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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코선생 Aug 22. 2019

발목을 잘라내도 용서받지 못한 죄

안데르센. 2 빨간 구두(분홍신)

빨간 구두(분홍신)

구전동화에는 유독 무서운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가 어째서 이토록 잔혹한 장면이 많은 걸까요? 그것은 교훈 때문입니다. ‘빨간 망도’는 아동유괴에 대한 경각심을, ‘미녀와 야수’ 이야기에는 깜깜이 중매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고자 하는 나름의 교육적 목적이 담겨있죠. 구전동화는 부모의 입을 통해 대를 이어 전해집니다. 주로 가정 안에서 구전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훈계가 곁들여지고 '저러면 너도 큰 벌 받을 거야.' 하는 식의 벌을 강조하는 경향이 덧대어지면서 잔혹한 이야기가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림동화로 알려져 있는 독일의 구전 설화집인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에 유독 잔인한 스토리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얼마나 끔찍한 이야기들이 많았던지, 그림형제는 훗날 어린이가 읽을 수 있도록 각색하여 재출판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훗날 안데르센과도 친분을 갖은 야코프 그림과 빌헤름 그림. 

구전동화의 잔혹한 이야기는 훗날 미니시리즈로 모아 해부해보기로 하고 오늘은 창작동화 중 유별나게 잔혹한 이야기 한편을 들여다볼까 합니다. 구전동화에 비하면 창작동화 중엔 잔인한 이야기가 의외로 적습니다. 끽해봤자 못된 놈을 조금 무서운 방법으로 처단하는 정도죠. 그런데 오늘 만나볼 ‘빨간 구두’는 창작동화임에도 자비가 없습니다. 오히려 어른들을 위해 쓰여지 설화 이상이죠. 안데르센은 어쩌자고 이리도 잔인한 스토리를 창안해낸 것일까요? 주인공인 카렌의 실제 모델은 누구이며, 왜 그녀를 죽도록 춤추게 만들었을까요? 두 손 깨끗이 씻었으면, 함께 수술실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스토리부터 털고 갑시다.     


‘빨간 구두’는 안데르센 작품 중에 유독 무섭고도 끔찍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덕분에 서점가에는 원작을 찾아내기 힘들 만큼 각색본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린 시절 읽었던 각색 본은 잠시 접어두고 원작 완역본으로 정주행 해 보겠습니다.

 

옛날에 카렌이라는 이름을 가진 귀엽고 사랑스러운 한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너무나 가난해서 발등을 조이는 나막신을 신어야 했고, 그나마 여름에는 맨발로 다녀야 했습니다. 카렌의 딱한 사정을 익히 알고 있는 한 마을에 살고 있는 구두 선공이 분홍색 자투리 천으로 신발을 한 켤레 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신발을 선물 받은 날이 어머니의 장례식 날이었기에 카렌은 덧대 만든 분홍 신을 신고 관을 뒤따라야 했습니다.

때마침 주변을 지나 던 나이 든 부인이 이 장면을 보았습니다. 소녀의 처지를 측은히 여긴 노부인은 카렌을 자신의 마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 나이 든 부인은 분홍 신을 태워버리고 예쁜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카렌은 일기와 쓰기, 바느질을 배웠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카렌을 귀여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왕님이 어린 공주와 함께 이 나라로 여행을 왔습니다. 사람들은 행차를 구경하기 위하여 성으로 몰려갔고, 카렌도 뒤 따라갔습니다. 사람들 모두 공주의 아름다운 자태에 감탄을 하고 있을 때 카렌은 공주가 신고 있는 빨간 구두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곤 세상 어떤 신발도 저 빨간 구두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고 생각했죠.


몇 년이 지나고 세례를 받을 나이가 되자, 카렌은 세례식에 신을 구두를 사기 위해 할머니와 함께 마을에서 가장 큰 구두 가게를 찾았습니다. 여러 가지 화려한 모양의 구두 중에 카렌을 눈을 빼앗은 건 역시나 빨간색이었습니다. 지난번 공주가 신고 있던 것과 똑같은 모양의 구두를 발견한 카렌은 눈이 어두운 할머니를 속여 세례식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빨간 구두를 집어 들었습니다.


세례식 날, 사람들은 모두 카렌의 신발을 보고 쑤군거렸습니다. 그러나 카렌은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할 때도 머릿속엔 온통 빨간 구두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오후가 되어 사람들에게 빨간 구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는 카렌을 꾸짖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 또다시 주일이 돌아왔습니다. 카렌은 신발장에 있는 검은색과 빨간색 신발을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카렌은 이번에도 빨간 구두를 집어 들었습니다. 또다시 눈이 어두운 할머니를 속이고 교회로 향했습니다. 교회 앞에 다다를 무렵, 군복 차림에 목발을 짚고 있는 노인이 카렌과 할머니 앞에 다가왔습니다. 노병은 정중히 인사를 하곤


“아주 예쁜 신발이네요. 아가씨가 신나게 춤을 추어도 발에 꼭 붙어서 벗겨지지 않겠어요!”


