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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Dec 30. 2022

노엘의 새벽

    지금 시간 저녁 8시 26분. 내일 새벽 4시 출근을 앞두고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채 6시간도 남지 않았건만 왠지 바로 잠들기 아쉽다. 그 이유는 일요병에 걸려서. 으아아아아아앙


    24일 크리스마스 전날. 새벽 2시부터 근무를 시작해 오전 11시에 퇴근했다. 쏟아지는 잠 때문에 내가 뭘 먹고 있는지도 몰랐던 가족과의 크리스마스 식사. 그리고 오늘 목요일까지 이어진 휴가. 월, 화, 수, 목 금쪽같이 아깝고 달콤했던 휴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휴가 전에는 분명히 시험공부도 좀 하고 운동도 하고 지인들도 만나고 계획이 엄청나게 많았건만,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쌓인 긴장이 확 풀린탓인지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이불밖을 도무지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코로나에 걸려 자가격리를 하던 시기보다 더 격하게 쉬는 것에만 집중했던 나날이었다. 휴가 기간 가장 좋았던 건 비행기를 타고 온 이국의 과일, 리치를 맘껏 먹었다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리치로 피에르 헤르메의 이스파한을 시도해 보았을 텐데, 하필이면 똑 떨어진 계란을 사러 밖에 나가는 것조차 귀찮아서 포기했다.      

미스터피자에서 먹던 냉동 리치와는 차원이 다른 신선하고 향긋한 리치!!!

    정신 차리고 다 잊기 전에 기록해보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의 기록. 대목을 앞두고 늘 아픈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옆에서 기침만 하면 '코비드! 코비드!'라고 외치며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놀리던 니콜라스는 그의 설레발대로 독감에 걸려 23일과 24일 날 결근을 했다. 셰프 아따나스의 어깨가 많이 무거웠겠지만 우리 어프헝티들은 오히려 아따나스의 주도하에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게 더 좋았다. 작업 속도보다는 위생과 작업의 완성도를 더 중요시하는 아따나스에게 배울 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작년에는 부쉬를 직접 만들지 않고 다른 업장에서 부쉬를 받아 장식만 해서 판매했어서 올해만큼은 셰프의 주도하에 부쉬를 만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일은 힘들더라도 확실히 배우고 넘어가는 게 좋은 것 같다. 특히 어프헝티 시절에는 말이다.   

아무도 없는 새벽 1시 55분의 빵집 앞. 빵집 앞에 옹기종기 앉아 아따나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날은 크리스마스 부쉬만 만들고 제누와즈에 크렘 무슬린(크렘 파티시에에 버터를 섞은 것)을 발라 통나무 모양의 부쉬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전형적인 부쉬드 노엘이다. 제누와즈 빵에 시럽을 바르고 크림을 발라 김밥을 말듯이 돌돌돌 말고 그 위에 크림을 얹어 나무토막처럼 무늬를 내주면 끝! 제누와즈도 만들 줄 알겠다, 마는 것도 잘 배웠으니, 나중에 딸기잼을 바른 롤케이크나 생크림을 잔뜩 넣은 일본식 도지마롤을 한 번 만들어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연이어 이어진 무스 부쉬. 몰드에 무스 크림과 인서트를 넣고 꽝꽝 얼린 부쉬이다. 냉동고에 얼려둔 부쉬를 플라스틱 몰드에 따뜻한 물을 부어 조심히 빼내는 Démouler 라는 과정부터 시작했다.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케이크에 물이 닿지 않게 조심조심. 아깝게도 이렇게 한번 쓴 플라스틱 몰드는 씻기 귀찮다는 이유로 혹은 내년까지 가지고 있을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바로 쓰레기통을 직행했다. 몇 개 가져가 집에서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몰드가 너무 커서 우리 집 냉장고에는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아 마음을 접었다. 안타깝게도 주방에서 나오는 쓰레기 양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싱크대에 가득쌓인 플라스틱 몰드와 몰드에서 꺼낸 로얄 부쉬

 그 후 주문량에 맞춰 크기별로 자르고 데코레이션 하는 시간을 가졌다. 개인적으로 이 데코레이션 하는 일이 가장 즐겁고 재미있는 것 같다. 초코 부쉬에는 검은 나파쥬를 입인 후 그 위에 초콜릿으로 장식했고, 코코 망고 부쉬에는 주변에 코코넛 가루를 묻힌 후 위에 냉동망고를 뜨겁게 끓인 나파쥬와 바닐라를 섞은 것을 올려 장식했다. 마롱 크렘에 럼을 가득 넣어 알딸딸한 맛이 일품인 마롱 부쉬에는 갈색 초콜릿 스프레이를 뿌리고 초콜릿과 마롱글라세로 장식을, 그리고 산딸기 부쉬에는 분홍색 초콜릿 스프레이를 뿌리고 하얀색 구슬 초콜릿으로 장식을 마무리했다. 큰 부쉬에는 양 끝에 초콜릿 장식을 더 붙여 주었다. 

    장식이 모두 끝나고 상자에 넣어 주문서를 붙여 조심조심 매장으로 옮기고 나니 오전 10시. 가게 앞에 손님들이 줄 서 있는 것을 보니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도 들고 왠지 뿌듯했다. 일하는 내내 5분도 채 쉬지 못하고 계속 뛰어다니며 일을 했더니 청소를 바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아 한참을 밖에 앉아 손님들 구경을 했다.  

손님이 많으면 사장님이 제일 좋지만 파티시에도 마찬가지로 행복하다.

    이렇게 2022년도 크리스마스 대목도 끝이 나고, 12월 31일 올해 마지막 대목만 남았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오후 9시 30분... 내 휴가 진짜 다 끝난 거야?


어서 조금이라도 자야겠다! 


내일 출근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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