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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송이 Aug 11. 2022

코로"나"

코로나 속의 나

 솔직히 상상도 못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시기에 덜컥 내가 코로나에 걸릴 줄이야. 주변에 아무도 걸린 사람이 없는데 내가 이렇게 덜컥 걸렸다는 건 주변에 증상 없는 사람들이 돌아다녔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을 해본다. 하긴 이제 주변에 코로나에 한 번도 안 걸린 사람이 얼마 없다. 유행에 항상 뒤처지는 편이라 코로나도 늦게 걸렸나 싶다. 이틀 전 열이 나고 목이 부어 보건소에서 검사를 하니  코로나 양성이니 일주일 간 격리를 하라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휴식 아닌 휴식을 받게 됐다. 아 내가 사무실에 버려두고 온 작고 소중한 내 업무들은 이제 어찌해야 하나..


 오늘까지 딱 3일째 격리를 하는 중이다. 열도 나고 목도 부었다지만 약을 먹으면서 대화할 사람이 없는 환경이라면 그럭저럭 버틸만하다. 다행히 지금의 추세라면 많이 아플 것 같지는 않다. 주변분들이나 가족들도 이참에 푹 쉬는 거지라고 해서(그리고 사실 뭘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그동안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해보기로 했다.

방에서 도를 닦는 마음으로.. [출처: pixabay - Mahamevnawa Mahaviharaya]

1. 1일 차 - 미련 & 반추

 첫째 날은 최대한 나의 격리 공간을 만들었다. 컴퓨터를 쓸 수 있는 방으로 가서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충전기와 나의 학습을 위한 노트북을 챙기고, 책이 들어있는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은 컴퓨터 앞에서 그동안 들어야 하는데 듣지 못한 강의를 듣고 문제를 풀고, 가끔 전화로 오는 업무들에 대응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실 방에서 멍하니 할 게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준비를 하니 안심이 되었다. 아무리 머리로 이해하더라도 몸은 적응에 시간이 걸린다.


 내 격리 생활을 시작할 준비가 끝난 방에 앉아 있으니 어느새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게 됐다. 방을 가득 채운 모든 것들과 그리고 방 밖에서 내가 얼른 회복하기만을 바라는 가족들은 모두 내가 인생을 살면서 운 좋게 얻었고, 내 인생을 풍부하게 해 주었던 것들이다. 그리고 달갑지는 않지만 격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나의 업무들까지 고려하면 내가 꿈꿨던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2. 2일 차 - 자유 & 방종

 밀린 온라인 강의를 밤늦게까지 듣다가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바뀐 환경과 잘 때까지 쓰고 있는 마스크, 침대가 없는 바닥 중에 무엇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냐고 한다면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다. 정말 늦게 잠들었지만 어차피 뭐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아 일어날 시간을 생각하지 않고 실컷 자기로 했다. 일어나 보니 10시였다. 비척비척 일어나 컴퓨터를 켠다. 그동안 인터넷에서 보고 싶었던 것들을 실컷 봤다. 그리고 우연히 찾은 휴대폰 게임을 컴퓨터에 다운로드하여 실행해봤다. 우와! 요즘은 휴대폰 게임을 컴퓨터에서도 할 수 있다니!  나는 새삼스럽게 인터넷을 쓸 수 없는 PC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프리랜서들은 오늘도 이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인터넷 PC에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벌써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몇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이들이 일상에서 얼마나 놀라운 통제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깨닫는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컴퓨터를 하고 있다 보니 손목에 통증이 느껴진다. 사무실보다도 높이 조절이 안 되는 의자와 너무 높은 책상의 콜라보, 그리고 휴식시간도 없이 만지고 있으니 손목이 아플 수밖에 없다. 오래전에 딱 한번 이랬던 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그때와는 정반대라고 자부할 만큼 살고 있었지만 정말 그때는 시간을 땅바닥에 버린다라고 느껴질 정도로 시간을 컴퓨터에 사용했었다. 인생을 방황하던 그 시기에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없었다면 정말로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처럼 되지 않았을까?


  오래전, 교수님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비행기가 추락한 어느 정글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이 구조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구조대가 오지 않고, 사람들에게 길을 찾아보더라도 결국에는 비행기로 돌아와 버리니 비행기를 폭파시키고 나서야 스스로 길을 찾아가서 모두 구조되었다는 이야기다.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이들에게 가족들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따뜻한 방, 그리고 모든 것이 들어있는 만능 장난감(컴퓨터)은 자아를 성장하게 하지 못하는 엄청난 유혹일 것이고 나 또한 그랬다. 아마도 일하는 것을 그만두었더라면 나도 이야기 속 비행기로 되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편한 길로 가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성숙해짐을 위한 고생의 양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중요한 건 더 큰 목표를 위해 과감하게 고통을 선택하는 삶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 아무튼 현재 격리된 상황에서 컴퓨터는 조심해야 할 물건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더 되새긴다...

진짜 열심히 하다 보면 시간도 잘 가고 내 인생도 잘 가라 하게 된다 [출처: pixabay - Rene]

3. 3일 차 - 다시 나를 찾다

 2일 차에 정신없이 놀고 나서는 조금 후회가 되서인지 자기 전 내일의 할 일을 적어놓았다. 아침의 30분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는 아침에 계획을 세우면 하루는 그 30분에 맞춰서 살 수 있게 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중요한 건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그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오늘 아침 첫 번째 계획이었던 이부자리 정리하기를 했다. 그랬더니 다른 일들을 하고픈 맘이 생긴다.  물론 나라는 사람은 항상 계획적으로 살 수 없기에 어느 순간 생각 없이 컴퓨터로 게임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번 유혹에 빠진 사람이 다시 그 유혹에 빠지는 것은 쉽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되돌아오는가일 것이고 다행히 오늘은 유혹에 빠진 날은 아닐 것 같다. 휴...


 코로나가 지독한지 아직 부은 목은 낫지 않았고, 이 방에서 보내야 할 날이 많이 남았다. 격리 중인 이 시간은 온전히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왕에 보낼 시간이라면 많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보람차게 시간을 보내고 건강하게 방 밖으로 나와야겠다. 그리고 격리가 끝난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방 밖에서 고생하고 있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나들이 갈 준비도 해야겠다. 격리가 끝나는 순간부터 몰려올 일을 위해 나는 이곳에서 좀 더 단련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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