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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경 Aug 03. 2022

능력주의 사회의 맹점-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

허구의 사회로 미리 살펴보는 능력주의 사회의 이면


출생, 신분에 무관하게, 본인의 능력만으로 지위와 재화를 차지하는 능력주의(meritocracy)가 우리 사회의 보편적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의 결과로 여겨지는 것들은, 그것이 어떻든 개인이 감당해야 할 '응분'의 몫으로 여겨진다.


번역본: 능력주의



그러나 마이클 영은 이에 반기를 들어 능력주의를 타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2034년의 능력주의 사회를 가정하고,  사회를 고찰하는 소설의 형태로 능력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해나간다.


필자는 본인의 능력에 따라 합당한 몫을 가지는 능력주의가 완전히 타도되어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완전한 평등의 원리인 것처럼 군림하여 그에 따른 결과를 합리화시키는 '평등의 신화'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평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의내리기 쉽지 않지만, 직관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 뿐 아니라 모든 사회는 불평등해왔었던 것 같다. 마이클 영의 단어를 빌려 쓰자면, 모든 것은 사실 '운 좋은 정자(lucky sperm)'로 좌우되기 때문이다. 각자 상이한 능력을 갖추고 태어난 것도, 그렇지 못하게 태어난 것도 사실 전부 나의 선택과 무관한 타고난 것의 영향을 받는다.


"설사 보통 사람들이 고위직에 선발된 사람들에 견줘 타고난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증명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보통 사람들이 재화와 권력을 받을 자격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운 좋은 정자 클럽' lucky sperm club의 회원이 된다고 해서 이득을 누릴 도덕적 권리가 생기지는 않는다. 누군가 타고난 것이나 타고나지 못한 것은 그 사람이 스스로 한 일이 아니다."


마이클 영은 다층적인 차원에서 능력주의 사회의 기원과 성립 과정, 이면을 지적했는데, 나에게 와닿았던 것은 크게  가지로, 가족, 연공, 여성 다룬 주제이다.


출처 구글

먼저 능력주의 중심 사회에서 가족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능력을 얻고자 하는 원동력이  수도 있지만 불공정한 사회로 이끄는 역린이다. 거의 모든 부모가 자기 자식을 위해 불공정한 이득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능력에 따른 선발의 원리를 준수하기 위해서는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이클 영의 말마따나, 시민들은 자기 자식만 빼고 다른 모든 아이들에게는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기를 원한다.


야망 보상 원리에 따라 부모는 자신의 자식이 실패하더라도 손자가 능력주의 체제에 진입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내가 하는 대로 하지 말고 내가 바라는 대로 해라" 체제  부모의 심적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누군가 대신 승리를 거둘  있다는 '전망' 있다는  개인적 실패는 그렇게 고통스럽지 다.


 비단 한국 사회  아니라, 가족적 혈연의 덕으로 공정하지 않은 경쟁에서 승리하는 일은 여전히 만연한  같다. 마이클 영이 파악하기에는,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과 지위를 물려줌으로써  부모는 일종의 불멸성을 얻는다.



출처 구글


4 '연공에서 능력으로'에서는 연령 중심의 지배 계급 구성을 파악한다.  귀족주의, 관료주의  체제와 무관하게 일단 안정화에 접어들면 노인 정치(gerontocracy) 되었음을 역사적으로 확인할  있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란 결국 노인을 위한, 노인에 의한, 젊은이의 정부가 되었다."


열린 사회에서 소집된 다수 중 소수를 선발할 때 능력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데, 연령은 출생만큼이나 합리적인 기준으로 작동한다. 학교와 대학에서 승리를 거둔 이들은 이미 얻은 성공에 만족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배타적인 길드 정신을 안식처처럼 여기고, 학교에서 하듯 착실한 연령별 단계를 밟아가면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 것이라고 위안한다.


신입 사원은  년동안 업무를 배우고 나서도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공개적인 경쟁을   없는데, 말로는 능력에 따른 승진을 옹호하면서도 행동으로는 연령에 따른 승진을 옹호하는 딜레마가 있어기 때문이다.

