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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 Jan 12. 2022

프로취미러의 슬기로운 취미생활 (3)

이중에 하나쯤은 하고 싶겠지

7. 피아노 연주

사람이 살아생전에 다룰 수 있는 악기가 하나쯤은 있어야 될 것 같아서 다들 어릴 적 배우고 오는 것이 바로 피아노이다. 피아노는 대체 누가 유행시킨걸까. 어쩌다 몇 십년동안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의 반전없는 예체능 학원으로 자리잡았을까. 그만큼 대중적인 악기인데, 그렇다고 또 취미로 하는 사람은 몇 보지 못했다. 아마 어릴 적 울며 겨자먹기로 다녔던 기억이나, 굳이? 피아노를? 취미로? 이런 의문 때문에 취미로 삼는 사람이 적은게 아닐까. 나는 특이하게도 어릴 적 새끼 손가락이 짧다는 이유로, 되려 피아노 학원 원장님한테 쫓겨나 제대로 배우지 못한 불운의 아이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 피아노에 대한 한이 서려 있었고, 요즘 들어 슬금슬금 배우고 있다.


-준비물: 건반에서 뛰어 놀 준비가 된 손, 피아노, 수준에 맞는 악보집(수준에 안 맞는 악보로 연습하면 하루만에 중단할 위험), 친절한 피아노 선생님(무서운 피아노 선생님을 만나면 어릴 적 트라우마가 생각날 위험)

-난이도 ★★★★★

새끼손가락이 덜 자라 슬프다
바이엘 수준이라 수줍게 올리는 연주 영상

확실히 아이 때처럼 손이 유연하지 못해 한 곡 한 곡 익히는 데 오래 걸린다. 그치만 일상에 지친 나에게 열심히 연습한 곡을 들려주면 자가치유가 되는 느낌이랄까. 서툴고 부족한 실력이지만 도레미만 쳐도 멜로디가 만들어지지 않는가. 그 덕에 성취감도 쉽게 들고, 왠지 잘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물론, 현란하게 연주하는 일반인 피아니스트들과 비교는 금물이다. 모든 취미가 그렇듯이 완벽하게 소화하려는 욕심은 그 시간을 일처럼 느끼게 할 것이다.


8. 미니어쳐 집 만들기

사실 예전부터 미니어쳐 만들기는 유행을 했지만, 또 어느새 대형 서점이나 잡화점에서 코시국에 맞게 집콕취미로 판매하고 있는 DIY집만들기에 꽂혀버렸다. 하나하나를 손으로 만들어나가는 엄청난 뿌듯함을 느끼고, 평생 살아보기 힘들 워너비같은 집들을 내가 손수 만들어 집에 전시도 할 수 있으니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동생을 꼬드겨 같이 구매했는데, 아뿔싸, 처음부터 욕심이 과해 초대형 미니어처 하우스를 주문해버렸다.

정말 진심으로 입문용을 먼저 시도해보는 것을 추천드린다

미니어처 하우스를 처음 뜯어 본 순간 느낀 감정은, 이것까지 제작해야 한다고? 솔직히 가혹하게 느껴질만큼 모든 것을 만들어야 했다. 찻잔에 손잡이까지 철사를 구부려서, 인테리어용 화분도 줄기, 잎 모두, 조명, 스탠드, 심지어 베개까지 직접 솜을 넣고 바느질해서 만들어야 했다. 한번 시작하자니 끝은 봐야겠고, 가구 한 개를 만드는데도 3시간이 걸리고 초강력 접착제로 엄지와 검지가 붙고 말았다. 그렇게 4일이 흘렀을까. 동생은 허리가 굽어진 채로 포기했고, 나 혼자 꾸역꾸역 붙잡고 가다가 결국 미완공 하우스로 1년간 방치 중이다. 분명 후기에는 대형 하우스도 7세 아이와 아버지가 5일간 노력한 끝에 완성했다고 했는데, 아마 어린 아이의 희망을 아버지께서 온몸을 바쳐 지켜주신 것 같다.


-준비물: 초강력 접착제 매우 많이, 가위, 풀, 커터칼, 자, 엄청난 인내심, 섬세함, 돋보기(너무 작아서 잘 안보이는 재료도 있다), 미니어쳐 하우스 세트

-난이도 ★★★★★★★★★★★

8시간동안 만든 작품이다

미니어쳐 하우스 만들기는 처음으로 취미를 하다가 번아웃이 온 케이스다. 섬세한 취향을 가진 분들께만 권유드린다. 물론 완성하면 정말 예쁘고, 뿌듯하고 하나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 워낙 종류가 다양해서 도전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9. 블로그 운영하기

블로그를 취미로 하는 친구들이 점점 늘길래, 또 알고보니 오랜 기간 블로거였던 친구들을 보고 아차 나도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사진이 주가 되는 SNS가 아닌 좀 더 글 위주로 기록할 수 있고, 나중에 보면 굉장한 추억거리가 될 것 같아서 도전해보았다. 특히나 블로그를 하기로 마음먹은건 임용공부를 막 시작했을 때였는데, 그 당시 답답했던 마음을 풀어놓는 휴식처로 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의 성격을 간과한 것이,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면 최대한 잘하고 보는 지독한 완벽주의라는 점이다. 공부를 하는 와중에도 어떤 컨텐츠를 올릴지 구상하게 되고, 나만의 일기장 느낌이 아닌 보여주기식 블로그가 되어가고 있었다. 블로그로 수입을 얻는 사람도 주변에 있어서, 왠지 그런 용도로 해야 유의미한 취미가 되는것 같았고 점점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블로그는 사진을 열심히 잘 찍고, 일상의 많은 순간을 기록하려는 꾸준함과 목적성을 가지는게 가장 중요했다. 처음부터 아무 이유없이 시작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아야 취미로 스트레스받지 않고 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넓게 보면 블로그 역시 하나의 SNS였기 때문에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단순히 일기장으로 활용할 거면 모든 글을 비공개로 해두면 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만 투자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가진 정체성 뚜렷한 블로그로 운영해야 한다. 그래야 내 삶을 담아내는 하나의 보따리가 될 수 있다.


모든 취미가 그렇듯이, 취미는 취미다. 즉,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다.

취미가 취미로 남으려면, 단기간에 너무 잘하려는 욕심은 버리고, 뭐든지 끈질기고 끈기있게 내 것으로 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취감, 즐거움, 끈기 이 세 박자가 합을 이룰 때 진짜 내 취미로 자리잡을 수 있다. 2022년 올 해에는, 중도하차하는 일없이 다양한 취미를 끌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흥미와 적성에 맞는 활동을 찾기란 쉽지 않겠지만, 자잘하게 계속 도전하면서 생활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취미를 발견하고 싶다.


요즘 친구들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어릴 때와 달리 대답이 시원찮다. 심지어 취미를 만들 생각조차 안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만큼 먹고 사는게 험난하다는 뜻이겠지. 팍팍한 세상일수록 자신을 즐겁게 만드는 무언가를 더 간절히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시간을 쪼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취미도 행복도 쟁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삶의 목적을 잊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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