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김연지 Jun 13. 2021

미셸의 새벽, "여성 의지로 성공할 수 있다"는 거짓말

여성이 육아와 일을 모두 해내는 것이, 대단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꿈꾸는 엄마의 미라클 모닝>을 출간하면서 가장 걱정된 것이 있다.

워킹맘이 육아와 일 모두 해내려면 "결국 엄마는 자신의 잠을 쪼개가며 두세 배로 희생해야 가능하다"는 메시지로 변질될 것이라는 우려다.


워킹맘은 여전히 고달프다. 남녀 차별을 이야기 하는 건 아니다. 라테 파파들이 증가하고는 있지만, '가사나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전반적인 인식은 여전히 높다.  (일하는 여성 77% "코로나19 이후 일터·가정 부담 가중"https://newsis.com/view/?id=NISX20210610_0001471874&cID=10401&pID=10400)


사회학습에 길들여진 워킹맘이 먼저, 자기 검열을 하는 경우도 많다. 나도 그랬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 "만 3세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아이의 정서에 좋다"는 말에 세뇌당하며 자란 탓에, 만 2살짜리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게 늘 미안하기만 한 엄마다. 


그런데 왜, 미안해야 하는가, 아이의 인생도 있지만 엄마 인생도 있는데. 엄마여서 행복하지만 내 인생도 단 한 번뿐이다. 일을 그만둔들, 나중에 엄마의 '포기'에 대해 아이가 기뻐할까? "엄마는 너 때문에 일을 그만뒀다"라고 하면 아이가 미안해할까, 고마워할까?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 보고, '대단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도' 하는 여성에겐 '대단하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런 세상을 꿈꾼다. 

여성이 육아와 일을 모두 하는 것이 결코 대단하지 않은 세상을 말이다.


통령을 만든 미셀 오바마의 새벽 


미국 시카고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한 여성은 남편을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미셀 오바마다.      

소위 '흙수저'에서 백악관까지 이어진 그녀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새벽 기상'이다.      



어려서부터 지기 싫어했던 미셸은 새벽 4시에도 일어나 공부하던 악바리로 유명하다. 그녀가 프린스턴대학교에 지원하겠다고 하자, 교사가 "성적에 비해 눈이 너무 높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당당히 대학에 합격했다. 이후 하버드대 로스쿨에도 진학했다. 유명 로펌이라는 꽃길을 마다하고 지역 공동체를 위해 일했다. 그녀는 자신이 속한 조직을 열 배 이상으로 키웠다.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것에도 '새벽 기상'이 빠지지 않는다.      


미셸은 오전 4시 30분에 일어나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한다. 당연히 건강은 물론, 공인인 만큼 외모 관리를 위해서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딸들이 어릴 때 일부러 새벽에 헬스장에 가버린 것이라고. 미셸 역시 일을 놓지 않고 동시에 두 딸을 키우며 집안일까지 해야 했는데 '독박 육아'에 지친 그녀가 남편이 딸의 아침을 직접 챙기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대통령 부부나 보통의 부부나 사람 사는 모습이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위기나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방법도 참으로 '생산적'인 셈이다.      


그녀는 새벽 기상을 늘 실천하면서도 동시에 일침도 가했다.      

“여성 의지만으로 일·가정 모두 챙겨라? 현실을 알고나 말해”      

그녀는 새벽 기상이 지금의 자신을, 남편을 만든 것도 있지만, "여성의 의지만으로 일과 가정을 모두 챙길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미셸은 지난 2018년 하반기 자신의 자서전인 비커밍(Becoming)을 출간했다. 이후 미국 전역을 돌며 북콘서트를 열었는데, 12월 1일(현지시간)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당시 화제였던 여성 자기 계발서 '린인(Lean In)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린인'은 페이스북 최고운영자인 셰릴 샌드버그가 집필한 도서다. 당시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3년째 이름을 올렸을 때다.     


그녀 역시 새벽 기상을 실천 중이었다.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해 자녀를 돌본 뒤 밤 9시에 다시 업무에 복귀하라'는 자신의 경험담을 전했다. 그러면서 여성 스스로 힘을 기르고 의지를 갖는다면 두터운 유리천장도 뚫을 수 있고, 부조리한 사회나 조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셸은 이를 두고 "여성이 일과 가정을 동시에 양립할 수 있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셸은 샌드버그의 문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미국에서는 출산휴가나 양육지원 등 엄마를 위한 제도가 법제화돼있지 않은 것을 언급하며, 여성의 역량과 개인 의지만으로 유리천장을 깰 수 있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주장했다.     


또 '일과 가정'의 양립은 부와 명예, 사회적 지위를 갖춘 미셸에게도 어렵다고 했다.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되는 가정이나 기업의 구조에 대한 고찰은 조금도 담기지 않은 채 일과 가정 모두 지킬 수 있는 해결법으로 '여성 개인의 의지'를 내세울 수 없다고 외쳤다.      


그녀는 "일에 몰두하면 다 된다는 X 같은 말은 현실에 없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그러면서 "결혼은 평등하지 않다. 직장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도 미셸의 발언을 두고 "린인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꼬집었다"라고 보도했다.      



<꿈꾸는 엄마의 미라클 모닝>을 준비하면서 이 부분이 정말 우려됐다. 


앞서 얘기했지만, 난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지 못했고, 방법을 찾아보다 새벽이란 시간을 발견한 것이다. 주어진 상황을 탓하기보단,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나를 찾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찾은 것뿐이다. 그리고 경험해보니 너무 좋아서 브런치에 남기게 됐고, 운 좋게 자기 계발 열풍에 또 기회가 닿아 출간까지 이어진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가 너무 힘겨운 사회적 현실에서, '일과 가정을 지키는 방법에 여성의 의지'를 운운한다면 내 경험담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만 못하다.     


나 역시 워킹맘으로 살며 한 고비 겨우 넘기면 또 한 고비, 어떤 날은 열 고비씩 무더기로 시련이 쏟아지기도 한다. 너무나 변하지 않는 현실, 또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과 제도, 미흡한 제도만도 못한 낮은 성차별적 인식에 번번이 무너지고 좌절도 한다.     


그러나 이대로 무너져봤자, 내 감정과 아까운 내 시간만 손해라는 생각에 나를 더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며 사는 걸지도 모른다. 내 딸아이가 또 살아갈 세상이다.       


엄마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엄마를 위한,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국가적 사회적 울타리가 먼저다.       


참고 기사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901118&code=61131111&cp=nv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면 정말 좋기만 할까(워킹맘 미라클 모닝 도전기)

https://www.youtube.com/watch?v=7FMZbOtM-hs&t=43s

- 교보문고 http://kyobo.link/rApU 

- 알라딘 http://aladin.kr/p/9PmrI

- 예스24 http://m.yes24.com/Goods/Detail/101878266

- 인터파크 https://mbook.interpark.com/shop/product/detail?prdNo=350342193

https://www.youtube.com/channel/UCXQIAmNf2xq809gKk2mOpdg

https://www.youtube.com/channel/UCBPtbv6b0pi-NmWVMfyGbzQ


매거진의 이전글 "나도 유튜브나 해볼까?" 직장인 3대 허언인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