하는 말과 함께 구두를 닦아주곤 할머니께 1실링을 받아갔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카렌의 분홍 신을 바라보았습니다. 심지어 벽에 걸린 그림들도 카렌을 내려가 보는 것 같았습니다. 카렌은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머릿속엔 온통 빨간 구두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카렌은 그만 찬송가를 부르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마차에 타기 위해 발을 드는 순간 아까 보았던 노병이 나타났습니다.


“보세요, 춤추기 딱 좋은 신발이지요.”


그 말을 듣자마자 카렌의 발은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신발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뿐 혼자 힘으론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몰려들어 강제로 신발을 벗겨냈고, 그제야 춤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간 카렌은 신발장에 구두를 넣어버렸습니다. 며칠 후 할머니는 병에 걸려 몸져누웠습니다. 할머니를 돌봐줄 사람은 자신밖에 없음을 카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신발에 이끌려 밤 낯으로 춤을 주는 카렌

할머니가 병석에 있는 어느 날, 마을에서 큰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무도회에 초대받은 카렌은 무도회에 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할머니를 한 번 보고 빨간 구두도 한번 보았습니다. ‘한 번 신어보는 것만으론 죄가 되지 않을 거야.’ 하며 아쉬운 마음에 신발을 신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카렌은 자신도 모르게 신발에 이끌려 무도회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곤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신발을 무도회장을 벗어나 성문을 넘어 도시 밖으로 몸을 이끌었습니다. 벗으려 할수록 오히려 발을 조여 왔고, 양말이 찢어지고 발에서 피가 날 때까지 계속 춤을 추었습니다. 비가 와도 햇살이 비추든 상관없이 몇 날을 들판에서 춤을 추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한밤에 공동묘지에 들어가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춤을 추던 카렌은 교회 앞에서 보았던 노병과 번쩍이는 칼을 든 천사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둘은 카렌을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영원히 춤을 추게 될 것이라며 저주만 퍼부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자, 카렌은 진심으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러자 하늘의 문이 열리고 천사가 나타나 빨간 구두를 벗겨주었습니다. 카렌은 평생을 겸손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며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각색본은 대체로 이런 식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렇게 끝나면 잔혹동화라 할 수 없죠. 원본의 이야기는 이렇게 연결됩니다. 


며칠 밤 낯을 죽을 만큼 힘들게 춤을 추었던 카렌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신발을 벗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카렌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사형집행관을 찾아갑니다.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 들려주자 사형집행관은 고심 끝에 카렌의 발목을 잘라버렸습니다. 신발은 잘린 발과 함께 춤을 추며 숲으로 사라졌습니다. 사형집행인은 카렌에게 목발과 나무 발을 만들어주고 회계의 찬송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자신의 발목을 자르기 위해 사형집행관을 찾아간 카렌

이 정도면 충분히 벌을 받았다고 생각한 카렌은 종종걸음으로 교회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앞에 다다르자 빨간 구두가 나타나 자신을 가로막으며 또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카렌은 너무 무섭고 슬퍼서 울면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또다시 이쯤이면 충분히 벌을 받았고 누구보다 착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교회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분홍신이 카렌을 가로막았습니다. 그제 서야 카렌을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쳤습니다. 카렌은 교회가 아닌 목사님 집으로 향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돈은 필요 없으니 일을 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렇게 목사님 집에 들어간 카렌은 열심히 일했고, 저녁이면 목사님께서 읽으시는 성경책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주말이 되자 집안사람 모두 교회에 갔습니다. 걸을 수가 없는 카렌은 혼자 자신의 작은 방에서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오! 하나님, 부디 저를 도와주세요!’


그러자 방안에 빛이 들더니, 전에 보았던 천사가 다시 카렌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번엔 번쩍이는 칼이 아닌 활짝 핀 장미나무 가지를 들고 있었습니다. 천사는 카렌을 교회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찬송가가 끝나자 사람들이 카렌에게 잘 왔다며 인사를 전했고, 카렌은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말한 뒤, 햇볕이 내리쬐는 교회 안에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환희를 느끼며 하나님의 곁으로 갔습니다.               



왜 카렌인가?


안데르센의 자서전에서 자신의 어머니는 대해 세상에 대해서는 무지했지만 사랑으로 가득한 분이라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의 어머니는 안데르센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머니인 안네 마리는 전형적인 난혼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자신과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모두 최소 3명 이상의 남성과 결혼을 했고, 훗날 여동생 중 한 명은 수도인 코펜하겐에 사창굴을 차리게 되죠. 실제로 안데르센은 처음 코펜하겐에 와서 돈이 모두 떨어져 힘들어할 시기에 몇 푼이라도 얻어 볼 요량으로 이모를 찾아간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돈은커녕 ‘계집애라면 돈벌이가 될 텐데....’라는 푸념만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 자서전에서 어머니 이야기는 매우 짧게 다루고 있고 이모의 이야기는 단 한 줄도 기술하지 않고 있습니다. 안데르센은 해외여행 중에 서신으로 어머니의 부고를 듣습니다. 천 페이지 가까이 되는 자서전에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겨우 석 줄 뿐입니다. 여행 중에 보고 만난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리도 섬세하게 기술해놓았음에도 말이죠.


