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 피시 앤 칩스
가을의 런던은 수시로 비가 내렸다. 신기하게 또 금세 비는 그치고 날이 맑아지기도 했다. 흐린 순간과 맑은 순간이 공존하던 시간, 흐린 날에는 흐린 날 만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느낀 건, 아마 런던의 여행자였기 때문일까.
"언니, 오늘은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가요. 피시 앱 칩스도 먹고!"
퇴사를 하고 유학을 감행한 회사 후배를 만나러 온 런던 여행, 한 아름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고 우리의 런던 산책이 시작됐다. 흐린 날엔 미술관이 좋지. 그 어떠한 날씨에도 영향받지 않으니까, 후배를 따라 런던의 메트로를 타고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도착했다. 템즈강변에 위치한 테이트 모던은 원래 화력발전소였다고 한다. 2차 대전 이후 런던의 시민, 기업들에게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화력발전소가 지금의 현대 미술관으로 새롭게 리모델링되었다. 테이트 모던의 콘셉트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의 공존'이라고 했다. 그 콘셉트에 맞게 건물을 모두 부순 후 새로 짓는 것이 아닌, 화력발전소의 흔적을 살리면서 미술관으로 운영되는 것에 놀라웠다. 과거의 이야기와 흔적을 품고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처럼, 이 건물도 런던의 사람들과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드득후드득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소리와 우비를 입은 채 걸어가는 이들이 창밖으로 보였다. 하나하나 천천히 작품들을 구경하고 기념품 가게에서 리소그래피로 인쇄된 포스터를 샀다.
"리소그래피 인쇄가 너무 예쁘다. 우리 예전에 했던 작업 생각나."
"그때는 꽤 신선했는데! 영국에 정말 유명한 회사가 있더라, 언니!"
회사의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만든 리소 그래프로 인쇄한 엽서를 떠올렸다. 실크스크린의 판화 기법과 유사한 인쇄는, 몇 가지 색을 골라서 인쇄하는 방식인데- 빈티지한 색감이 매력적이었다. 처음 리소 인쇄를 맡았던 한국의 회사는 우리에게, 이 인쇄는 교회의 주보, 기업의 판촉물 등을 인쇄하던 방식이라고 했다. 그랬던 리소 인쇄는 이제 꽤 많은 디자이너들이 좋아하는 방식이 됐다. 여러 색깔이 한 번에, 사진처럼 나오는 인쇄가 아닌 한 번에 한 색만 뽑아낼 수 있는, 또 겹쳐지게 인쇄하는 정성이 들어간 포스터. 영국엔 하토 프레스라는 오래된 인쇄, 출판사가 있다고 그녀가 알려주었다.
긴 통에 담은 포스터를 한 손에 들고 나와서 템즈강변을 걸었다. 그 사이 비는 그쳤고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았다. 피시 앤 칩스를 파는 가게에서 음식을 사서 포장한 후, 벤치에 앉아서 함께 피시 앤 칩스를 먹었다. 아직 따끈한 기운이 남아있는 갓 튀겨낸 통통하고 담백한 대구살과 굵은 감자튀김을 먹는다. 명절이면 엄마와 함께 만들었던 명태전, 친구와 먹던 생선가스, 맥도널드의 피시 버거, 다양한 과거의 맛들이 떠올랐다. 재료는 변하지 않아도, 조리법은 각 나라별로 요리마다 다르다는 게 가끔은 놀랍고 신기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템즈강변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곰곰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