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아주 뾰족한 세모였고 나는 아주 각진 네모였다. 그래서 1년 반을 만나고 헤어졌다.
몇 년 뒤 우린 영화처럼 다시 만났다. 고맙게도 그는 둥근 세모가 되어 있었다. 나도그 모습이 고마워 둥근 네모가 되기도 하고 때론 세모인척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세모와 네모였다.
평소 자주 싸우지 않았지만 한번 싸울 땐 서로 각진 부분 때문에 아주 크게 싸웠다.
그렇지만 그를 사랑했다.
그래서 우리가 다음엔 같은 이유로 싸우지 않기 위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는 그 순간을 싫어했다. 처음엔 싸운 후 바로 이야기하는 게 불편한가 싶어 하루, 이틀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와 같이 나를 대하였다. 그렇게 싸움에 대한 끝맺음을 매번 매듭짓지 못했다.
그렇다. 그와 나는 싸우고 화해하는 스타일이 달랐다.
그렇지만 우린 사랑했다.
오래 연애하며 그는 세모, 나는 네모라는 것을 인지했지만 동그라미로 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나는 서로 한 발씩 양보하며 동그라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는 그냥 세모와 네모 그 자체로 인정하며 살아가자고 했다.
어느 것도 정답은 없다. 성향이 다를 뿐이다.
서로 타협하는 것과 서로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
그 무엇도 틀린 것은 없다.
영화 엘리멘탈 뒷부분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엠버(불 원소)와 웨이드(물 원소)는 서로 다름을 알고 각자의 방식 대로 살아가고자 한다. 그렇지만 둘을 너무 사랑했기에 웨이드가 본인을 희생하면서 엠버를 지켰고, 그 과정에서 물과 불이 사랑할 수 있는 그들만의 사랑법을 찾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사랑을 하는 이유이며 서로 동그라미가 되려는 이유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나, 너는 너 평행선을 달리며사는 것도 맞는 것이지만, 사랑을 넘어 더 큰 미래를 그리는 연인들에게는 그들만의 사랑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엘리멘탈에서는 웨이드가 수증기로 증발하는 희생이 나왔지만 꼭 희생이 아니라 연인 사이에서는 이것이 싸움이 될 수도, 각자 한발자국씩 양보하는 것이 될 수도 그 외에 서로 맞춰가기 위한 타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이러한 과정을 거친 뒤에는 둘의 관계가 더욱 단단해지고 서로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고 생각한다.
웨이드가 수증기로 증발되지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린 사랑하지만 너는 불, 나는 물이니까 각자 원래 살던 방식 대로 살아가자는엔딩이 되지 않았을까? 사랑하지만 손을 잡을 수도, 서로 안아 줄 수도 없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반쪽짜리 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뭐.. 어디까지나 '만약'이니 다양한 상상에 맡겨본다.
다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가면,우리 둘은 사랑했지만 갈등을 마주하는 성향이 달랐다.그는 갈등을 회피하는 성향이었고 그런 갈등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상황을 풀어야하는 성향이었다. 나는 이런 갈등을 회피만을 할 수 없기에 우리 둘만의 해결방법을 찾기를 원했다.
그가 나처럼 네모로 바뀌길 원한 건 아니었고, 나도 무조건 그처럼 세모가 되길 원치 않았다. 그저 갈등이 생겼을 때 한 발씩 양보하고 우리 둘만의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제안을 했지만 그는 그냥 그대로 봐주길 원했다.
서로 수용 가능한 범위라면 상대의 있는 그대로를 봐주는 것이 맞지만 갈등이 생겼을 땐 각자의 방식을 고수하기 보단 타협점을 찾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의 생각이 아직 부족할 수도 있다. 30대의 오늘을 나도 처음 살아보기에, 모두가 그렇듯 우린 완벽하지 않기에 나 또한 부족함이 있다. 살다 보면 현재 이 생각이 부족하거나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깨달을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동그라미가 되어가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야 더 돈독한 사랑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긴 대화 끝에 우린 서로를 위해 놔 주기로 했다.
우린 무계획으로 다니는 성향도 잘 맞았고, 좋아하는 것도 비슷했고, 심지어 독특한 여행스타일까지 맞았기에 더욱 함께 미래를 그리고 싶었지만 그만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좋아하지만 자꾸 같은 문제를 반복한다면 네가 한 말이 맞는 것 같아. 우리 둘 다 바뀔 수 없으니까."
그가 했던 말이었다. 내가 기다렸던 대답은 부족하지만 동그라미가 되어보자였는데 그는 그것이 너무도 어려웠나 보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하지만 헤어졌다.
헤어지는 날 그가 같이 동그라미가 되어보자고 말했더라면 지금은 함께 미래를 그려 나가고 있었을까?
한편으로는 내가 그냥 그의 생각대로 했더라면 계속 만날 수 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헤어지면 죽을 만큼 슬프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눈물은 계속 나오지만 생각보다 덤덤했다.
마자막으로혼자 긁적여본다.
그가 나보다 하루 더 빨리 슬픔에서 헤어 나와 별일 없었다는 듯 행복하게 일상을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