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임산부
봄이 왔다. 아파트 단지에 있는 커다란 아몬드 나무에도, 노오란 개나리 꽃도 만개했다. 복직 후 3 주내리 일하면서 7시간 연속 서서 일하는 게 태아에게 혹여나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많았던 시기였다. 때가 되어 추운 겨울이 가고 꽃이 피는 봄이 오듯, 어느덧 뱃속의 아기도 12주가 되었다. '아기는 생각보다 강하다'라는 말처럼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주수에 맞게 잘 커주어 얼마나 기특한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학교에도 다녀왔다. 2월 한 주를 못 갔으니 거의 6주 만에 학교에 간 셈이었다. 놓친 진도에 쪽지 시험 일정을 따라잡으며 어느새 졸업이 채 3달도 남지 않았다는 걸 온몸으로 실감하며 오랜만에 학업 스트레스도 받았다. 놀라운 소식도 있었다. 나의 실습 짝꿍인 엘리시아도 임신을 했다는 소식! 십 대뿐인 우리 반에서 유일한 성인이었던 알리시아와 나는 3주 차로 나란히 임산부가 되었다. 서로의 임신 소식을 알고 우리 둘 다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꺄악!!!!" 같은 반 학생들은 다음 임신 차례는 누구냐며 신기해했다.
놀라운 건 학교의 반응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교나 다름없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임신을 했다?! 그것도 결혼도 하지 않은 미혼의 어린 학생이?! 학교의 반응이나 회사, 선생님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 누구도 나나 알리시아에게 '몇 살인지, 결혼은 했는지, 계획임신인지 사고인지, 아이 아빠는 누구인지'와 같은 호기심과 비난이 섞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제일 먼저 들은 말은 '축하합니다!'라는 말이었다. 그다음 이어진 질문으로는 '쌍둥이인지, 단태아인지' 그리고 '올여름 자격증 시험을 치르는데 필요한 도움이 있는지' 등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임산부이자 학생인 우리들의 건강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었다.
4월에는 CAP 시험 중 스포츠 시험이 예정되어 있다. 나와 엘리시아가 선택한 시험 주제는 800미터 달리기. 여학생 기준으로 3분 30초 이내에 완주해야 만점을 받을 수 있는 쉽지 않은 시험이다. 참고로 나의 최고 기록은 4분 10초였나? 이것도 매주 연습을 해서 속도를 조금씩 줄여나간 덕분이었다. 하지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가장 우려되었던 점이 이 시험에 과연 응시할 수 있을까? 였다. 혹여나 넘어지기라도 하면? 4월에도 엄청 더운 남프랑스에서 달리다 탈진이라도 하면 어쩌나 온갖 걱정이 앞서 들었다. 이 걱정을 말하니 알리시아의 답은 명쾌했다. 산부인과의사나 주치의에게 서류를 받으면 스포츠 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침 12주 차 정밀초음파가 있던 날이라 바로 서류를 받아왔다. 참고로 프랑스는 12주가 지나야 만 임신확인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아마 12주 이전에 이 서류를 받으려고 했어도 불가능했을 거란 뜻. 덕분에 스포츠 시험을 3주 앞두고 시험 면제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덩달아 이번주부터 스포츠 수업도 면제! 10대 남학생들과 축구경기를 할 때마다 공을 피하기 바빴는데 참 다행이었다. 뿌리부터 한국인인 나는 체육 선생님께 수업에 빠져서 죄송하고, 괜한 특권을 누리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쿨한 체육 선생님은 눈을 찡긋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나의 권리를 먼저 생각하는 것. 참 잘 안 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공단과 같은 CPAM에 공식적으로 임신부 등록이 완료되었고, 임신기간을 41주로 세는 프랑스 셈법에 의해 내 공식 출산휴가는 9월 1일부터 시작되게 되었다. 프랑스는 출산 예정일로부터 6주 전 그리고 출산 후 10주, 총 16주간의 출산 휴가가 주어진다. 물론 다태아이거나 셋째 아이일 경우 출산 휴가는 훨씬 더 많이 늘어난다. 내가 걱정했던 건 출산휴가 시작이 빵집과의 계약 이후라서 출산휴가 급여를 전혀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였다. 하지만 찾아보니 계약이 끝난 후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이라면 출산휴가 혜택을 동일하게 받을 수 있단다. 다행이다. 프랑스에서 열심히 세금 내며 일한 대가를 여기서 받는구나 싶었다. 프랑스의 높은 출산율의 비결은 이런 세밀한 복지정책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비단 알리시아와 임신기간을 함께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외국인이라도, 빵집 견습생이라도 출산 비용이나 출산 후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란 의미이다. 시험까지 3개월도 남지 않은 시간. 요즘 퇴근 후 점심 먹고 잠자고 나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버렸는데, 퇴근 후 카페에 가서 한 시간이라도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 중이다. 아, 정말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