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정물문

첫 번째 물건_타공기

차라리 구멍으로 무언가 새어나가길 바랐다

by Plum

정물문.

물건에 대한, 실은 한 시기를 증언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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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떠밀려 졸업을 했고, 나는 내 인생의 한 시기가 끝났음을 직감했다. 집과 가까우니 언제든 갈 수야 있겠지만 더 이상 느긋한 기분으로 캠퍼스를 거닐 수는 없을 것이었다. 많은 동기들과 달리 나는 학교 다니는 걸 좋아했다. 마지막 학기엔 거의 집착하는 수준이었다. 친한 동기가 많은 것도, 과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공강 시간에 도서관에 나른하게 앉아 있다 수업 시간에 맞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들고 강의실에 살짝 일찍 도착해 앉아 있는 게 좋았다. 언제든 모든 건물에 들어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도서관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적어도 그 안에선 세상이 이렇듯 나를 위해 열려 있으리라는 환상을 품을 수 있었다.


많은 것이 종결됐음을 알리는 신호는 도처에 있었다. 우선 국가 근로 자격이 상실됐다. 사실 국가 근로를 엄청 즐겼던 건 아니었다. 행정실의 엄격한 위계는 일개 대학생인 나에게도 다 보였고, 기대와 달리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즈음엔 국가 근로가 매우 고마웠는데 대학생이라는 자의식을 조금 더 오래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은 6월에 끝났지만 국가 근로 종료일은 8월이었다. 행정실 선생님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던 날, 일이 끝나는 건 하나도 아쉽지 않았지만 캠퍼스를 가로질러 지하철역으로 가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4년 넘게 나를 감싸주던 것이 방금 사라졌고, 이제 어딘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하거나 자격을 갖추어야 했다.


코스모스 졸업이라 더더욱 바로 취업하긴 힘들 테니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알아봤다. 새내기 때부터 아르바이트는 계속 해왔지만, 이 때는 정말로 깜깜한 기분이었다. 학생일 때에는 학교가 일상의 주축이고 아르바이트는 당연히 부수적인 것이었는데, 이제 내 일상은 고작 아르바이트에 의해 구성될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스스로가 아주아주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나름대로 뚜렷한 자의식을 지니고 있다 자부해왔는데,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그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발 밑이 한없이 물렁물렁해졌고 나는 속절없이 휘청거렸다.


학교 생활을 정말로 즐기기만 했던 나는 졸업할 때까지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잡지 못했다. 아니, 사실 대학 생활을 하며 내가 누구보다 일반적인 회사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겉으로는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나는 소속감을 느끼는 데 아주 취약했다. 사람을 성향이 아닌 위치로 대해야 한다는 것 또한 내겐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진로를 확실히 잡아야 하는 시기에 나는 내가 마땅히 나아가야 할 진로가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취업'하면 연상되는 그런 회사에 걸맞아야 하는 건 아니다. 스스로 맞지 않는다고 느끼면 다른 진로를 찾으면 된다. 하지만 나는 그 와중에 허영심은 엄청나게 컸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새 옷을 입고 싶었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래, 인정하기 정말 싫고 이 부분에선 그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끼지만 나는 내 학교가 자랑스러웠다. 누군가 물어볼 땐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토록 단순했던 내가 신기하기까지 하지만 그 때는 그랬다. 이렇듯 얄량한 자부심의 대가는 그대로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허영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아직까지 아르바이트생의 신분은 괜찮다. 겨우 한 학기 늦게 졸업했을 뿐이고, 나는 아직 어리며 졸업 후 반 년쯤 취업 준비 하는 건 요즘엔 아무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이전과 달리 "어디서 일해?"라는 질문에 그럴 듯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휩싸였다. 대학생이었을 땐 아무 답을 내놓아도 괜찮았지만, 허울이 사라진 지금 그것은 내 외피의 중요한 부분을 이룰 터였다. 그래서 그 와중에 나름대로 엄선하여 그럴듯한 외국계 회사에서 사무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물론 쓰잘대기 없는 짓이었다. 내가 맡은 일이라곤 어떤 회사인지가 전혀 문제 될 것이 아닌, 지극히 단순한 업무였으니 말이다.


