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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Aug 31. 2024

‘잠자는 교실’의 모피어스

https://www.educh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13


공교육의 지상 과제는 ‘잠자는 교실 깨우기'이다. 고교학점제는 맞춤형 교육으로 잠자는 교실을 깨우겠다는 목표로 2025년 전면 실시를 앞두고 있다. AI 디지털 교과서 정책은 ‘질문과 토론이 살아 숨 쉬는 교실’을 표방하며 강행 중이다. ‘선택권 확대’, ‘개인 맞춤형 교육’, ‘다양성 존중’, ‘자기 주도적 학습’, ‘지식 전수자에서 지원자·촉진자로 교사 역할 변화’ 등의 어젠다는 20년 넘게 이어진 역대 교육정책의 연장 선상에 있다.


개별 학생의 흥미와 적성을 고려하자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정책을 향한 냉소와 불신으로 넘실댄다. 고교학점제가 이미 실시 중인 많은 학교들에서 학생은 여전히 잠을 자거나, 입시에 유리한 다른 과목을 공부하고 있다. 구원의 메시아처럼 등장했던 수많은 정보통신기술 활용 방법론들은 결국 일회용 교육론 신세를 면치 못했다.


망각인지 현실 부정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학생의 흥미를 자극해 잠자는 교실을 깨울 것인가?'라는 질문은 유효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누구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수업을 꿈꾸지만, 제아무리 뛰어난 수업 능력과 최첨단 학습 기술도 스마트폰이 선사하는 재미는 이길 수 없다. 학생의 선택권 확보는 중요하다. 하지만 공교육의 목표는 개별 학생의 흥미와 동기 유발이 아닌 민주 시민 양성이다.


필요한 질문은 '어떤 기발한 방법으로 잠을 깨울까?'가 아니다. 교실은 개인 침실이 아니라는 자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왜 교사는 잠자는 학생을 깨우지 못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잠자는 학생을 깨웠다가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를 만큼 교육기관의 권위는 실종 상태다. '수능이나 내신과 상관없는데 왜 이 시간에 이 과목을 공부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할 정도로 공교육의 목표는 길을 잃었다. 교육의 권위와 목표의 실종, 이것이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의 민낯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구원, 선택, 통제, 가상세계, 현실 부정 등을 모티브로 한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이라는 선택지를 내민다. 파란약은 가상현실로 가는 열쇠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안정된 상태에 머물 수 있다. 빨간약을 선택한다면 혼란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래빗홀의 끝까지 간다.


파란약을 입에 넣고 교육당국이 제시하는 청사진으로 들어가 보자. 이 세계는 학생 선택권 보장, 개인 맞춤형 학습, AI 신기술이 교육을 구원하고 잠자는 학생들을 깨운다는 믿음으로 유지된다. 교육과 어른의 '권위'는 대체된다. 학생의 선택권, 개인 맞춤형 교육의 이름으로 말이다. 이 가상세계의 주요 에너지원은 교육방법 개선을 끊임없이 요구받는 교사들이다.


가상현실에서마저 학생들은 여전히 잠에 취해있거나, 입시에 매몰되어 개인적 성취에 매달린다. 하지만 그로 인한 피해, 낭비, 출혈은 가시화되지 않는다. 권위가 부재한 세상에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정책이 실패를 거듭해도 다시 새로운 기술과 정책을 도입하며 안정과 풍요를 유지한다.


빨간약을 먹고 깨어난 현실은 어떨까. 혼란 그 자체다. 현실 세계에선 권위의 대체물 따윈 존재할 수 없다. 권위는 규율, 원칙, 합의를 작동시키고 실행한다. 가상현실과 달리 이 세계에서 공부란 절제와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다. 학교는 청소년기 특유의 실존적 불안과 혼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지원하지만, 인류의 지적 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할 교육의 의무와 책임을 잊지 않는다.


'가상'현실이 아닌 교육'현실'을 선택한 자는 끝없는 책임에 직면하고 복잡한 전쟁을 치른다. 네오는 온갖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학교를 지목하며 교육의 기능을 무한정 확대하려는 이들과 17대 1로 싸우고, 입시 블랙홀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균형을 잡는다. 수업 방법 개선으로 잠자는 교실을 깨우라는 요구에 '수업연구는 당연한 책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은 서커스가 아니다'라고 이를 악문다. 지식 전달을 시대에 뒤떨어진 행위로 매도하는 반지성적 동향을 경계하면서, '권위'와 '권위주의'를 혼동하는 자들의 오해와 무지에도 맞서야 한다.


어쩌면 진짜 문제는 '잠자는 교실'이 깨어난 이후에 벌어질지 모른다. 일단 학생들이 깨고 나면 어른들은 더는 회피할 수 없다. 교육방법의 문제에만 집중하다가 '무엇을' '왜' 가르쳐야 하는지, 즉 '내용'의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 '민주 시민 양성'이라는 공교육의 목표를 실현하려면 지난한 논의와 정치 과정도 필요하다. '무엇을', '왜'의 문제가 소거됐던 가상현실 세계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안온한 가상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모피어스를 배반했던 사이퍼의 선택을 나는 비난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민 끝에 나는 빨간약을 입에 넣고 삼키기로 결심했다. 궁극의 교육방법이나 구원 따윈 없는 현실에서 나는 그저 직시하고 책임지는 어른이 되기로 했다. 그것이 다음 세대를 향한 내 책임과 사랑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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