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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 Dec 27. 2021

피라미드? 거기 어떻게 가는건데

feat.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장편소설)

처음 이 책을 접한 건 언제였을까. 아마 고등학교 시절 그 혼란의 입시생활 언저리였을 것이다. 연금술사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마법같은 연금술이 내 고통스러운 입시생활을 치유해줄 것만 같았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도 그런 기대를 안고 책장을 펼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연금술의 비밀을 그리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의 여정을 통해 보자기에서 하나씩 그 진실을 알려준다.


산티아고는 어느 날, 같은 꿈을 두 번이나 꾼 것이 마음에 걸려 집시 노인을 찾아간다. 해몽을 들은 산티아고는 "이게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지." 하고 광장을 거닐다, 살렘의 왕이라 불리는 노인을 만난다. 왕을 자처하는 노인은, 집시 노인처럼 보물에 대한 환상을 가득 심어준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신을 만나고, 그가 인생에 한번 등장할까 말까한 귀인이라는 사실을 쉽게 예측할 수 있을까? 분명 그 누구도 단번에 알아채기 힘들 것이다. 산티아고 역시 카오스의 혼란 속에서 독자와 함께 갈팡질팡하는 기로에 놓여 있는다. 우리에게 만약, 아득히 먼 장소에 숨겨진 보물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모두가 자아의 신화를 이루고 명예, 부, 행복, 사랑이라는 보물을 얻고 싶지만,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을 포기하고 여생만 남지 않을까?

왕은 산티아고에게 또 이런 이야기를 해 준다.

"지난주에, 어떤 보석 채굴꾼에게 돌의 형상으로 나타났어. 그 채굴꾼은 에메랄드를 캐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었지. 에메랄드 하나를 캐기 위해 오 년 동안 강가에서 99만 9천 9백 99개의 돌을 깨뜨렸거든. 마침내 그는 포기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순간은 그가 에메랄드를 캐기 위해 돌 하나만, 단지 돌 하나만 더 깨뜨리면 되는 그런 순간이기도 했지. 나는 드디어 그의 삶에 개입하기로 했어. 그래서 한 개의 돌멩이로 변신해 채굴꾼의 발 앞으로 굴러갔지. 그런데, 그는 어떻게 했는 줄 아는가? 오 년동안 보람없이 노동한 것에 잔뜩 화가 나서, 나를 저 멀리 던져버렸어. 그가 던진 돌은 날아가 다른 돌과 세게 부딪쳤고, 그리고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를 내보이며 깨어졌지.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어. 이미 뒤돌아선 뒤였거든"


우리는 조금만 더 간절히 바라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모두 꿈에 닿을 수 있지만, 기회의 순간을 알아채지도 못한 채 평생을 그냥 살아간다. 사람들이 삶의 이유를 빨리 배우는 만큼, 빨리 포기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를 대신해서, 산티아고는 결국 양치기의 생을 포기한 뒤, '피라미드' 근처에 있다는 보물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우리에게도 아마 각자의 피라미드가 있을 것이다. 무수한 보물이 숨겨져 있는 곳 말이다. 그럼 우리는, 그곳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까? 산티아고처럼 현생을 포기하고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허황된 꿈을 좇아 살아야 할까? 그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바라는 마침표일까?


나는 <연금술사>가 단순히 그것을 종용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산티아고의 여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면 우리 또한 충분히 삶의 방향에 놓여진 여러 표지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을 읽었던 당시, 나는 주인공처럼 주변에 어떤 표지가 숨겨져 있는지 찾아 나섰다. 그 결과 등굣길에 제비들이 총총걸음으로 내 곁을 지나가면, 특별한 일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끔 내 주변을 감싸는 회오리 모양의 바람이 있었는데, 그 바람이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의 순간들이 쌓여 사실, 필연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언어를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 주변에 보이는 깨달음의 순간을 발견하고, 내가 사는 방식에 열정을 조금만 더한다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피라미드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1. 조금 더 활짝 웃고

2. 조금 더 일에 집중하고

3. 조금 더 재밌게 친구와 수다떨고

4. 조금 더 건강하게 밥을 먹는다면,

5. 조금 더 나를 사랑해준다면,

사소한 표지도 나에게 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잘 하고 있다고.


산티아고는 이윽고 피라미드에 도착해, 열심히 보물이 있는 곳을 파헤쳤다. 하지만, 그곳엔 그 무엇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그 옆을 지나가던 아랍인 병사의 이야기를 통해 보물이 있는 곳이 자신이 양치기였던 시절 잠을 자던 교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그는 목숨을 건 험난한 여정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산티아고와 함께 눈믈을 흘리며 정말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모두에게는 가슴속에 품고 있는 저마다의 피라미드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기 위해 어떤 모험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산티아고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청년이었으나 아주 단순한 진리 하나만을 가지고 살아갔다. 양들에게도 배울 수 있고, 크리스탈에게도 배울 수 있으며, 사막으로부터도 배울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우리도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고자 한다면, 그 어떤 것을 통해서도 배움이 쌓여 지혜를 얻지 않을까? 그가 양치기로 살았다면 평생 몰랐을 것들을 말이다.


이 책에 가장 유명한 구절이 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우리가 세상을 여행하며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본다면, 우주의 표지가 우리를 향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줄 것이다. 그런 표지에 대한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조금 더 편안하게 보물을 찾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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