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쥐팥쥐는 어디서 왔을까?
진한 이전에 오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섭한이라는 이름의 딸아이가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질그릇을 잘 빗는 아이였습니다. 오 씨는 아내가 죽자 두 번째 아내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오 씨도 사랑하는 딸을 두고 아내의 곁으로 떠났습니다. 그러자 계모는 기다렸다는 듯 섭한을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개울가에서 아름다운 물고기 한 마리를 얻게 된 섭한은 계모 몰래 그릇에 담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섭한의 보살핌을 받은 물고기는 매일 조금씩 자라났고, 그릇에 키울 수 없을 만큼 몸이 커지자 뒷마당에 있는 연못으로 옮겨주었습니다. 물고기는 섭한이 다가서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 앞에는 나타나는 법이 없었습니다. 계모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섭한이 연못에 물고기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지만, 모습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 한 번도 실체를 본 적은 없었습니다. 계모는 한 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섭한에게는 다른 동네에 있는 샘에서 물을 길어오게 하고 그사이 섭한의 옷을 걸쳐 입고 연못으로 향했습니다. 섭한인 줄 착각한 물고기가 머리를 내밀자 계모는 재빠르게 칼로 머리를 찔러 낚아챘습니다. 그리곤 집으로 가져와 요리를 해 먹었습니다. 보살핌을 받아 살이 오른 물고기는 보통의 것보다 배는 맛있었습니다. 그렇게 배를 채운 계모는 남은 뼈를 퇴비 밑에 숨겨두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섭한은 물고기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들로 뛰어나가 통곡하였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머리를 푼 사람이 내려오더니 그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울지 말거라. 너의 계모가 물고기를 죽였다. 퇴비 밑에 뼈가 있으니, 돌아가 잘 추려 방에 숨겨두어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그 뼈에 소원을 빌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 퇴비를 들춰보니 물고기의 뼈가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가 알려준 대로 잘 추슬러 방안에 들인 섭한은 호기심에 소원을 빌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보석이든 옷이든 음식이든 원하는 그것은 뭐든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축제가 열린 어느 날, 계모는 섭한에게는 마당의 과실 나무를 지키라고 하고 딸과 함께 축제장으로 향했습니다. 모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섭한은 청록색 옷과 황금 신발을 갖추어 입고 축제장으로 향했습니다. 축제장에서 우연히 섭한을 목격한 딸은 비슷한 사람을 보았다며 계모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이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섭한은 급히 계모보다 먼저 발길을 돌렸습니다. 너무 서둘렀던 탓일까? 인파 속에 그만 신발 한 짝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뒤따라 돌아온 계모는 나무를 끌어안고 잠들어있는 섭한을 보고 의심을 거두었습니다.
섭한의 신발 한 짝은 일대 바다를 장악하고 있는 타한국에 팔려 갔습니다. 신발은 돌고 돌아 왕의 손에 전해졌습니다. 털처럼 가벼운데다가 돌을 밟아도 소리가 나지 않는 신비스러운 신발의 주인공이 궁금했던 왕은 주위 사람들에게 신어보게 했습니다. 그러나 맞는 사람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발이 아주 작은 사람에게도 한 치나 더 차이 날 정도로 작았기 때문입니다. 신발을 가져온 사람을 신문하고 옥에 가두어 봤지만, 출처를 알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왕은 인근에 있는 모든 마을의 집을 수색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집에서 나머지 한 짝이 발견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집안일을 하고 있던 섭한에게 신발을 신기자 발에 꼭 맞았습니다. 섭한은 왕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었고, 왕은 기뻐하며 섭한과 함께 물고기의 뼈를 거두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섭한이 마을을 떠난 뒤 계모와 이복동생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를 불쌍히 여긴 마을 사람들은 돌 구덩이에 모녀를 묻고 그곳을 오녀총이라 불렀습니다. 이후 아이를 갖고 싶은 이들이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특히나 딸을 원할 때 효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타한으로 간 섭한은 왕비가 되었습니다.
