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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경 Sep 15. 2020

총,균,쇠로 보는 포카혼타스

행운이 무기가 될 때

 누구나 한번쯤 아프리카 아동들에게 기부할 것을 권장하는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제대로 먹지 못해 야윈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대부분은 무관심하게 지나가고, 일부는 동정의 시선을 보내며, 그 중 일부는 기부를 신청한다. 내가 저기서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생각도 잠시, 곧 의문이 생긴다. 어느 유명한 책 제목처럼, 왜 세계는 불평등할까? 왜 지구 한 쪽에서는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며 다이어트를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제대로 먹지 못해 생존을 위협받을까?


책 총,균,쇠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을 설명한다. 부담스러운 두께에 1장을 넘기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책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자면 이러하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유라시아 대륙이 발전한 것은 보리나 밀을 재배하기에 적합하고, 가축화할 수 있는 대형동물이 살 기후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농업혁명이 가능한 곳은 지구상에서 한정적이었고, 그렇지 못한 뉴기니 등은 식량 생산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했기 때문에 금속 생산과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반대로 위도가 비슷한 유라시아 대륙의 나라들은 농작물을 재배해 가축을 길들일 수 있었고, 곧 이것을 동력과 운송수단으로 삼아 문자를 발명하고 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부분은 1531년 피사로가 168명의 군인으로 8만명의 잉카군을 무찌른 부분이다. 당시 평균 신장이 작았던 잉카족들에게 기마병은 두 배가 넘게 컸기에, 그들은 말 위에서 무기를 휘두르는 스페인 군인들을 보고 신이 돌아온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무장하지 않고 축제를 즐기고 있던 이들은 스페인군과의 전투로 하루만에 4000명이 죽었다. 또한 다른 대륙에서 온 이 침입자들이 갖고 온 병균 때문에, 코르테즈의 아즈텍 제국 침략 이후 면역력이 없는 원주민 부족 전체는 몰살당하다시피 했다.


인간의 믿을 수 없는 이기심과 잔혹함에 소름이 끼치면서도, 결국 우리의 삶은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기후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중국과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 유럽은 일찍이 분할되어 서로 경쟁하며 자유주의 사상을 주창했고, 중국은 통일제국을 건설해 오히려 폐쇄의 기조를 유지한다. 하지만 인간의 의지와 행동이 많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금 생활환경의 상당한 부분은 자연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명을 발달시키기에 적절한 기후권에 태어난 인간은 그것을 당연한 것이 아닌, 행운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총, 균, 쇠를 읽다보면 1995년 디즈니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가 떠오른다. 영화 '포카혼타스'는 신대륙 버지니아에 황금을 노리고 쳐들어온 영국인 무리의 존 스미스와, 원주민 추장의 딸 포카혼타스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이야기와 논외로 포카혼타스가 아름답기는 했으나,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예쁜 원주민' 클리셰를 모두 조합해 놓은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영화에는 17세기 영국인들이 신대륙에 황금을 찾으러 와서 마음대로 땅을 파헤치고 나무를 베는 장면들이 비교적 세밀히 나온다. 애초에 그들이 그럴 권리를 가진 것 마냥, 원주민들을 총으로 쏴죽이고 이제 황금을 독차지할 수 있다며 기뻐한다. 포카혼타스와 존 스미스는 서로 한 눈에 반하지만, 포카혼타스는 자신을 야만인(savage)라 칭하는 존 스미스와 다투면서, 바람의 빛깔을 보지 못하는 존 스미스를 오히려 야만인 취급한다.


포카혼타스는 미화되어 그려진 총,균,쇠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노력에 앞서 자연의 특혜가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식민지 원주민을 노예로 부릴 권한이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나온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지금의 생활이 자신만의 특권인 것처럼 여기는 무리는 영화와 책 밖에서도 계속해서 나왔다.  흑인들은 두뇌 능력이 떨어진다는 편향된 연구 결과를 들이밀며 노예 제도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백인들, 우생학적으로 유대인이 열등하다며 그들을 말살시키려고 한 히틀러가 그랬다.


현재는 다른가?

유럽에서 수없이 당한 인종차별과, 한국에서도 동남아인들을 차별하며 그들은 '원래' 멍청하다고 보는 시선을 보건대 그렇지 않다. 행운을 망각한 오만함이 지난 세기의 수많은 비극을 낳았으나, 자신이 뽐내는 교양과 문명이 특정 시기, 지역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어느덧 잊혀진 듯 보인다. 삶의 맥락을 무시하며 타인을 판단해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무기로 사용하는 폭력에서 우리는 정말 벗어나 있는지, 책과 영화 밖의 일상을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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