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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경 Mar 28. 2021

사회철학 책 '소외와 가속'리뷰

어떤 삶을 살고 싶은걸까


 경쟁에서 이기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한 때는 남을/자신을 이기는 재미에 온갖 에너지를 다 끌어 썼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깨야 할 퀘스트가 사실은 끝도 없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지레 겁먹고 힘이 빠졌다. 옛날과 다르게 요즘엔 '대학 잘 가면/'사'자 직업 달면 끝'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사실 대학 잘 가고 직업 잘 고른다고 그걸로 끝나는 사회가 병리적인건데, 언제 서울에 집 사고 결혼하고 노후 어쩌고... 까지 생각하는 순간부터 그저 침대에 눕고 싶어진다.





 하르트무트 로자가 쓴 '소외와 가속'은 내 마음을 대변하듯, 그리고 이 무기력의 이유를 알려주는 듯, 사회적 가속이 사회적 소외를 낳는다고 말한다. 그는 기술의 가속, 사회 변화의 가속, 생활 속도의 가속이라는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사회 전체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저술하는데, 목차만 봐도 가속의 행태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사회가 이렇게 계속 가속화될 수 있는 동력은 뭘까?

단연 경쟁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본주의 경제의 근본 원리인 이윤 법칙에 따라 시간과 돈은 동일시되어, 시간을 낭비하는 건 돈을 낭비하는 것과 같이 여겨진다. 그야말로 베버가 설명한대로, 시간 낭비를 최악의 대죄로 간주하는 엄격한 시간 규율 윤리(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삶에 파고든 셈이다.


개인들은 학위, 직장 내 위치, 소득, 과시적 소비재, 자녀의 성공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쟁투한다. 언제라도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개인은 기술 발전을 통해 절감된 시간을, 경쟁 우위를 획득하고 그 위치를 유지하는데에 소비한다.

경쟁력 유지는 더 이상 스스로 세운 목적에 따라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사회적 삶과 개인적 삶에서 유일무이한 목표가 된다. 사람들은 그저 같은 곳에만 머물려고 하기만 해도  점점 빨리 걸어야한다.



사회가 모든 면에서 빨라지기만 하는 건 아니다. 사회적 가속의 역기능적 결과로 감속도 나타난다. 근대 이후 정신병리적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는 건 과도한 가속 압력에 대한 개인적 감속 반응이다.


그래도 우리는 때때로 휴식을 취하지 않나? 대부분은 가속을 위한 기능적 감속이다. 휴양, 요가 강좌는 가속하는 사회 체계에 더 성공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경규님의 취중 문자. 엄청 성공한 사람도 이렇게 생각하는 게 인상 깊었다.

이 가속 사회 속 시간 규범은 전체주의식으로 끝없는 두려움을 주입한다. 실적을 낼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투쟁에서 패할 것이라는 두려움...그러나 이런 독재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은 인식되거나 지각되지 않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규범적 주장으로 진술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스스로 시간 관리를 못했다고 자책하고, 이 경쟁에서 이탈한 사람은 사회에서 낙오자가 된다. 이 과정에서 근대 사회는 관용과 용서를 받지 못하는, 죄 있는 주체를 만들어낸다. 이 시간 규범은 규범 자체로 성찰되지도 않으면서, 개인과 사회의 자율성을 무자비하게 빼앗아간다.



애덤 스미스, 밀턴 프리드먼 같은 자본주의 옹호자들은 자본주의가 생산적이고 강력해지면 인간이 궁핍과 쇠망의 위험에 쫓기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개인적인 인생의 계획, 꿈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 때의 가속과 경쟁은 자기 결정이라는 목표를 위한 수단이지만, 이 가속사회에서 이 믿음은 더 이상 신빙성이 없다. 여기서 나의 개인적인 주체성, 열정, 창의력은 경쟁력 향상에 이바지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그러나 비싼 집이 있다고 좋은 차가 있다고 이런 회의가 끝나는 것은 아닌 것도 안다



따라서 이런 사회적 조건들은 소외 상태를 야기한다.