책의 예시와 같이 ",그래요. 그렇지만  사람은 경험이  많잖아요"라는 말로 경험의 가치과대평가되고, 그에 대한 반박은 일축된다.


반면 나이가 들면 승진 제도의 경직성에 따라, 고용주에게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은퇴를 강요당하고 자존감까지 박탈당하는 경우가 있다.  능력의 유무를 떠나 연령별의 정해진 단계대로 성공이 어느정도 보장되고 박탈되는 것이다.


세번째로 여성 주제로 능력주의를 바라보았을 , 확률적으로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만큼 많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릴  있다. 그러나 마이클 영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머리 좋은 여자아이들은 능력주의 사회에 진출할 남자 후보생과 같은 교육을 받지만, 여자는 결혼하기 전까지만 자기가 훈련받은 자리를 차지한다. 결혼하는 순간부터 여자는 어쨌든 몇 년 동안 아이를 키우는데 전념하리라는 기대를 받는다"


여성들은 언제나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존재인지에 따라 평가를 받았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지능보다는 개인적 특질로, 세속적 성공보다는 따뜻한 마음씨와 발랄한 성격, 매력으로 평가받았다.


능력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회에 살아가면서도,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어떤 능력의 담지자보다는 다른 특질을 갖춘 대상으로 간주되며,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사회적으로 충분히 활용하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을 책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지능+노력=능력' 모토로 삼는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미래를 그린 소설인 'Rise of meritocracy(능력주의)'는 위와 같이 능력주의를 타도하자고 하면서도 그것을 통째로 부정하지는 지만, 우리 사회의 이 지배적 관념의 맹점을 지적한다.


'능력 있는 개인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특정한 종류의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 계급으로 굳어지고 나머지 사람들은 거기에 끼지 못한다면 문제가 된다'


또한 일부 구성원들은 자기 자신의 중요성에 도취되어, 공감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분별없이 행동하기도 한다.


반면, 책의 가상적 상황 설정에서 '하층 계급'으로 일컬어지는 이들은 몇 번이고 시험을 거쳤음에도, 모든 기회의 끝에도 실패했다는 이유로 기회의 박탈 뿐 아니라 '실제로 열등하다는' 인식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 계급을 가로지르는 심연이며, 사람들이 능력에 따라 분류된 후 생겨난 간극이다. 오늘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성공이란 자기가 지닌 역량과 기울인 노력, 부정할 수 없는 자기의 업적에 뒤따르는 보상일 뿐이라는 것을 인지한다.


인간들 사이에는 우열이 존재하며, 지적으로 우수한 사람은 꼭대기에, 열등한 사람은 바닥에 있어야 한다는 원리에 순응하게 된다.



글에서 파악해야 할 수 있는 논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현대 사회에서 사람의 능력에 따라 인생을 지위를 부여받아야 한다는 원리가 도덕적 권고처럼 자리를 잡았는데, '평등한 기회'의 개념과 결합되자 건드릴 수 없는 성배가 되었다.

능력주의가 가진 많은 맹점이 '노오력의 부족' '타고나길 열등함'으로 축약되어 그 근본적 불합리성을 가림에도,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본인이 열등한 것으로 취급받는 것 같다.


두번째로, 거의 모든 사람은 어떤 이들이 다른 이들보다 낫다고 여긴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전문직 계급이 육체 노동자보다 우수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능력주의 중심 사회에서 인정받는 능력(merit)의 준거는 무엇인가? 사실 간단히 일면적으로 대답할 수 없는 문제임에도 많은 사람들은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는 것 같다.



능력주의 중심 사회에서 우리는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 속에서 각자 응분의 몫을 받는다는 생각은 벗어나기 고통스러운 꿈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에 따른 결과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야한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앞서 언급했듯, 나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몫을 가져가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능력' 하나의 도덕적 잣대가 되어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하나의 단일한 원리로 자리잡는 것에 대해서는 경각심을 가져야한다고 본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을 다시 검토하듯 바라본다면, 그동안 현시되지 않았던 맹점이 시야에 들어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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