물고기의 뼈를 얻은 왕은 1년 동안 소원을 빌어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는데, 해가 바뀌자 더 이상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왕은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물고기 뼈를 금띠를 두른 상자에 구슬 100석과 함께 봉인하여 해안가에 숨겨두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무리의 우두머리가 해안가에 찾아가 물고기 뼈가 묻힌 곳을 파헤쳐보았으나 이미 조류에 휩쓸려가 버리고 난 뒤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성식의 하인이었던 이사원이 전해준 것으로 이사원은 옹주의 동중사람으로 중국 남부의 괴이한 많은 일들을 기록해 둔 바 있습니다.
섭한은 문자로 기록된 것 중에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 이야기입니다. 유럽의 맏언니라 불리는 이탈리아의 고양이 신데렐라보다 무려 800년이나 앞선 AD1000년경에 기록되었고요, 발견된 문서에는 이야기를 채집한 사람의 이름과 출신까지 꼼꼼하게 기술되어있어 문학사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는 기록물이기도 합니다. 섭한은 여러 면에서 놀라움을 선사하는데요, 신데렐라형 이야기가 무려 일천 년 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에 한 번, 유럽의 전유물인 줄로만 알았던 이야기가 수십만 리 떨어진 동남아시아에서 해안가에도 구전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게 합니다.
섭한은 여러 장면에서 독일의 아센푸텔을 생각나게 합니다. 정을 나누던 작은 생물의 도움으로 축제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던가,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이 인연이 되어 행복한 미래를 보장받게 된다던가, 주인공의 핍박하던 이들이 돌에 맞거나 눈알이 뽑히는 등 처절하게 죗값을 치른다는 설정까지, 일 천년이라는 시차가 무색할 정도로 두 이야기는 줄거리를 넘어 감정선마저 닮아있습니다. 이러한 유사성 때문일까요? 학계에선 아센푸텔이야 말로 신데렐라 원류에 가장 근접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섭한 이전에 또 어떤 신데렐라가 존재했었는지는 우리는 아직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섭한 덕분에 신데렐라형 이야기가 1천 년 전에도 사람들의 입과 문자로 전해지고 있었음을, 그리고 특정 지역에서 맴돌던 이야기가 아니라 서아시아를 건너 수 십만 리 떨어진 지중해까지 전해졌음을 알 수 있게 되었죠.
옛날 베트남에 카종과 할록이라는 자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카종의 어머니가 죽고 새어머니와 딸인 할록이 들어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까지 생을 달리하면서 카종과 할록 그리고 어머니 이렇게 셋이 한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카종과 할록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누가 언니인가를 두고 다툼이 계속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물고기를 더 많이 잡아 오는 쪽을 언니로 정하겠다면 바구니를 내어주었습니다. 그길로 둘은 냇가로 나갔습니다. 카종은 물이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열심히 고기를 잡았지만, 할록은 얕은 곳에서만 고기를 잡았습니다. 커다란 13마리의 물고기로 바구니 반쯤 채웠던 카종과 달리 할록의 바구니엔 피라미 10마리가 전부였습니다. 카종이 지쳐 바구니를 땅에 내려놓고 누워서 쉬고 있을 때 할록은 카종의 바구니에서 물고기를 훔쳐 자신의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이 사실을 눈치챈 카종은 내색하지는 않았습니다. 증거도 없이 도둑으로 몰았다가 어머니께 혼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냇가로 나가 다시금 물고기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작은 물고기 한 마리만 잡았을 뿐 더 이상 물고기는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카종이 동생이 되었습니다. 슬픔에 잠긴 카종은 마지막으로 잡은 물고기를 샘에 풀어놓고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새어머니와 언니 몰래 물고기를 찾아가 밥을 나눠주고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카종은 물고기를 동생처럼 여기며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샘에서 물고기가 사라졌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카종은, 마치 친동생이 없어진 것처럼 울고 또 울며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러자 그날 밤 꿈에 물고기가 나타났습니다.
“누나, 할록이 나를 잡아먹었어. 할록은 나를 잡아먹고 뼈를 대나무 통에 넣어두었어. 부디 내 뼈를 잘 추슬러 사거리에 묻어줘. 염소를 치기 위에 오가는 길에 누나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말이야.”