내 예상대로 졸업 후의 아르바이트는 달랐다. 일은 더 지겨웠고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아르바이트였지만 근무 시간은 아홉 시부터 여섯 시 까지로 일반 회사원과 똑같았고, 퇴근(나는 이 때 내가 감히 퇴근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 몇 번이고 자문할 정도로 의기소침해져 있었다)을 할 때마다 나는 이중의 불행을 느꼈다. 첫 번째로는 몇 달 전만 해도 캠퍼스를 큰 몸짓으로 누비다 지문 인식을 하고 들어가야 하는 빌딩의 지극히 한정된 공간에서 웅크리고 있어야 하는 나의 처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지금의 내가 마땅히 준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빌딩에 고정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미친듯이 불만족스러운데,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 또한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싫었다. 내몰리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취미를 찾아나섰다. 이때 처음으로 취미는 필수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도 나는 취미가 많은 편이었다. 평생의 취미였던 독서에 영화 감상, 걷기와 전시회 관람 등등... 하지만 아예 내 생각이 개입되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취미를 가져야 했다. 기존에 내가 가졌던 취미는 '나'를 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나를 잠시 잊을 수 있는 취미가 필요했다.


단순한 노동이 반복되는 취미. 프랑스 자수나 위빙 테피스트리 등을 해볼까도 생각했으나,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멍하니 실을 꿰는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하니 미칠 것 같았다. 그리고 결국 크게 도피의 느낌이 나지 않고 가볍게 넘길 수 있으면서도 시간을 멍하니 보낼 수 있는 취미를 발견했다. 바로 당시 슬금슬금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육공 다이어리를 꾸미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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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일기는 꾸준히 써왔고, 나름대로 글 위에 스티커를 붙이고 다른 색 펜으로 밑줄을 긋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꾸미기' 위해 다이어리를 쓰는 건 처음이었다. 예전엔 다이어리를 꾸민다는 표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일기란 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손재주가 좋은 친구들의 다이어리를 보면 부럽긴 했다. 몇 번 따라하려고 시도도 해보았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나는 늘 쓸 말이 너무 많아서 빈 공간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쓸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쓰고 싶은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늘 종이가 뚫어져라 미친듯이 글을 써내려가며 고민을 떨쳐내곤 했는데 이 시기의 고민은 실체가 없어 그것을 활자로 옮긴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언어로 나타내기 위해선 그것을 응시해야 했는데 그때 나는 눈을 돌려 내 상황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일기를 쓰면서, 쓰지 않을 수 있는 방법. 나는 내가 이전과 같은 상태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었다.


실제로 재밌기도 했다. 일반적인 다이어리와 달리 육공 다이어리는 다양한 속지로 채울 수 있고 원할 땐 언제든 구성을 바꿀 수 있으며 망해서 뜯어버려도 아무런 티가 나지 않는다. 어쨌든 집중은 해야 하는 단순노동과 '이게 진짜 내 삶은 아니다'라는 자기 암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잔뜩 피곤해져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단순 노동은 이어졌다. 속지 크기에 맞추어 재단기로 종이를 자르고 퐁 퐁 퐁 퐁 퐁 퐁 여섯 개의 구멍을 뚫었다. 나는 그 일을 거의 경건한 기분으로 했다. 여러 색지에 하염없이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차라리 구멍으로 무언가 새어나가길 바랐다. 그건 꼭 잡념이나 고민, 내 나쁜 습관이 아니어도 좋았다. 감히 지금을 불만스럽게 만드는 희망, 비전, 이상 따위도 구멍으로 모조리 흘러나갔으면 싶었다.


그래봤자 일 년 전인데, 그때 종이에 구멍을 뚫고 있는 나를 떠올리면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진다. 당시의 내가 이 말을 듣는다면 발끈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당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어떤 한 시기에 느끼는 연민만큼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도 없다. 어찌됐든 지금의 나로 이어진 과거에 내가 돌려줄 것은 찬사뿐인데, 왜 우리는 물건에 사용 당시와는 전혀 무관한 감상을 덧붙이는 걸까?


어쨌든 지금은 육공 다이어리를 쓰지 않는다. 망치면 언제든 찢어버려도 된다는 것이 어딘가 허무해서다. 그렇게 없어진 속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떠한 생생한 순간도 변화한 현재에 맞추어 다른 장면으로 변한다. 그러니 페이지를 망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지니는 현재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는 과거에서, 지금 보면 망친 페이지가 괜찮은 것이었을지 모른다는 미련을 가진다.


그래서 그저께 내가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로 몰스킨 다이어리를 샀다. 가격이 꽤 나가니 선뜻 찢어버리진 못할 듯해서다. 아무리 많은 공을 들여도 나중에는 속절없이 변색되리라는 걸 알지만, 나는 적어도 나의 모든 페이지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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