로자는 소외가 '주체가 외부 행위자나 요인에 의해 강제된 목표나 실천은 아니지만(즉, 실행 가능한 다른 선택지가 있지만) 스스로 진정 원하거나 지지하는 것도 아닌 목표나 실천을 따르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진정으로 원하지는 않는 일을 자발적으로 할 때 소외를 겪는다.


소외의 종류는 여러가지이지만, 자기 행위로부터의 소외가 특히 언급할만하다. 자기 행위로부터의 소외는 우리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을 하지 않고 주의산만하게 있는 과정에서 생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해야 할 의무를 되새길 때(오늘까지는 제출해야 돼, 다음 주 시험을 잘 봐야 돼)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일을 자발적으로 한다.


그러면서 티비를 본다던지, 유튜브를 보면서 실제로는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가속사회 속 개인들은 이렇게 의무를 유예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본래의 나는 지금과 썩 다른 사람이지만 단지 그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뭐 약간 이런 상태 아닐까. 저 마음가짐으로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이 흘러간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내린 선택은 진짜 나의 선택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상황에서는 늘 최선을 다 했고 어떻게든 나은 선택지를 찾아 헤맸지만, 돌아보면 아무 선택도 하고 싶지 않았거나 원하는 답이 뭔지 스스로도 몰랐던 때도 있는 것 같다.

단지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내린 몇 개의 선택들에(이것들도 '억지로' 내린 결정은 아니긴 하다) 또 나름 책임을 지겠다고 마냥 게으르게 산 것은 아니나, 한 번도 내 삶을 진심으로 산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그냥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갖기엔 내 삶에 대한 몰입이 부족한 것 같다. 언제든 뭐 하나 터지면(로또 안 사면서 로또 당첨 기원하는 등) 이 바닥(?) 뜬다! 는 생각을 갖고 산 지 어언 몇 년... 하나의 이벤트를 바라고 사는 게 정신의학적으로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된다.


그러면서도 예전으로 되돌아가 내가 원했던 게 뭔지 생각해보자면, 그래서 예전의 난 어떻게 행동했으면 좋았을까,에 대한 답도 모르겠다. 언제나 기한이 있었고 제약이 있었어서 그런지 태초의 욕망같은 건 진작에 흐릿해진 것 같다.


너무 비관적이고 우울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만의 특별한 고통이라기엔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그렇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 휴식이라면 휴식같은 걸 취해본 적도 있긴하지만 결국엔 기능주의적 측면의 휴식이었으까. 애초에 '두 발 전진을 위한 한 발 후퇴'가 아닌, 모든 자율성을 내 주체에게 돌려놓고 쉬는 경험을 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원래 철학이라는 게 답보단 오히려 질문을 주는 학문이지만, 대충 외면하고 살려고 했던 부분을 콕 집어주는 이 책을 읽고 나니 더 의문만 가득하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나의 허무함은, 계속해서 자신으로부터 소외당하면서도 사회 안에서의  지위를 올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오는  같기도 하다. 루소가 말한 것처럼 자연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진 않으니까, 이왕이면  살고 싶은 마음에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대충 끌려가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마 ''와의 화해는 요원하다는  이미 예전부터 스스로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프리드먼, 아담 스미스가 말했던 것처럼 완전한 자본주의에 도달하면 남과의 속도 경쟁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새 친구들끼리 장난 삼아 "자본주의를 졸업하려면 결국 자본을 얻어야 한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럼 재벌들이 열심히 사는 이유는 뭘까. (나보다도 열심히 산다) 개인의 자아실현이 목적이라기엔 다들 너무나도 번듯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데, 그냥 경쟁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이 정도면 됐다'라는 개념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


할 일을 앞두고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하릴없이 보면서 사실은 나에게 주어진 의무도, 지금 이 인터넷 서핑도,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요즘이다. 차라리 (생산적이지 않은) 진짜 취미라도 만들어서 가속 사회 속 나만의, 기능적이지 않은 감속 시간을 가진다면 좀 나을까? 주체적으로 산다는 게 뭔지, 그게 어떻게 실현가능할 지의 문제는 아마 살아가면서 계속 고민할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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