카종은 물고기 뼈를 코코넛 잎에 잘 싸서 물고기가 말한 곳에 정성스럽게 묻어주고 오갈 때마다 눈물로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어느 날 카종은 물고기를 묻어준 곳에 황금으로 만든 신발 한 짝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하였습니다. 물고기의 선물이라 생각한 카종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신발을 숨겨두었습니다. 나머지 한 짝은 까마귀가 물어다 왕궁에 떨어뜨렸습니다. 황금신발을 발견한 왕은 귀한 신발의 주인을 찾아 혼인하겠노라고 공표했습니다. 그러자 딸이 있는 집안마다 온갖 치장을 다 해 딸들을 왕궁으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새어머니도 할록을 치장하여 궁으로 보냈습니다. 카종에게는 엉킨 실타래를 던져주며 다 풀면 보내주겠다며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카종은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움켜쥐고 혼자 슬피 울었습니다. 하늘의 알와신이 이 모습을 어여삐 여겨 개미들을 보내주었는데 개미들은 실타래 안으로 기어들어 가더니 순식간에 엉킨 실들을 풀어주었습니다. 카종은 실타래를 가지고 의붓어머니에게 갔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깨 한 통과 옥수수 한 통을 섞더니 골라내라고 시켰습니다. 이 광경을 본 알와신은 숲속의 모든 새, 개미와 흰개미, 전갈, 지네, 벌레들을 시켜 카종을 도와주었습니다.
더 이상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새어머니는 카종을 보내주었습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왕궁으로 향하는 무리에서 외롭게 왕궁에 도착한 카종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신발은 신어보지도 않고 부끄러움에 왕궁 뒤편에 숨어있었습니다.
모든 소녀가 신발을 신어보았지만 맞는 발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신발을 신어본 사람 중에 딱 맞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가?"
왕이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네. 한 명도 없습니다."
하고 신하들이 대답했다.
"모든 사람이 다 신어보았는가?"
"여기 왕궁 뒤에 숨어있는 여인이 한 명 있습니다."
"그녀에게 들어와서 신발을 신어보라고 해라."
카종이 신발을 신자 발에 딱 맞았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챙겨온 나머지 신발 한 짝을 보여주자.
"당신이 내 아내가 되는 것이 진정으로 그대 운명이로다"
하고 감탄하듯 왕이 말했다.
다른 모든 소녀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할록도 집에 돌아가서 어머니에게 왕궁에서 있었던 이야기와 카종이 왕비가 되었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새어머니는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한달음에 왕궁으로 달려가서 왕에게 3일간 친정집에 머물며 이별을 정을 나눌 수 있게 해달라며 간청했습니다. 그렇게 카종을 집으로 데리고 온 새어머니는 질투심에 화려한 옷을 빼앗고, 먹을 것도 주지 않고 딱딱한 대나무 돗자리에서 자게 했습니다. 다음날 할록은 코코넛을 함께 따러 가자며 카종을 데리고 나갔고, 카종이 코코넛 나무에 올라가자 도끼로 내려찍어 호숫가에 떨어뜨렸습니다. 카종은 호수에서 황금빛 거북으로 변했습니다. 새어머니는 왕에게 카종이 도망쳤다고 거짓말을 하고 대신 언니인 할록을 왕비로 삼아야 한다고 우겼습니다. 결국 왕은 할록을 왕비로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카종을 잊지 못하고 슬픔에 잠겼습니다. 어느 날 사냥터에서 황금 거북을 발견한 왕은 왕궁으로 데려와 황금 대야에 넣고 애지중지 길렀습니다. 이 모습을 탐탁지 않게 여긴 할록은 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거북을 잡아먹고 등껍질을 왕궁 뒤편에 버렸습니다. 등껍질은 싹을 틔우고 대나무로 자라났습니다. 산책길에서 이 대나무를 본 왕은 흡족해하며 대나무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습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할록은 대나무를 꺾어 죽순 요리를 해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죽순이 새로 변해서 날마다 왕궁에 날아와 구슬피 울었습니다. 이 모습을 기이 여긴 왕은 새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네가 만약 카종이라면 내 소매에 와 앉으렴.”
그러자 마치 말귀라도 알아들은 것처럼 왕의 소매에 사뿐히 앉았습니다.
