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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송이 Aug 05. 2023

회사생활과 원자론

조직은 무엇으로 움직이나

 엄청난 일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부서로 한 달 정도 파견을 왔다. 처음 파견 오기 전 어떤 업무를 해야 하는지를 들었을 때 불 끄러 온 소방수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을 참 많이 했다.


 그렇게 2주가 흐른 후를 보니 그럭저럭 잘 돌아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같이 파견 온 사람들이 굉~장히 유능하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일을 해주고 있는데 "이게 가능한가" 하는 일을 "이게 가능하네?" 하게 만들어준다.


 조직에서 팀장 같은 내 위치에서 솔직히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상사에게 지침을 받고 인접 부서와는 협조하고 예하 부서원에게 지시를 한다. 연차가 오래되어 그래도 내가 헛소리를 하지는 않고 있지만 파견 와서 이렇게 모두가 야근을 일상처럼 해도 열심히 하는 건 파견 온 사람들 모두가 잘 뭉치고 있기 때문일 거다.


 사실 처음 와서 인사하자마자 나는 당당히 말했다.  

 "저는 야근은 싫고, 밥 때는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얼른 할 만큼 하고 퇴근하시죠." 그리고는 회식 좋아하는 사람이 많길래. 가능하면 자주 식사하고 때때로 밥을 샀다.


 여기까지 보면 꼰대스럽지만 나는 사람 많은 회식에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회식자리는 그저 만들어 놓으면 서로들 오늘 했던 일들을 복기하고 재밌었던 일들을 말한다. 나는 회식에 참석한 가장 나이 많은 어르신(나이가 참..)으로서 오늘 칭찬하고 싶은 사람들 칭찬하는데 시간을 쓴다. 진짜 진심을 다해 열심히 칭찬한다.


 주변 부서 상황들을 매일 보는 입장에서 사실 이런 상황들은 신기한 상황이다. 주변 부서들에서 나와 비슷한 조직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맨날 사람이 퇴직하거나 타 부서로 가버린다. 대충 이야기 들어보면 부서장이 말썽인 경우가 많다. 보통 지침을 너무 자주 변경하거나, 일을 너무 많이 주거나 시간을 너무 안 지켜서(보통은 늦어서) 업무가 딜레이 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그런 분들과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분들의 머릿속은 한결같다. 업무와 성과, 그리고 이상하게도 창의성(?)이 가득하다. 주장도 거의 비슷하다. "무언가 획기적인 일을 해보겠다. 나를 따라오면 최고의 성과가 있을 것이다. 나는 성과만 본다." 거의 여기서 별로 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아 물론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나도 그런 적 있으니까. 그리고 그만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은 그렇다. 물론 기본 원리는 좋은 성과지만 늘 우리가 빼먹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건 사람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과학에 발전에 크게 기여한 원자설은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으며, 원자들끼리 자리를 바꿈으로써 모든 물질이 만들어진다"는 가설이다. 물론 과학의 발전으로 많은 내용이 달라졌지만 오늘날 조직을 유지하는데 있어 원자론만 한 비유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환원가능한 자원을 많이 가지고 싶어 한다. 판타지 소설에서는 마나(mana), LOL 같은 게임에서는 금화, 그리고 현실에서는 돈이다. 환원가능하다는 것은 이거 하나만 가지면 얼마든지 내가 필요로 한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기에 이런 자원을 많이 가진 사람은 큰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회사는 어떨까? 흔히 생각하기로 회사는 내가 다니는 것이니까 내가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개발을 하거나, 야근을 하며 밤을 새우는 이유가 그렇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들이 결론적으로 회사에서 떨어지는 다양한 업무들을 처리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특히 중간 관리자는 더더욱 그렇다.


 관리자는 단순히 표현하면 이 업무를 시켜서 완료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부서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된다. 그러면 그 업무는 확실히 처리가능한 업무가 된다. 때때로 그 업무를 처리할지 미지수인 경우가 있다. 그때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업무를 준다. 깊은 신뢰와 함께 말이다. 이렇듯 회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환원가능한 자원은 다양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들 밖에 없다. 회사가 원자론을 적용하는데 가장 잘 어울리는 이유다.


  물론 사람은 관리자가 환원가능한 자원으로 활용하기에 쉽지 않은 부분이 많다. 개인별로 특성과 기호를 파악해야 하고 어떤 능력이 있는지 찾아야 한다. 때로는 개인들의 고민들이 있을 수도 있다. 또 부서의 사람이 자주 바뀌어 난감할 때도 있다. 관리자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는 데까지 무한한 인내심이 요구되는 자원이다.


 하지만 한 명 한 명을 배제하고 일을 한다는 것은 크게 보았을 때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누군가 일을 너무 못해서 그 사람을 무시하고 관리자가 직접 그 사람의 업무를 처리한다면, 결국 업무는 중복되어 효율이 줄어든다. 그 사람이 관리자의 멸시를 버티지 못해 부서에서 떠났을 때,  자원의 양이 줄었기에 우리 부서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은 하나 줄어든다. 게다가 그 빈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내 업무+빈자리 업무라는 이중고로 고통받을 수 있어 악순환이 반복된다.


 관리자는 선택하라면 모두가 피할만한 자리지만 내가 만든 환경이 잘 돌아가는 것을 볼 때 이처럼 뿌듯한 위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절반 남았고 박수받으며 돌아갈 내 모습을 떠올린다. 난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닌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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