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스탠드업 코미디의 과거와 미래
지난 5월 공연된 박나래의 스탠드업 코미디 ‘농염주의보’가 넷플릭스에 업로드되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공연의 메인 주제는 섹스였다. 지금 가장 핫한 개그우먼인 박나래가 흥미 유발하기 좋은 소재인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전략적 선택인 동시에 박나래 개인의 용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몇 가지 좋았던 부분으로는 먼저 기안 84와의 열애설에 대한 적극적 개그 소재로의 활용이 있었다. 여자 개그우먼이 유명인인 실존 인물과의 열애설을 자신의 개그 소재로 삼는 것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시도이다. 또한 무대 초반 재킷 상의를 벗으며 이날을 위해 전완근을 키웠다는 멘트 또한 다이어트를 했다는 식의 코멘트보다도 자신의 근육에 대한 언급으로 자신의 신체에 대한 긍정을 보여주어 좋았다. 이어 상반신 노출에 대해 남성과 여성이 동일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여성의 누드에 가해지는 불평등한 사회의 시선에 대해 지적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섹스를 주제로 삼고 있지만 섹스에 개방적인 콘셉트인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특히 첫 경험에 대한 에피소드는 성추행 경험담에 가까워,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원하지 않는 상대와 원하지 않는 경험을 하다 도망친 이야기를 하고 있어 보는 내내 불쾌함에 안절부절못했다. 1시간 분량의 무대라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각기 다른 에피소드로 넘어가는 타이밍에서 약간 조급한 듯 빠르게 이어나가는 경향이 있어 보는 사람까지 조급하게 느껴지는 호흡 조절이 매우 아쉬웠다.
그래도 보수적인 한국 개그계와 방송계에서 시도하기 어려웠던 주제를 어려움 없이 풀어가는 동시에 성경험에 대한 개인의 에피소드를 공유하는 대담한 선택이 눈부셨다. 이 무대는 아쉬운 첫 발이지만, 앞으로 더 디딜 수많은 걸음을 위한 한 보라고 생각한다.
코미디언을 볼 때 개인적으로 크게 4가지 타입으로 나누어 보고 있다.
첫 번째로는 보케 타입이다. 보케(ボケ)는 일본의 만담에서 엉뚱한 행동을 하는 역을 말하며, 대부분 캐릭터가 강하고 조금 과장된 것이 특징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코미디 장르인 만담(만자이)에서는 2인의 게닌(개그맨)이 그룹을 이루어 대화를 주고받으며 웃음을 자아낸다. 적지 않은 수의 코미디언들이 만담과 콩트의 본고장인 일본에 유학을 하여 만담과 콩트에 대해 배우기도 했다. 보케 타입은 엉뚱한 행동을 하고 그에 츳코미(ツッコミ)를 하는 진행자 타입 혹은 같은 보케 타입으로 주로 듀오로 활동하게 된다. 보케 타입은 대체로 본인의 일상적인 성격이나 성향을 조금 더 끌어올려 콘셉트이자 캐릭터로 키운 것이기 때문에, 극단까지 가는 것이 어렵고 상대역 없이 무대를 끌어가는데 한계가 크기 때문에 스탠드업 코미디로 성립되기가 어렵다. 박나래는 보케 타입으로 볼 수 있으며, 다른 보케 타입의 코미디언으로는 조혜련, 김숙, 안영미, 박지선이 있다.
두 번째로는 진행자 타입인데, 보케 역에 츳코미를 주로 상대하게 된다. 일인으로도 무대가 성립되는 입담을 가진 경우가 많으며, 개성적인 캐릭터보다는 정돈된 서사를 가진 이야기를 하는데 능하기 때문에 스탠드업 코미디에 가장 적절하다. 진행자 타입의 코미디언으로는 박미선, 정선희, 김지선, 송은이가 대표적이다.
그다음으로는 페르소나 타입이 있는데, 페르소나 타입의 코미디언은 아주 드물다. 캐릭터와 본인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연극적인 무대를 구성하는데 탁월하기 때문에 무대나 분장 혹은 상대역이 반드시 필요하다. 페르소나 타입은 보케 타입과 마찬가지로 스탠드업 코미디에는 부적절하다. 페르소나 타입의 코미디언으로는 김미화가 있고, 남자 코미디언인 박성호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이러니 타입이 있는데, 일상의 에피소드를 과장해 그 안의 아이러니나 특징을 강조하여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의 유머에 탁월하다. 주의할 것으로는 자주 특정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희화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논란을 일으키기 쉽다는 것이다. 아이러니 타입으로는 이영자, 김신영, 김영희가 있다.
추후 스탠드업 코미디를 해주길 기대하는 개그우먼으로는 먼저 박미선 씨가 있다. 한국 여자 스탠드업 코미디의 창시자라 부를 수 있는 박미선 씨는 데뷔를 스탠드업 코미디로 하며 금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이후 ‘별난 여자’라는 이름으로 지속적으로 스탠드업을 했고 ‘별난 노처녀’ 등의 콩트로 그 재미를 더욱 살렸다. 그다음으로는 장도연 씨나 김신영 씨를 추천한다. 장도연 씨는 보케 타입과 진행자 타입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어 장시간의 스탠드업 무대를 꾸리는데 적합할 것이다. 김신영 씨는 아이러니 타입인 동시에 행사 진행 경험이 많기 때문에 흥미로운 무대를 꾸릴 것 같다. 그 외에도 송은이나 정선희도 스탠드업 코미디를 한다면 알찬 무대를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더 많은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가 시도되어 여성 개그우먼들이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