왕은 그 새를 무척이나 아꼈습니다.
이 역시도 두고 볼 수 없었던 할록은 또다시 새를 잡아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깃털을 왕궁 밖 먼 곳에 버렸습니다.
깃털에서 무캬나무가 솟아났습니다. 무캬열매는 아주 좋은 향을 냈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열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혼자 사는 가난한 할머니가 이 앞을 지나다 이 향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 나무 열매를 맛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자 열매가 할머니 앞에 툭 떨어졌습니다. 할머니는 얼른 열매를 주워 빈 쌀통에 소중히 간직했습니다. 어느 날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자 쌀통에 쌀이 가득하고 바구니에는 과자가 놓여있었습니다. 다음날 또 그다음 날에도 쌀과 과자가 놓여있었습니다. 궁금했던 할머니는 외출을 나가는 척하며 몰래 숨어 엿보았습니다. 항아리에서 아리따운 아가씨가 나와 쌀과 과자를 놓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얼른 아가씨의 손을 잡았습니다. 카종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며 이 집에서 잔치를 열 테니 왕을 초대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런 누추한 곳에 왕이 와줄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할머니는 카종을 말대로 왕궁에 가서 왕에게 잔치에 꼭 와달라며 부탁했습니다. 어쩐 일인지 왕도 이 잔치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가마를 타고 왕궁을 나서자 왕궁의 대문에서부터 할머니의 집까지 카펫이 깔려 있었고 과자로 덮여 있었습니다. 화려하게 변신해있는 집에 다다르자 할머니는 카종을 말대로 왕에게 과자를 내어주었습니다. 과자를 맛본 왕은 단번에 카종의 솜씨임을 알아챘습니다. 그렇게 카종과 상봉한 왕은 할머니에게 상을 내리고 카종을 왕궁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할록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카종! 네가 돌아왔구나! 네가 없는 동안에 내가 왕의 옆에서 네 역할을 했단다. 남이라면 그렇게 해줄 수 있었겠니?"
그러나 뻔뻔한 그의 행동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카종은 왕에게 의붓어머니가 그녀에게 어떤 일을 했으며, 또 할록이 그녀를 야자나무 위로 올라가게 한 다음 나무 밑동을 도끼로 쳐서 호수에 빠트리게 한 일, 그리고 그녀가 거북으로 변한 일 등 모든 일들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다음날 할록이 카종에게 물었습니다.
"얘, 네 피부는 어떻게 그렇게 하얗니?"
카종은 솥에 물을 끓인 다음 그 안에 들어가면 하얗게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카종처럼 되고 싶었던 할록은 그 말을 믿고 솥에 들어갔습니다. 그러고는 물에 데어서 죽고 말았습니다.
카종은 시체를 꺼내서 토막을 내고 젓갈을 담그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는 신하들을 시켜 젓갈 통을 어머니에게 가져다주며 할록이 어머니를 보고 싶어 하니 왕궁에 들르라고 전하도록 했습니다.
할록을 찾아온 새어머니는 카종을 보고 놀랐습니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새어머니는 부끄러운 마음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의붓어머니가 젓갈을 거의 다 먹었을 때 반지를 낀 손이 나왔는데 그제야 그것이 친딸의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카종과 할록은 베트남일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꽤 유명한 구전동화입니다. 베트남에서는 지금도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제작되고 있죠. 구전 순서로 볼 때, 카종과 할록은 섭한과 콩쥐팥쥐의 중간쯤이 아닐까싶습니다, 앞뒤 두 작품사이에 교집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모가 키우던 물고기를 잡아먹고, 물고기의 뼈를 추슬러 도움을 받는 다는 초반부 설정은 섭한과 같고, 의붓언니가 주인공을 죽이고 대신 왕비행세를 하다가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후반부 설정은 콩쥐팥쥐와 같습니다.
카종과 할록은 알려진 신데렐라형 이야기들 중 가장 잔혹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토리만보면 보면 콩쥐팥지와 닮은 점이 많은데요, 잔혹성으로만 본다면 카종과 할록이 한 수 위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언니를 처형하려 할 때, 콩쥐는 말렸지만, 카종은 먼저 나서 팔팔 끓는 솥에 넣어 삶아버리죠.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젓갈을 담궈 계모에게 한 통 다 먹게 합니다.
