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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김연지 Apr 27. 2023

쉰셋, 나 홀로 인도

“무슨 나이 오십 여자가 혼자서 한 달씩이나 인도 여행을?”


아내로, 엄마로, 교사로만 살다가 ‘정금선’이라는 한 인간으로 나 홀로 낯선 세상에 발을 첫 디뎠다.


그곳은 인도. 당시 나이 쉰셋. 한 달간 있던 자리에서 역할은 내려놓고 인도를 걷고 걸었다.  


지금도 “여성 혼자 여행 가서는 안될 나라” 중에 한 곳인 인도로 꼽힌다.


작가의 인도 여행기는 15년 전이다. 휴대전화라는 게 있긴 했지만, 인터넷도 안되던 시절.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재도 배출하는 인도라지만, 사실 여행객 하나쯤 사라져도 ‘그럴 만한 곳’이고, ‘거길 왜 혼자 갔대’  무모함에 더 비난이 꽂히기도 한다.


남미, 중미, 아프리카 대륙까지, 그녀가 흔적을 남기고 간 나라만 70여 개국에 달한다. 그 수많은 발자취 속에서 인도 여행을 인생 여행으로 꼽는 작가. <인도 여행의 한 수>는 그래서 탄생하지 않았을까.


“무슨 나이 오십 여자가
혼자서 한 달씩이나 인도 여행을?”

- <인도 여행의 한 수, 정금선> -


이 말에는 네 가지 편견이 담겼다. 나이 오십 여자에 대한 편견, 홀로 여행에 대한 편견, 한 달간 여행에 대한 편견, 그리고 인도에 대한 편견이다.


대한민국에서 나이 오십 여성이란(2023년 현재 예순여덟), 집에서 남편 밥해주고, 애나(?) 키우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그저 희생만 한 어머니 상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지만, 사내 결혼한 나만 보면 “남편 밥은 해주냐?"라는 말 한마디만 봐도 현재 여성의 위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15년 전엔 더했겠지. 학생을 가르치고, 존경받는 교육자라지만, 50대 여성이라는 프레임은 숭고한 직업을 이기진 못했다. 애 다 키웠으면 집에서 쉬지, 뭐 하러 한 달씩이나 고생을? 그것도 인도라는 곳을?


그 이유가 궁금하고 눈이 동그래지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남들 다 걱정하고, 가지 말라고 말리는 인도가, 그녀는 인생 최고의 여행이라고 꼽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 귀인이었고, 여행자인 당신을 환대해 줬고, 값진 미소를 선사하고 콩 반쪽도 나눠먹는 베풂을 보여준. 그래서 그녀는 인도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던 듯하다.


"난 왜 이런 여행을 자초하는가. 무엇이 나를 이런 길 위에 서게 하는가. 뭔가에 끌려서 온 건데 그 끌림이란 무엇인가. 내가 나를 봐도 어디에 홀려 있다. 힘들다거나 두려움보다 어디에 매력을 느끼고 무엇에 즐거움이 큰 것일까? 무모한 도전일지라도 다양하고 인도다운 좋은 경험이 이번 여행의 최고 목적이니까" - <인도 여행의 한 수. 정금선> -



작가는 말한다. “상대와 상대 문화를 존중하고 겸손하면 어디서든 천사가 나타난다는 것”이라고. 사실 주변에 인도 여행 갔다 왔다는 친구, 지인들은 인도 여행을 권하지 않는다. 배탈이 나 여행 기간 2/3를 숙소에만 있었다거나, 입에 담기 힘든, 끔찍한 일을 당할 뻔한 지인도 있었다. 이 글을 쓰는 바로 전날에도 인도에서 여행 중인 한국 여성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뉴스가 전해지기도 했다. 인도 가서 봉변을 당하는 사람들이 상대 문화를 존중하지 않거나 겸손하지 않아서 천사를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닐 테다.


