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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경 Jun 17. 2023

철학적 관점으로 보는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밀 자유론, 니체의 도덕철학


요 며칠 너무 재밌게 정주행한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긴 시간동안 연재되었던만큼 방대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는데, 오늘은 어설프게나마 철학적 관점에서 진격의 거인을 다시 보려고 한다.


굳이, 그리고 감히(?) 짧은 지식으로 리뷰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다들 진격의 거인이 철학적인 주제의식이 강하다고 리뷰를 남기면서도 분석한 글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당장 생각나는 면에서만 정리를 했다.


구체적으로 줄거리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아마도 이 글은 이미 진격의 거인 원작이나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을 위한 글이 될 듯하다.


간략한 도입부만 나무위키에서 긁어옴.


-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정체불명의 식인종 거인들에 의해 인류의 태반이 잡아 먹히며 인류는 절멸 위기에 처한다. 목숨을 부지한 생존자들은 높이 50m의 거대한 삼중의 방벽 월 마리아, 월 로제, 월 시나를 건설하여 그 곳으로 도피, 방벽 내부에서 100여 년에 걸쳐 평화의 시대를 영위하게 된다.
그리고 100여 년이 지난 845년, 대부분 주민들이 오래도록 지속되어 온 평화에 안주하는 반면, 주인공인 엘렌 예거는 사람들이 거인들에게 둘러싸여 벽 안에서 가축같이 살아가는 세계에 커다란 불만을 느낀다. 그는 벽 밖의 세계로 나가서 세계를 자유롭게 누비며 탐험하는 것을 열망한다. 거의 모두가 한결같이 벽 내부에서 주어진 평화를 만끽하는 것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벽 밖으로 나아가고 싶어하는 자신을 별종으로 취급하고 이단시해도 매일 월 마리아 밖으로 방벽 외부 조사를 나가는 조사병단을 선망하며 꿈을 키워갔다.
소꿉친구들인 미카사 아커만, 아르민 알레르토와 셋이서 함께 거리를 거닐던 어느 날, 태어나 자란 고향인 시간시나 구 방벽에 돌연 나타난 초대형 거인이 뚫은 방벽의 구멍으로 들어온 거인들에게 수많은 민간들이 죽임을 당하여 100년동안 만들어졌던 벽 안 평화가 무너진다. 어머니 카를라 예거가 거인에게 잡아 먹히는 참혹한 광경을 목도한 엘런은 복수심을 느끼고 지상에 있는 모든 거인들을 구축하겠다고 다짐한다.




사진 출처 구글



벽 밖의 세상을 궁금해하고 탐험하고 싶어하는 주인공 무리들을 무시하고 의아해했던 대부분의 사람들.

벽 안의 세상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이 악인은 아니었지만, 주인공 엘렌 예거는 거인들의 지배를 용인하고 현재의 삶(벽 안의 삶)에 만족하는 것은 '가축의 삶'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엘렌 예거의 대사.


"우리는 모두 태어났을 때부터 자유다. 그걸 가로막는 자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상관 없어.

흐르는 불이든 얼어붙은 대지든 뭐가 됐든지 간에 그걸 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자유를 손에 넣은 자다"


"나는 자유다. 내가 무엇을 하든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내 자유의지가 선택한 결과다."


출처 구글. 내가 캡쳐한 거 아니라 짤이 낡음ㅠ


자유 타령하면서 독단적인 행동을 하거나 중2병의 면모도 보여서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어쨌든 엘렌이 '본인이 생각하는 자유'를 얻고자 앞으로 나아갔다.


필자는 엘렌을 보며 공리주의자 밀의 '자유론‘이 떠올랐다.

존 스튜어트 밀에 따르면 더 많은 자유를 가지는 것, 더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진보(progress)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으로 본다면 자기의 잠재태를 완벽한 현실태로 전환시켰을 때, 즉 자신의 최대치의 존재가 되었을 때 더 많은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상태로 나아갈 수 있는 진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론' 3장 '복지로서의 개별성'에서 밀은 어떤 것이 관습이라는 이유로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아무 선택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육체적 힘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도덕적 힘은 사용될 때만 향상되므로, 자기 계획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만이 자기 재능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존재를 자신의 방식대로 설계하는 것이 최고인 이유는 그것이 그 자체로 최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존재 양식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그러면 밀이 이야기하는 개별성은 유적 존재인 인간 행복의 필수 조건이 된다.