그러나 콩쥐를 시기한 배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신통한 무당을 찾아가 팥쥐의 얼굴을 콩쥐와 비슷한 얼굴로 둔갑시켜 관가로 보냈습니다. 관가에 침입한 팥쥐는 우물가로 콩쥐를 유인하여 물에 빠뜨리고 자신이 감사의 부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에 빠진 콩쥐는 물속에서 그만 숨을 거두었고 얼마 후 한 송이 연꽃으로 피어올랐습니다. 연못을 지날 때 마다 뒷목을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던 팥쥐는 어느 날 작정하고 뒤를 돌아보곤 기겁을 하였습니다. 연꽃에서 그림자 손이 나와 그녀의 머리를 당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콩쥐는 하인을 시켜 연꽃을 건져 아궁이에 불태워버렸습니다.
이웃에 사는 한 노파가 불씨를 빌리기 위해 감사댁 부엌을 찾았습니다. 아궁이를 들여다보니 오색 구슬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노파는 사람들 몰래 치마폭에 구슬을 싸온 뒤 자신의 집 벽장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벽장 속에서 ‘할멈, 할멈’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노파가 뒤를 돌아보자 콩쥐가 나타나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콩쥐는 할머니에게 전라감사를 집으로 초대해달라고 부탁했고 며칠 뒤 감사는 할머니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콩쥐는 일부러 감사의 상에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을 올려두었었습니다. 감사가 이를 눈치 채자 콩쥐는
“젓가락 바뀐 것은 알면서 어찌 부인 바뀐 것은 모르는 것입니까?”
하고 말하고는 감사의 앞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간의 사정을 알게 된 감사는 연못을 수색해 콩쥐의 시체를 찾아냈고 콩쥐는 다시 소생하게 되었습니다. 분노한 사람들은 팥쥐의 몸을 소 네 마리에 묶은 뒤 사지를 찢어 죽여 버렸습니다. 콩쥐가 말렸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분이 덜 풀린 사람들은 팥쥐의 시체로 젓갈을 담아 독에 넣고 기름종이로 봉하여 배씨에게 보냈습니다. 딸에게 온 선물로 알고 있던 배씨가 노끈을 풀고 기름종이를 젖히니 편지 한통이 나왔습니다.
‘착한 마음은 보답을 받고, 못된 마음은 못된 마음은 못된 마음으로 보답을 받을 것이니 무릇 살인을 한 자는 이렇게 죽는 것이 마땅하다.’
배씨는 그것이 자신의 딸임을 알고 그 자리에서 기절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콩쥐를 시기한 배 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신통한 무당을 찾아가 팥쥐의 얼굴을 콩쥐와 비슷한 얼굴로 둔갑시켜 관가로 보냈습니다. 관가에 침입한 팥쥐는 우물가로 콩쥐를 유인하여 물에 빠뜨리고 자신이 감사의 부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에 빠진 콩쥐는 물속에서 그만 숨을 거두었고 얼마 후 한 송이 연꽃으로 피어올랐습니다. 연못을 지날 때마다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던 팥쥐는 어느 날 작정하고 뒤를 돌아보곤 기겁하였습니다. 연꽃에서 그림자 손이 나와 그녀의 머리를 당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콩쥐는 하인을 시켜 연꽃을 건져 아궁이에 불태워버렸습니다.
이웃에 사는 한 노파가 불씨를 빌리기 위해 감사댁 부엌을 찾았습니다. 아궁이를 들여다보니 오색 구슬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노파는 사람들 몰래 치마폭에 구슬을 싸 온 뒤 자기 집 벽장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벽장 속에서 ‘할멈, 할멈’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노파가 뒤를 돌아보자 콩쥐가 나타나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콩쥐는 할머니에게 전라감사를 집으로 초대해달라고 부탁했고 며칠 뒤 감사는 할머니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콩쥐는 일부러 감사의 상에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을 올려두었었습니다. 감사가 이를 눈치채자 콩쥐는
“젓가락 바뀐 것은 알면서 어찌 부인 바뀐 것은 모르는 것입니까?”