위험이 도사리는 여행지에서 작가가 어쩌면 신의 보호 속에서 거닐 수 있었던 것은, 두 아들과 한 남편을 위해, 또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젊음을 바쳐야 했던 한 어머니이자 여성의 첫, 홀로 배낭여행에 하늘이 준 선물이라 여겨진다. 그 선물은 무사 무탈했던 여행 자체만으로도 값지겠지만, 반 백 살의 나이의 여성이 당당하게 31일간의 인도 여행을 해냈다는 자신감이 아닐까 싶다. 이후 작가는 70여 개국의 배낭여행에 오른다. 모두 기적으로 기록됐다.


"대부분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으면 누구나 좋아한다. 서로 귀히 여기고 존중하며 산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난 냉철하고 지혜로운 사람보다 따뜻하고 온유한 사람이 좋다. 인도여행 중에 깨달은 것은 서툰 영어 회화라서 더 친절한 도움을 받았다는 생각이 크다. 일상 우리가 약한 자를 돕지 잘나거나 강한 자를 돕지 않는 것처럼" - <인도 여행의 한 수, 정금선> -


김영하 작가 여행의 이유에 나온 문장이 떠올랐다.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 <여행의 이유, 김영하> -


패키지여행이 즐겁긴 해도 깨달음을 줄 수 없는 건, 뜻밖의 일을 맞닥뜨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마법적 순간을 없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 읽진 못했지만 얼른 리뷰를 올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알았으면 한다. 둘째 출산 3개월 뒤 복직에, 돌도 안된 둘째 어린이집과 돌봄 선생님 적응에, 둘째가 자랄수록 폭발하는 첫째의 질투에, 거의 주 1회는 병원 오픈런을 해야 하는 애 둘 육아에, 눈물 콧물 다 쏟아내는 요즘이라 책에 나오는 문장들을 함께 밟으며 390페이지에 달하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기엔 시간적 여유, 그리고 마음의 겨를이 없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한자라도 더 그날의 향기를 전하고픈 작가의 기록으로 빼곡한 페이지를 넘기는 군데군데 눈길이 멈추는 문장이 있다. 그곳에는 그녀가 받았던 친절, 말은 안 통해도 눈빛으로 통했던 문장에서, 사진으론 미처 담아내지 못했더라도 마음의 셔터를 누른 사진과 함께 당시 안도함, 따뜻함까지 전해지곤 했다.



지난 나의 여행에도 귀인들이 많았다. 포르투갈에서 오밤중 산골 외진 길을 헤매다 차가 고랑에 빠졌을 때, 영어도 잘 안 통하던 식당 주인이 포클레인은 아니지만 그런 중장비 기계를 불러서 차를 건져내 줬다. 돈도 한 푼 받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소매치기당할 뻔한 것을, 한 아저씨가 막아주기도 했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사실 타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생도 여행에 비유되는 걸 보면, 결국 우리는 타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인생을 살고 있다. 인생이 여행이라면 결국 우리 모두는 잠시 이 자리에 온 여행자인 셈이다. 타인의 친절이 필요하다.


여행에서 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사람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여행 다니며 받았던 도움과 배려는 다른 여행자에게 베풀면 된다는 것, 여행자들에 대한 선의와 베풂이 돌고 돌아 결국 자신에게 향할 것을 믿는다. 작가도 그랬던 것 같다. 이후에도 나 홀로 배낭여행을 보란 듯이 해냈고, 일상에서도 여행자의 시선으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travel’은 고대 프랑스어인 'travail'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travail’은 노동, 수고, 고통을 의미하고, in travail은 산고로 몸부림치다는 의미라 한다. 다들 여행을 갈망하는데,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사는 것을 불운하다고 여겼다. 역마살이라는 것도 떠돌아다니는 수고로운 삶으로 비치기도 했다. 지금은 다르다. 여행은 즐거움이자 일탈이고, 역마살은 글로벌 라이프로 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뭔가 소중한 것을 얻으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했던 여행의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 당시에는 모른 채 살아왔던 것들이 축적되어 타지와 타인에 대한 신뢰를 만들고, 나의 여행을 더 완성시켜 주었다.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것이 불안과 고통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행에는 '지금 여기'에 없는 놀라운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여행은 특별하다. 어쩌면 특별한 사람한테만 주어지기도 한다. 여행을 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지친 몸을 뉠 숙소가 필요하다. 여행할 체력도 필요하다. 하루하루 버둥대며 살아가기 바쁜 이들에게 여행은 어쩌면 사치일 수도 있다. 그렇게 나름 사치를 부려보겠다고 떠난 여행은 오히려, 나를 낮추게 한다. 강아지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듯 여행지에서 “내가 낸데” 하고파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여행이 좋다. 나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 줘서, 일상에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나 걱정했던 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줘서. 오로지 현재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줘서. 작가는 둘째 아들의 입대를 못 보고 떠난 걸 맘에 걸려 했지만, 그래서 더 이 인도 여행기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집과 학교밖에 모르던 우리 엄마가, 과감히 자신의 자리를 떠나는 첫 일탈을 맛봤다. 모두가 위험하다 말렸지만, 보란 듯이 해냈다. 나도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한 수 가르쳐 주겠다.

