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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Dec 20. 2022

노엘 이즈 커밍

월드컵, 바이러스 그리고 부쉬

    사장을 따라 사무실에 들어갔다. 작년 9월에 계약서에 사인하러 들어가 본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들어오는 공간이다.


    주방에서 늘 서서 이야기를 하다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하려니 마치 담임선생님과 상담하러 온 학생이 된 기분이다. 사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내년에 뭐할 생각이니. 아직도 제빵 공부하고 싶어?'

    

   제과(Pâtisserie)와 제빵(Boulangerie)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이곳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겉바속촉한 빵을 만들어내는 제빵사들의 모습을 동경했다. 그런데 밀가루 포대를 불끈불끈 들어 올리고 오븐에서 갓 나온 빵을 전혀 뜨겁지 않다는 듯이 맨손으로 낚아채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진짜 내가 할 수 있을까? 겁이 났다. 제과 CAP를 취득하고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든다는 것도 두렵긴 마찬가지였다.


    '실은 제빵을 배울지 제과 mention complémentaire를 할지 고민 중이에요.'

  

    '네가 어떤 것을 선택하든 우리는 너와 계속 함께 일하고 싶어. 이건 철저히 네 선택이야. 만약에 나중에 빵도 판매하는 제과점을 열고 싶다면 사장으로서 빵 만드는 법은 기초라도 알아야 하니 제빵 공부는 필수이고, 그게 아니고 계속 제과사로 일하고 싶다면 1년 동안의 제빵 공부는 솔직히 시간 낭비야.'


    15살에 프랑스에 유학 와 제빵을 공부한 사장은 자기 가게를 여는 게 꿈이라 최대한 많은 업장들의 노하우를 배우는 게 목표였단다. 그래서 6개월마다 한 번씩 업장을 바꿔가며 일했고 그때 배운 레시피들로 지금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빵만 아는 사장이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과 파트 직원들과 소통하기가 솔직히 힘이 든다고 말했다. 결국 전적으로 셰프 파티시에를 믿고 일임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왜 조금 더 어려서 제과를 배우지 않았을까 후회한다고도 했다.


    사장의 솔직한 조언이 고마웠다. 계속 함께 일하고 싶다는 말은 위로가 되었다. 아직 어느 것도 정해진 것은 없지만 1년 더 제과를 더 공부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물론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지금의 생또방을 떠나 다른 주방에서.    


    노엘(Noël).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12월 둘째 주 학교에 가니 많은 학생들이 크리스마스 준비 때문에 학교에 오지 못했다. 나를 포함해 7명이 전부. 실습시간엔 살구 퓌레를 이용한 무스 케이크와 파리 브레스트를 만들었다. 차라리 업장에서 일을 하는 게 나았을까 싶을 정도로 매일매일 머리에 쥐 나도록 시험공부만 한 주간이었다. 무려 7과목의 시험이 있었다. 대학시절 다시 수능을 봐서 들어온 30대 동기 언니 오빠들이 수업 내용은 이해가 잘도 되는데 문제는 암기가 안된다고 하소연했던 게 생각난다. 내가 지금 딱 그 처지이다. 안개 낀 듯이 뿌연 머릿속도 답답한데, 더욱이 주관식에 서술형 문제만 나오는 프랑스 학교 시험은 얄밉기까지 하다.  

단란하게 7명이서 진행된 실기수업. 그리고 Gestion 수업 세금계산 공식.  

    이번 12월은 아프기도 유독 아팠던 달이었다. 크리스마스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급격히 추워진 날씨 탓인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쿨럭쿨럭 기침을 달고 산다. 작년 이맘때쯤 코로나에 걸렸었어서 조심 또 조심. 다행히 코로나 검사는 음성으로 나왔다. 셀프 처방으로 중국 슈퍼에서 떡볶이 소스 한 병 사와 요 며칠 떡볶이만 먹었더니 그나마 코가 좀 뚫렸다. 국밥에 깍두기 먹고 싶....   

나뭇가지라고 해석되는 bûchette. 작은 크기 버전의 부쉬드 노엘이라고 할 수 있다. 손님들은 이 작은 bûchette을 맛보고 크리스마스 당일 큰 크기 부쉬로 주문해 사간다.

    버터가 많이 들어가 느끼한 bûchette 보다는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 수정과 맛을 연상시키는 pain d'épices가 내 입맛에는 딱이다. 업장 입장에서도 개당 1유로도 안 드는 재료비로 8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pain d'épices는 겨울철 효자상품. 툴루즈 주변의 프랑스 남서부 지방은 겨울철 대표 음식으로 거위 간 푸아그라를 많이 먹는다. 이 pain d'épices 조각에 양파절임을 올리고 그 위에 푸아그라 조각을 얹어서 먹는 게 가장 전통적인 방식. 생또방 초간단 레시피를 공개한다.


    (30개 분량 기준)

재료 : 2kg 버터

5kg 꿀

2kg 호밀가루

3kg 강력분 T65

220g 베이킹파우더

160g 향신료 가루

2L 우유


 버터와 꿀을 버터가 다 녹을 때까지 함께 끓이고, 버터가 녹을 동안 다른 통에 호밀가루와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향신료 가루를 골고루 섞어준다. 큰 반죽기에 먼저 우유를 넣고 가루 섞은 것을 다 넣고 섞어준 다음에 버터 꿀을 넣고 섞어주기만 하면 끝! 그후 틀에 나눠담고 180도 온도에서  20~25분 정도 구워주면 완성! 꿀의 일정 분량을 오렌지 마멀레이드 같은 재료로 대체하면 더 풍부한 맛을 낼 수 있다. 

피스타치오 산딸기, 망고 코코넛, 초콜릿 로얄, 그리고 밤 초코 럼 부쉬가 올해 생또방의 부쉬이다.  
파리의 유명한 제과점은 250유로짜리 부쉬도 판매한다던데, 그에 비하면 우리 부쉬는 가격이 착한 편?!


    프랑스가 아쉽게 월드컵 결승전에서 지고 말았다. 승부차기까지 맘 졸이며 본 재미난 경기였다. 요새 왜 그리 아픈 사람이 많은가 싶었더니 밤늦게까지 열심히 경기를 챙겨본 탓도 있을 것 같다. 월드컵도 끝나고, 이제 남은 건 크리스마스!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새벽 2시 출근 예정이다. 그때까지 아프지 않기!

어느덧 함께 일한 지 3개월이 넘은 어프헝티들. 이들 덕분에 올해는 작년보다 더 수월하게 일하고 있다. 고마워서 작은 크리스마스 선물도 준비했다. 우리 끝까지 버티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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