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코이카 봉사단원 모집 중에 가장 폭발적인 경쟁률을 보였던 129기. 2년 활동에서 1년 활동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한 기수이기 때문이다. 해외파견 지원은 하고 싶은데 2년은 긴 거 같아서 부담스러워했던 사람들이 모두 지원한 것 같다. 사실 나도 그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129기에 지원하기 1년 전, 회사를 탈출하고 싶어 퇴근 후 며칠 밤을 지새우면서 코이카 봉사단원에 지원했다. 면접까지 합격을 했지만 2년이라는 시간이 부담이 되기도 했고 회사를 그만둘 용기가 없어 포기를 했었다. 그때 1년 활동이 생기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이 1년 뒤 실제로 일어났다. 매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조회수를 보면서 서류합격도 안 되는 거 아닌가라는 걱정을 했었는데 운이 좋게도 서류합격을 했고 면접장에 갈 수 있었다. 취업 면접도 아닌데 어찌나 떨리던지.. 떨림에 한 몫한 건 면접 당시 내 양옆에 있었던 지원자들이다. 나의 작고 귀여운 경력에 비해 양쪽에 앉았던 지원자들은 8년 9년 차 경력자로 말도 청산유수처럼 잘했다. 면접 보고 나오자마자 든 생각은 “에잇 떨어졌다. 내가 무슨..”였다. 떨어졌다 생각하고 이미 들떠 멀리 나간 마음도 다시 잡아 넣었다.
그런데 일 년치 운이 몰빵 되었던 걸까.내가 합격한 것이다! 양 옆에 어마어마한 경력의 소유자들이 있어서 나는 당연히 떨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합격했다. 합격 소식을 받고 그때서야 주변에 알렸다. 퇴사 사유에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르완다 거주라고 적는 짜릿함도 느꼈다. 20대의 마지막을 르완다에서 보낼 생각을 하니 신기하고 설렘 가득했다.
최종합격만큼 어려웠던 건 주변의 시선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최종합격을 하고 인사를 위해 지인들을 만나는데 진짜 나의 성향을 잘 알아서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극 소수의 지인들, 축하한다고 말은 하지만 "너 괜찮겠어?"라는 눈빛을 보내는 지인들, 아프리카에 가면 경력단절이 된다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하는 지인들로 나뉘었다.
나는 합격해서 아프리카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렘 가득했었는데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하는 주변의 시선들을 계속 보니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나 싶기도 하고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프리카를 다녀 온 후 명확한 계획은 없었지만 나름 생각한 것들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경력단절이라고 할 만큼의 큰 경력도 없었고, 최악의 상황으로는 내가 싫어하는 여행사에서 일하는 것까지 생각했었다. 눈을 아주 많이 낮춘다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 가기 위해서 나는 이런 최악의 상황도 생각했고 20대이기에 가질 수 있었던 용기와 무모함 덕분에 주변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에게 맞는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옳은 선택이란 없다.
인생에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틀린 선택도 없다.
우리는 각자의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할 뿐이다. 우리는 매 순간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현재의 나는 그 선택의 결과물이다. 나에게 맞지 않은 선택을 했더라도 변수는 너무 많기에 그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다. 무엇보다 당시에는 옳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돌이켜보면 그 선택으로 더 좋은 결과를 얻을 때도 있다.(살아가면서 이런 상황을 더 자주 겪는 것 같다) 우리는 현재의 선택이 얼마나 옳은 선택인지 혹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추측에 대해 맞고 틀리고를 논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내가 한 선택에 후회 없이 즐기면 되지 않을까?
"내 상황에 맞는 선택"인지 확신이 없어 정답을 찾아 헤맨다. 그렇지만 인생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관점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매슬로우 욕구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욕구를 타고난 것이고 욕구의 강도와 중요성에 따라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 욕구 5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을 직업에 적용시켜 보자. 누구는 오늘 하루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누구는 소속감을 얻기 위해 일을 하고, 누구는 사회적 명예를 위해, 또 누군가는 자아실현을 위해 일을 한다.
매슬로우 5단계 욕구 이론
우리는 모두가 일을 하고 있지만 일을 하는 "이유"는 모두 다르다. 일을 생계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의 선택은 경력단절이 맞고 옳지 못한 선택이 된다. 그렇지만 자아실현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나의 꿈을 위해 일을 하고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 중 하나로 아프리카에서 경험을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내가 하는 일은 지금까지 해온 업무 경험을 녹여내어 할 수 있는 것이고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더 넓은 꿈을 꿀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 때문에 누군가에게 옳은 선택이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옳지 못한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옳은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 순간 내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할 뿐이다. 난 나에게 맞는 선택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20대의 마지막을 미지의 세계 아프리카에서 보낼 수 있었다! 이보다 더 멋진 경험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