐데 싶었다. 같이 먹은 동생도 속이 안 좋았던 것을 보면 그냥 우리가 너무 급하게 먹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먹은 것들을 다 게워내고서야 다음날 속이 편해졌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연어만 생각하면 그 기름지고 통통한 살점의 물컹물컹한 식감이 떠오르고 저절로 속이 메슥거려 멀미가 나는 것 같았다. 그 후로부터 몇 개월은 연어라는 글자만 봐도 그렇게 속이 꿀렁거렸고 그러니 연어를 먹는 일은 절대 없었다.

연어에 대한 트라우마는 생각한 것보다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 불쾌한 경험을 하고도 몇 개월이 되지 않아 나는 다시 연어 초밥을 집어먹고 있었다. 먹고 탈이 났을 때는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낼 수 있을 정도로 거북했던 식감이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생각나게 한 것도 결국 연어의 부드러운 그 식감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몇 년 동안이나 연어를 잘 먹고 있다. 연어초밥, 사케동, 연어샐러드, 토치로 살짝 그을린 연어 등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있다.

한창 연어를 안 먹은 지 오래되었을 때 엄마와 대형마트에 가서 연어초밥 노래를 불러댔더니, 엄마가 그 후로 마트에서 연어를 두 번이나 사 오신 적이 있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내가 지나가면서 흘린 말들도 기억하고 있다가 집에 돌아오면서 마트에 들러 잊지 않고 사 오시곤 한다. 심지어 정말 흘러가듯 얘기한 것이라 나조차도 기억을 못 하고 있던 것도 어느 날 깜짝 선물처럼 사오시기도 한다. 그럼 나는 그런 엄마 마음에 감사해서 먹고싶은 마음이 사라졌더라도 재료가 최대한 신선할 때 빨리 만들어 먹으려고 한다. 나를 생각하며 사 왔을 엄마의 마음이 잊혀서 상해버리기 전에.

처음에는 구이용 연어여서 구워 먹어 봤더니 생각보다 기름이 많이 나와 제대로 굽는 것도, 혼자 다 먹는 것도 힘들었다. 살점은 부드럽고 먹기 좋았지만. 두 번째 생연어는 반은 잘라서 랩에 씌어 냉동실에 두었고 나머지 절반은 요리해 먹었다. 3분의 1은 칼로 숭덩숭덩 썰어 회처럼 간장에 찍어 먹고, 나머지는 큐브처럼 작고 네모지게 잘라 밥 위에 올려 허전하지만 그런대로 덮밥으로 먹었다. 짜지 않은 적당한 소스와 무순 몇 가닥이 올라가 있어야 그럴싸한 사케동이 되겠지만, 완성도보다는 맛과 시도 자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간장에 설탕을 섞어 데리야끼 소스와 비슷한 맛을 내고 느끼하지 않게 파를 송송 썰어 올렸다.

있는 재료만으로 완성시킨 나의 연어덮밥은 어쨌든 나에게 한 끼로 즐거움을 주기엔 충분했다. 짭조름한 소스로 간이 된 콩밥 한 숟갈 떠 그 위에 연어 조각 올려 고추냉이까지 듬뿍 얹어 먹으면 완벽하진 않아도 내가 생각했던 그 맛이 난다. 그렇게 오늘도 대단하지 않은 것들로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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