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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김연지 Apr 28. 2023

나도 이정돈 그릴텐데, 이 그림 왜 비싸지?

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 - 현대 미술을 관통하는 열두가지 키워드


미술 작품을 바라보며 영감을 얻고, 예술의 깊이를 나눌 수 있는, 우아한 30대를 꿈꿨다.


“못 다 이해한 작품은 집에서 공부해야지”


그렇게 가져온 전시회 팸플릿만 책장 한켠을 가득 채운다. 더 이상 끼워놓을 곳이 없을 정도로 책장에 쌓여가는 팸플릿만큼 미술에 대한 지식도 쌓여가면 얼마나 좋으련만.


유식해 보이고 싶은 마음 조금과, 꼭 남에게 보이려 하지 않아도, 책에 이어 미술과도 친해지고 싶은데 어째 어렵기만 하다. 음악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불러도 심장이 바운스 대는데, 미술은 외계어 한 자 없는데 도무지 이해하질 못하는 건지.


나름 공부하려고 미술사도 보고 도서관에서 시대별로 훑어 보기도 했다. 마네 모네 고흐 고갱.. 앤디 워홀, 키스 해링, 호크니.. 그래도 그나마 좀 들어본 유명 화가들의 책도 읽었다. 미술 역사나 고전 몇 자 읽는다고 현대 미술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유명한 작가의 몇몇 작품을 이해한다고 해서 미술관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작가, 예술가는 어디에도 존재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배출되기도 하지 않나. 그렇다고 그 작가들을 매번 만나서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이 책이 더 반갑다.

<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



‘작가님..내 마음이 보이나요;?’


누가 이렇게 제목을 맛깔나게 지었나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와이아트]에서 최고 핫한 정서연 작가님 신간이다. 네프콘에서도 제목만 봐도 클릭을 누르지 않을 수 없게 하더니, 역시 책이 나왔다. 당연했다. 자본과 마케팅력만 있다면 나도 출간 제안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콘텐츠였으니.


https://contents.premium.naver.com/whyart/media


미술을 알고 싶고 혹은 나도 미술이란 걸 해보고 싶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알아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면, 유명한 전시가 열린다는 기사 따라 미술관도 가보지만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되뇌다, 결국 미술관 옆 맥줏집에서 정체성을 되찾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꼭 한번 보기를 추천한다.



“이 그림은 왜 비쌀까?

"나도 이 정도는, 아니 우리 애가 그려도 이것보단 낫겠는데”

”비싼 그림을 사놓고 파쇄기에 넣다니?”

“바나나를 벽에 붙인 게 왜 예술일까?”

“헐.. 붙인 바나나를 또 먹네..”


미술관이 아니라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와야 할 법한 작품을, 그려진 배경부터 의미, 가치, 그리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까지 이 책에서는 쉬운 단어와 문장으로 천천히 떠먹여준다. 


저자는 작가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의도는 했으나 ‘열린 결말’을 지향하는 현대 미술을 12가지 키워드로 관통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대화체의 친절한 설명에, 낙서가 왜 작품이 되는지, 일상에 이미 널려있는 사물이 왜 작품이 되는 건지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시대별로 공부를 한다 해도, 작가별로 공부를 한다 해도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의 머릿속 세계를,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투영해 표현한 의미를 읽어낸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생각은 보이지 않고 표현의 영역은 무한하기에. "붓과 컬러 물감으로 그린 그림은 여기 서세요~, 연필로 그림은 여기에 컴퓨터로 그린 그림은 이 줄에. 사물을 보고 그린 그림은 저쪽에, 상상해서 그린 건 거~기에"처럼 무엇을 어떤 도구로 그렸는지에 따라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저자는 매년 150여건의 전시회를 다니며 가장 많이 접했던 키워드를 열두가지로 추렸다. 이 열두가지 키워드만 알고 있다면 어떤 전시회에 가더라도 당황할 일은 없을 거라고 독자에게 용기를 준다. 현대 미술의 범위가 아무리 포괄적 아니, 사실상.. 범위가 없다지만 그래도 열두가지 키워드 안에서 해석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졌다”는 사실만 인지하고 있어도 작품 앞에서의 당혹감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묘사 능력보다는 아이디어가 좋은 작품이 더 높은 평가를 받고, 퍼포먼스와 회화 작품의 평가 기준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파악하면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작가와 작품 이름, 장르 같은 고유 명사가 아닌 이상, 어렵거나 생소한 단어 자체도 없다. “미술도 어려운데 설명까지 어려우면 어떻게”라는 작가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도. 정 작가님 또한 같은 기자 출신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래도 참기자였쥬 :)