그런데 밀의 개인(individual) 개념은 현실적으로 얼마나 있을 수 있을까? 밀은 권위의 강압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의 인습을 거부하며 자기 자신의 주관과 의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엘리트에게 위와 같은 자유가 주어지면 그 혜택을 모두가 받을 수 있겠지만(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점, 즉 피해를 미쳤다는 점에서 엘렌에게 주어진 자유의 결과는 밀의 이상과 다를 것 같지만...) 모든 사람이 엘렌처럼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필자에게는 안분지족까지는 아니더라도 갈팡질팡하면서 혼란스러워하는 쟝이 오히려 현실적인 캐릭터처럼 보였지만, 그럼에도 엘렌에게서 밀의 자유론을 읽어낼 수 있었다.




주변의 믿음을 비판하고 거부하며 자신의 자유를 찾아 행동한다는 점에서 밀은 엘렌 예거를 성숙한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또 다른 관점에서 봤을 때 엘렌은 차안에서 벗어나 피안에 이를 수 있다는 헛된 꿈을 꾸는 것도 같다.


불교에서 나오는 피안은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경지(강 저쪽 둔덕), 차안은 생사의 고통이 있는 이 세계다. (이쪽 둔덕) 니체는 영원회귀 사상을 통해 차안과 피안, 즉 현실 세계와 초월적 세계를 구분짓는 것을 거부했는데, 이는 현실에서의 삶을 경시하고 현실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것을 상정하여 그것만을 동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어릴 때부터의 소망인 벽 너머의 바다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엘렌을 행복해하지 않았다.

그토록 꿈꿔왔던 벽 밖의 세계에는 다른 인류가 있으며, 자신들이 그 인류의 증오의 대상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레에 사는 에르디아인들도 비슷한 틀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수용구에서 박해받으며 사는 에르디아인들은 과거 조상들의 죄인 원죄를 뉘우치며 규칙에 순종해서 살다보면 언젠가 명예 마레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고단한 현실에, 내가 받고 있는 고통에 이유를 만들어서 삶을 인과 관계의 틀 속에 집어 넣는다.


종교와도 같은 원죄로 인해 비참한 삶을 사는 에르디아인들에게 언젠가 인과 관계에 맞는 보상이 돌아올까? 그렇지 않다면 인생은 그야말로 무의미하고 모든 게 부질없는 걸까?


인간 병기로 나오는 리바이 병장마저도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다.

"나는 모르겠다. 줄곧 그랬다...내 자신의 힘을 믿어도, 신뢰하는 동료의 선택을 믿어도,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https://youtu.be/jV3HTahAPuo


서양 근대 철학의 기원이 자기 자신을 알고자 하는 것에서 출발한 것처럼, '진격의 거인' 인물들도 의미에 대해 고민한다.


리바이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 니체 역시 자유의지로는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자유주의에서 부풀린 자유의 허상과 달리-어쩌면 엘렌도 이 허상에 젖어있었던 게 아닐까- 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에서 내린 판단에서의 책임과 결과의 무게는 무겁다. 그러나 스스로 책임을 지고, 운명과 신을 저주하지 않는, 그러므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Amor fati(love your fate)를 완전한 형태의 개인을 니체는 초인이라 말한다.



만화 속에서 세월이 흐르면서 성장하는 인물들, 변화하는 태도와 삶의 자세를 보면 작가도 분명 어떤 식으로든 철학적인 함의를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런데 니체의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단계/ 주인과 노예의 도덕에 대해서는 '진격의 거인'과 연관해 분석한 글들은 꽤 있는 것 같아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으려 한다.


이야기가 너무 길고 방대해서 생각과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서 쓰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랜만에 실존주의와 자유, 그리고 그를 위한 투쟁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다음에는 기회가 된다면 (구)정치학도로서 혐오가 혐오를 낳는 에르디아 민족의 배제와 관련해서 써볼까 하는데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다ㅎㅎ



새로 찾은 내 사랑. 반박 시 수경 아커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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