하고 말하고는 감사의 앞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간의 사정을 알게 된 감사는 연못을 수색해 콩쥐의 시체를 찾아냈고 콩쥐는 다시 소생하게 되었습니다. 분노한 사람들은 팥쥐의 몸을 소 네 마리에 묶은 뒤 사지를 찢어 죽여 버렸습니다. 콩쥐가 말렸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분이 덜 풀린 사람들은 팥쥐의 시체로 젓갈을 담아 독에 넣고 기름종이로 봉하여 배 씨에게 보냈습니다. 딸에게 온 선물로 알고 있던 배 씨가 노끈을 풀고 기름종이를 젖히니 편지 한 통이 나왔습니다.
‘착한 마음은 보답받고, 못된 마음은 못된 마음은 못된 마음으로 보답을 받을 것이니 무릇 살인을 한 자는 이렇게 죽는 것이 마땅하다.’
배 씨는 그것이 자기 딸임을 알고 그 자리에서 기절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대한민국 콩쥐팥쥐 차례가 되었네요.
콩쥐팥쥐는 앞서 살펴본 베트남의 ‘카종과 할록’과 닮은 점이 많습니다. 이제 좀 편하게 살려나 싶을 때 어디선가 계모와 언니가 다시 나타나더니 주인공을 죽이고 왕비 자리마저 약탈해버린다는 것과 혼령이 된 주인공이 궁궐 밖으로 남편을 불러내어 억울한 사연을 알리고 다시 자신의 신분을 되찾는 것까지 두 이야기는 참으로 많이 닮아있습니다. 주인공을 살해한 언니가 사지가 찢겨 젓갈이 된다는 것과 이 사실을 안 계모가 실신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까지, 딱 봐도 한 이야기에서 파생되었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두 이야기가 많이 닮았죠.
그러나 조금만 확대해보면 콩쥐 이야기가 훨씬 섬세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어찌나 친절한지 첫 대목부터 아버지의 이름과 직업 살았던 곳, 콩쥐라는 이름의 유래와 계모의 성까지 꼼꼼하게 알려준 후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줄거리 시작 전에 인적 사항 읊어주기는 대한민국 고전 동화의 특성이기도 한데요, 덕분에 심청의 아버지가 황해도 황주목 도화촌 출신의 심학규라던가 장화와 홍련의 아버지가 평안도 철산 좌수 배무룡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죠. 이 부분은 차후 전래동화 시간에 좀 더 자세하게 다뤄보도록 하고요, 오늘은 콩쥐팥쥐 안에 숨어있는 몇 가지 디테일을 살펴볼까 합니다.
첫 번째 디테일로 계모의 핍박과 그에 맞서는 아이템들입니다.
나무 호미로 밭매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베 짜기, 겉피 석 섬 찧기 등 핍박의 강도와 종류와 다양하지만, 이에 맞서는 대응팀 역시 여느 신데렐라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합니다. 뿔이 세 개 달린 신비한 소, 깨진 독을 한방에 커버해주는 두꺼비, 겉피 석 섬을 순식간에 찧어주는 조류특공대에 더해 칠월칠석에나 등장하는 줄 알았던 베틀의 달인 직녀까지 임무 하나하나마다 각기 다른 조력자가 등장하여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이 중에 직녀는 고운 비단 치마저고리, 내의, 댕기, 물에 젖지 않는 버선과 예쁜 신까지 풀 패키지로 내어주죠.
두 번째, 잔치 설정에 대한 디테일입니다.
여타 신데렐라 이야기는 어느 날 열린 마을의 축제거나 왕자의 신붓감을 뽑는 선발대회 정도로 단순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콩쥐팥쥐에선 오월 단오와 외가의 잔치라고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죠. 단오는 유교 사회에서 여인들이 마음껏(그래봤자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띄우는 정도겠지만) 놀 수 있는 몇 안 되는 날이었습니다. 십 대 소녀에게는 가슴 설레는 축제가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열린 외가의 잔치는 어땠을까요? 콩쥐에게 외가는 자신을 오롯이 이해해주고 보듬어주는 세상의 하나밖에 없는 공동체였을 것입니다. 언제라도 달려가고 싶고 또 위로받고 싶은 곳이었겠죠. 그러나 계모는 그마저 못 가게 가로막습니다. 친딸만 데리고 전처의 친정잔치에 찾아가는 염치없는 모습에 사람들이 쑤군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잔치를 즐겼습니다.