미드저니와 달리(dall-e2)로 직접 작품을 만들어 봤던 나로서는, 인공지능 챕터가 특히 더 잘 읽혔다. (챗GPT가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기 수년 전부터 인공지능 미술이 시도됐다는 것, 넥스트 렘브란트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내 생각과 최대한 가깝게 표현하는 글”이 정말  잘 쓴 글이라는 말처럼, 작가님이 내 머릿속을 읽었나 싶을 만큼, AI로 그림을 만들면서 들었던 의문과 그것을 해소하기까지 공감 가는 문장들이 많았다.



김윤철 작가의 <쏟아지는 입자들의 폭포> 작품 설명에 작가가 물질을 주제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로 독일 유학 시절의 일화가 나온다. 김윤철 작가가 떡을 좋아해 그의 어머니가 소포로 떡을 보내주셨다곤 한다. 떡이 온전히 도착할 때도 있었지만, 여름에는 상한 채로 오기도 했다고. 그러면서 “떡이라는 물질이 얼마만큼 멀리서 왔는지 스스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즉 상한 떡은 인간의 입장에선 그냥 버려지는 대상이지만, 그 떡의 입장에서 보면 ‘시공간을 말하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물질에 다다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물질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저자는 <쏟아지는 입자들의 폭포>도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바라본다. 인간이 인간 이외의 존재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특히 인공지능을 인간 외적인 존재 중 하나인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은유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챗GPT는 인간의 입력 값에서 답변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결과를 ‘생성’하는 방식이다. 떡도 ‘상함’으로써 스스로에 대해 말한다.


“그렇다면 알고리즘 역시 자신의 존재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인간과 알고리즘 사이에 끊임없는 연결을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중심주의적인 사고 체계에 균열을 가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미술만 꿰뚫는 게 아니라 트렌드와 대중 심리까지 꿰뚫는다. 최근 현대미술 작품을 중심으로 아트테크에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 발맞춰 ‘미술품 조각 투자’나, 많은 사람이 투자 대상으로 삼는 ‘판화’에 대해 놓쳐서는 안 될 정보까지 담겼으니, 어쩌면 요즘 미술 참 어렵지만, '그 미술 나만 알고 싶네' 욕심도 꿈틀댄다.

책에서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비토 아콘치, 장 미셸 오토니엘 등 최근 국내에서 전시를 진행하고 있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 설명도 함께 엿볼 수 있다. 군데군데 있는 QR코드로 방구석 미술관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현대 미술이 어려운 이유’는 학창 시절 접했던 미술과 현대 미술의 갭이 너무나 크기 때문인 듯했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벌써 20년 전) 교과서에서 배운 미술 대부분은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전하는 작품이었다. (다 그 시대마다 유행하는 작품들이 있고 상식으로 자리 잡은 고전들 위주로 다뤄졌으니)


이 책을 읽으며 느낀 현대 미술의 공통점은 "반드시 작가만의 시선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작가만의 시선은 말 그대로 작품을 바라보는 각도의 시선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미켈란젤로를 알고 천지창조를 감상하는 게 아니라, 잘 모르는 작가라 해도 작품의 시선을 읽을 수 있다면 그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던 보통의 사람들은 그 시선이 낯설고 난해하기만 하고 그러다 결국 지쳐버리는 게 아닐런지.


현대 미술 작가는 관객을, 마냥 미술관에 들린 사람으로 두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변기를 뒤집어 전시하기도 하고, 미술관에서 음식을 먹기도 하고, 개선문을 포장하고, 만화를 가져오기도 하면서 이전에 없던 시도를 한다.


