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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Apr 04. 2024

까마귀가 나를

2024. 03. 14.

지난 몇 주 미친 듯이 달려온 느낌이다. 사실 미국 여행 중에도 기한 맞출 원고가 하나 있어 애를 먹으며 며칠 밤을 보냈고, 귀국 후 유쾌하지 않은 사건이 있었고,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방송도 찍고, 연이어 행사에 참여하고, 칼럼을 3편 써내고, 며칠은 밤늦게까지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공적으로 외향적이지만 사적으로 매우 내향적인 인간이라(이게 가능한지 심리학 전문가들이 알려주시길)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면 힘들다. 만나면 즐겁지만 이틀 연속 모임이 잡히면 몸과 마음이 부담스러워지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마음먹고 해낼 때도 있다. 스스로에게 '다른 사람들에겐 일상인데 괜히 엄살떨지 말자'라고 되뇌었지만 오늘은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 피곤하다! 내가 살아온 궤적과 패턴을 돌이켜 볼 때 피곤함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학교에 있을 때 교육정책이나 학교 문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곤 했는데, 학교 밖 운동판도 당연히, 내 맘처럼 흘러가진 않는다. 예전처럼 시원하게 글을 써대지도 못하니, 이런저런 분노와 회의와 의구심을 품고 이고지고 그냥 걷는 수 밖에 없다. 어젯밤에는 문득 이 바닥을 떠나 우주로 가버리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같은 학교에 있던 명랑한 조합원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지부 일로 대화를 하다가 마지막에 뜬금없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힘내. 내가 전교조에 발을 들인 건 김현희 때문이지. 김현희 밖에 몰랐어. 지부장은 혼자가 아니다. 조합원들이 함께 있어!" 찡하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우주로 떠나고 싶어하는 걸 아셨나? 싶어 뜨끔했다. 


지금  이 순간 시간 여행을 딱 4시간만 할 수 있다면, 비 내리는 요세미티에 다시 가고 싶다. 내가 갔던 기간은 겨울이고 비까지 와서 언제나 적막했다. 나와 나무, 계곡, 하늘, 거대한 바위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루는 요세미티 입구에서 바나나를 먹으며 걷고 있는데 까마귀들이 나타나 사이좋게 바나나를 나눠 먹었다. 까마귀들은 호의를 베푼 사람, 적의를 보인 사람을 반드시 기억한다고 한다. 보라색 후트티에 파란 모자를 쓰고, 바나나를 들고 그 곳에 다시 가면 까마귀들이 나를 기억해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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