마지막에는 설렘 반, 긴장 반이었을 그녀의 여행을 지지해 준 가족의 응원이 담겼다. 인도 여행에 필요한 간단한 회화까지 친절히 알려준다.


40년 교편을 잡고 가르친 만큼에서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던 깐깐한 선생님 아니랄까, 깜지 같은 여행 일지도 함께 한다. 여행 도중 발이라도 뻗게 되면, 그 자리에서 퍼지는 게 아니라, 지금의 이 기억이 이 순간이 달아날까 글로 붙잡아 두었다.

돌아오는 순간까지도 글로 담아내고, 돌아와서는 사진과 깜지 일지를 보면서 정리하며 흐뭇해하는 작가의 얼굴이 그려진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특히 코로나로 나 홀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혼자 하는 게 뭐 대수냐 하기도 하겠지만, 우리네 엄마들은 다르다.


기자가 되면 세상과 맞서 싸우며 지구를 뒤흔들 만한 기사를 쓰겠다는 야심으로 가득 찼지만, 여기자는 세상의 편견과 먼저 싸워야 했다.


두 아이 엄마가 되니, 아 지금도 이런데 그전에는 어땠을까, 화도 나고 나의 엄마 세대에게 연민도 느낀다.


그래서 책 제목이 과감했으면 좋겠다.


“무슨 나이 오십 여자가 혼자서 한 달씩이나 인도 여행을?”


이었다면 “도대체 누군데? 왜?” 하면서 이 책을 들지 않을까?


서두에도 언급됐던 이 문장은 사실 <인도 여행의 한 수> 책에 나오는 문장이다.


남들 다 꺼리는 인도 여행을 그 어떤 여행보다 빛나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지금은 할머니가 된 여성의 15년 전 첫 여행기.


낯선 환경에서 맞닥뜨려지는 누군가의 친절이, 진심인지, 진상인지, 악마의 접근인지 구분해 낸 것도, 50년 넘게 가정과 직업을 붙들며 살아온 엄마라는 노련함에서 나왔을 것이다.


다들 걸리고 몸져눕는 배탈은 어떻게 피했는지 그런 노하우만 따로 엮어 별책부록처럼 만들어도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


어서 오셔서 한 수 배우고 가시길.






https://blog.naver.com/pureyunji/222625051961

앞서, 펴낸 60대 할머니의 산티아고를 담은 <기적의 순례와 여행>도 있습니다.


<인도 여행의 한 수> <기적의 순례와 여행>이 궁금한 분들은 인도 여행을 꿈꾸는 분들은, 인생에 한 번쯤 세상과 맞닥뜨려보는 용기를 내 보고 싶은 분들, 손주 다섯 60대 할머니의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이 궁금하신 분들! yyjjtv@gmail.com으로 이메일 주세요.


책을 전해주실 기사님 택배료로, 작가님께 성의만 표시해 주세요 :)

단, 정말 끝까지 진심으로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가실 분들만 연락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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