그 시도는 이전과는 달라지는 세상에 던지는 비판으로 읽힌다. 세상은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이 방향이 맞는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작가들은 끊임없이 사고하고 행동하라"고 요구한다. 세상은 자꾸만 변하는데 작가가 그린 대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하면, 동굴과 이데아 비유나 다름없으니까(?!) 이렇게 현대 미술은 작품과 독자 간의 공간에 또 무한한 상상과 함께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유하도록 한다. (현대 미술 작가가 되려면 철학 좀 해야겠다)


이 또한 나의 상상일 수 있다. 요즘 미술은 여전히 어렵다. 그래도 이 책에 나온 열두 가지 키워드만 잘 쥐고 있다면 어떤 전시를 가더라도 작가와 밀당을 하기보단, 작가의 시선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단 믿는 구석이 생겼다. 마치 울고 떼쓰는 아이에게 “~그랬구나”라는 한 마디만 해도 울음을 그치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설령 출제자 의도를 오롯이 파악하지 못하고 밀당에서 지더라도 미술관 옆 맥줏집에서 자아를 찾진 않아도 될 듯하다.



한 줄 총평 : 이 책을 전시회 가기 전에 정독하고 간다면, 친구/애인 앞에서 꽤나 아는 척 좀 할 수 있으리라.






[에필로그]


이십 대 후반으로 넘어갈 즈음이었다. 어른들이 늘 말하는 결혼 적령기 무렵이다.


“좋은 남자를 만나려면, 미술을 알아야 해”


이 무슨 강아지 같은 소린가. 요지는 이랬다. 이쁘고 날씬한 여자는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소위 있는 집 후계자들은 그 여성이 자고 나란 배경이나 학식 수준을 판별(?) 할 수 있는 게 미술이라는 것이다. 그쪽 리그에서는 명문대, 유학 정도도 기본(?)이니 말이다.


‘남자를 잘 만나’기 위해 미술을 공부하라니? 미술관에 살다시피 하면 좋은 남자가 자석처럼 붙는다는 것인가. 물론 그들이 말하는 소위 '좋은 남자가 만난다는 여자'의 기본 전제조건부터 안되기도 하지만.


구미를 당긴 건 그다음 얘기였다. “재벌 돈 세탁에 왜 작품이 쓰이겠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잘 사둔 그림, 아파트 부럽지 않고, 나쁜 짓도 다 아는 놈이 하는 거고, 그게 나쁜 짓인지 아는 것도 뭘 알아야 알지”


오호. 제법 신박한 논리다. 묘하게 설득이 된다. 기승전 미술이라니.


그도 그럴 것이, 리히텐슈타인의 [눈물이 향기] 작품을 접하게 된 것도 대기업 비자금 사태였다. 미술의 가치를 알 턱이 없는 당시로선, 비자금이 문제가 아니라 ”이게 도대체 왜 비싼가?” “나도 오늘부터 만화나 그릴까?”란 고민을 한참 했던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세상을 뒤흔든 그 유명한 작품 [변기]를 보고선, '뭐야 아 그럼 나는 수도꼭지를 떼다가 '폭포'라고 이름붙여 출품해볼까? 아님 거꾸로 해서 '분수'라고 해볼까?' 미술에 대한 탐구보다는 이를 통한 유명세가 탐났던게지. 그걸 보고선 참 돈벌기 쉽다라는 생각을 했으니. 물론 지금은 아니다 (마르셸 뒤샹님. 참으로 죄송합니다. 제가 그때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곧장 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일단 널 좀 알아야겠다. “미술은 돈”이라는 불순한 의도와 의욕이 충만했다. 더구나 노래방, 만화방 가는 것보다 미술관 정문 유리에 비친 내가, 꽤나 있어(?) 보인다.


소득은 없었다. “자기는 꼭 내가 말을 해야 알아?” 내가 남편한테 매일 하는 말을 작품으로부터 듣다시피하며, 네 의도를 파악하려 애썼건만 낭패였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니 이따끔씩 고개가 끄덕여지긴 했다. 궁금함과 답답함이 조금 사라지니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작가는 정말 그런 의도로 그린 걸까? 5분 동안 낙서해 놓고 걸출한 해석을 넣은 건 아니고? 유명한 평론가를 돈으로 매수한 게 틀림없어' 기자란 직업 탓인지 감상보단 감시를 하게 된다. “역시 돈은 버는 놈이 버는구먼" 입장료가 대단하진 않았지만, 노래방이나 갈 걸 싶었다.


만약 이 책을 10년 전에 만났다면, 그때 어른들 말씀대로 ‘좋은 남자’도 만났으려나. 적어도 나 홀로 현대미술관의 첫 나들이가 이렇게 의심과 체념으로 끝나진 않았겠지.


#요즘미술은진짜모르겠더라

#정서연작가

#와이아트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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