동양의 신데렐라는 끔찍하고 잔혹한 소재가 많이 등장합니다. 특별히 이유가 있을까요? 이야기 속에서 등장한 물고기 뼈와 신비한 동물 그리고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이들은 모두 먼저 떠난 어머니를 상징합니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뒤집어보면 이는 더 분명해집니다. 만약 어머니가 주인공의 곁에 있었다면 이런 핍박을 받을 리 없었겠죠. 서양의 신데렐라는 아버지도 살아있고 계모와 언니에게 구박 정도만 당하지만, 동양의 신데렐라는 양친 모두 없는 가운데, 모진 학대를 받다 인생 좀 필까 싶을 때 계모와 언니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주인공의 복수가 잔인한 일차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죄질이 다르다는 점.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젓갈을 담그는 건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요? 말이 됩니까? 아니요. 말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부모가 되어 하나뿐인 딸의 이런 학대와 죽음을 목격했다면요? 우리나라 말 중 분노의 표현 중에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에 핵심은 ‘씹어 먹는다.’가 아니고 ‘시원치 않다.’입니다. 자식에 해를 가하는 자, 그것에 대한 분노는 결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심성 고운 소녀가 계모와 언니들에게 핍박받다가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이 되돌아오면서 해피엔딩이 되는 이야기를 통칭해 신데렐라형 민담이라고 부릅니다.
신데렐라형 이야기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요?
전래동화 중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또 많이 발견되는 스토리는 ‘흥부와 놀부’이야기입니다. 형제가 선과 악으로 나눠 대립하는 이야기는 기원전 작성된 이솝우화에서부터 현대동화에 이르기까지, 또 중앙아프리카에서부터 극동아시아까지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경책만 봐도 신구약에 걸쳐 여러 편의 형제간의 갈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살인 드라마인 카인과 아벨, 늙은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아낸 야곱, 어린 요셉을 노예상에게 팔아버린 형제들, 재산을 탕진하고 집으로 돌아온 동생을 질투하는 형의 이야기 등등…. 이뿐이겠습니까? 형제의 투쟁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는 전 세계를 걸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있습니다. 장자에게만 주어지던 특권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형제간의 갈등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어 보입니다. 이처럼 시대와 문화권을 막론하고 여러 곳에서 다발적으로 발견되는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데렐라는 다릅니다. 계모와 언니의 핍박, 잃어버린 신발 한 짝, 신발 신어보기 이벤트, 주인공의 신분 상승, 계모와 언니의 정죄 등으로 이어지는 오직 신데렐라형 이야기에서만 발견되는 세밀한 설정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동아시아-동남아시아-중동-유럽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를 연결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발견되는 반면 아프리카와 이집트 아메리카대륙에는 신데렐라 형 구전동화가 전무하다는 사실 역시 창작동화임을 반증하는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문학계에서도 역시 한 개의 뿌리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서구의 신데렐라와 한국의 콩쥐팥쥐는 어째서 이야기가 비슷할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겁니다. 구한말 개항과 함께 서양인들을 통해 들어온 신데렐라가 우리식으로 각색된 것이라 하는 이가 있고, 유럽의 이야기가 중동과 중국대륙을 거쳐 실크로드를 타고 한국에 들어온 것이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동화해부학과 함께한 여러분들이라면 이제 이런 이야기에 웃어넘길 수 있겠죠?
신데렐라의 진짜 고향은 어디일까요?
카종과 할록이 살던 사계절이 따뜻한 동남아시아였을까요? 일천 년 전 처음으로 잃어버린 신발 한 짝에 대해 기록된바 있는 중국 서남부 어느 바닷가 마을이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확신하는 한 가지는 유럽보다 아시아가 원류일 것이라는 것과 굳이 따지자면 왕궁의 사교계를 사로잡았던 상드리옹보다 단오에 그네타기를 희망했던 콩쥐팥쥐가 원작일 확률이 높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