이렇듯 안데르센에게 가족은 가난과 고통 그리고 부끄러움 자체였습니다. 그중 안데르센에게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가족은 어머니와 다른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배다른 남매였습니다. 자신보다 6살 많은 의붓누나는 외할머니 손에 길러졌기 때문에 실제로 안데르센과 마주칠 일이 없었음에도 어린 안데르센은 언젠가 그녀가 나타나 자신이 독차지하고 있는 사랑을 빼앗아갈지도 모른다는 걱정 했다고 합니다. 그 의붓남매의 이름이 바로 ‘카렌’입니다. 카렌은 안데르센이 한창 작가로 주가를 올리고 있을 무렵 안데르센을 찾아온 적이 있다고 합니다. 안데르센은 몇 푼 쥐어주며 그녀를 돌려보냈다고 하네요.   



빨간 구두성욕과 타락의 상징일까?


허영심이 많았던 카렌은 빨간 구두가 너무 좋아서 예배와 세례식에 신고 갑니다. 사람들의 눈총과 할머니의 꾸지람을 받았지만, 그래도 빨간 구두가 너무 신고 싶었습니다. 무도회 초청장을 받고 소녀는 다시금 신발장을 열어봅니다. ‘신어보는 것만으론 죄가 되지 않을 거야.’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구두를 신었습니다. 말 그대도 한 번 신어본 것뿐이었죠. 그러나 이야기 속에서 소녀는 실로 어마 무시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며칠 동안 발이 피범벅이 될 정도로 고통스럽게 춤을 추어야 했고, 발목을 잘나 내고 나서야 그 무서운 춤을 멈출 수가 있었습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진심으로 참회할 때까지 잘린 발에게 조롱을 당해야 했죠. 그러나 끝끝내 소녀는 다리를 다시 얻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게 됩니다. 아이의 눈으로 보기엔 너무나도 참혹한 결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빨간 구두는 여성운동이나 아동학대, 형벌에 대한 논쟁에 소재로 자주 쓰입니다. 동화의 아부지 안데르센은 어쩌자고 이렇게 끔직한 스토리를 만들어낸걸까요?

해답을 얻기 위해 잠시 그 시절 윤리와 종교적 금기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종교계는 중세기에 들어서며 대놓고 타락의 길로 들어섭니다. 대주교 자리는 권력과 지역에 따라 가격이 정해질 정도였는데, 워낙 꿀보직이다 보니, 높은 가격을 주고서라도 대주교 자리를 얻으리라는 욕망의 레이스가 시작되었습니다. 말이 좋아 대주교이지 실상은 빚쟁이들이 많았습니다. 대주교가 된 후 빚을 갚기 위한 2차 레이스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면죄부는 이런 과정에서 생겨났습니다. 면죄부는 자신의 죄는 물론 가족과 조상의 죄까지 면제가 될 뿐만 아니라, 미래에 저지를 죄까지 면죄가 되는 넘사벽의 관용을 자랑했습니다. 귀족에서부터 농민에 이르기까지 지옥의 공포를 자극하여 면죄부를 팔아먹었으며, 부록으로 갖가지 성물을 만들어 팔아먹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죄를 짓기 위해 미리 면죄부를 사는 사람들까지 생겨날 정도로 이 무렵 유럽의 종교계는 아수라장 그 자체였습니다.


면죄부 하면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죠? 그렇습니다. 독일의 루터입니다.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신학교수이자 수도사제로 활동하고 있던 루터는 1517년 독일에 비텐베르크 성 앞에 있는 만인 성자 교회의 문에 95개 조 반박문을 내걸었습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유럽의 종교계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16세기, 교황을 중심으로 한 1500년의 철옹성과 같았던 유럽의 종교계는 성경 중심 신앙과 금욕주의, 강경한 반로마교회 기치로 전통주의에 반대 노선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안데르센이 살았던 시기 북유럽은 칼뱅을 중심으로 한 청도교 성향이 강했습니다. 충실한 교인이었던 안데르센은 많은 작품에서 당시의 종교적 가치와 신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중 교회로 시작해서 교회를 끝을 맺는 작품 빨간 구두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채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아이에게 ‘빨간 구두’를 읽어주시겠습니까? 저라면 그렇지 않겠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우리 시대에 맞는 도덕과 철학이 있습니다. 죄를 조금 지었다고 해서 다짜고짜 다리를 자르고 잘린 다리에게 조롱을 당하는 이런 극도로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는 설령 못된 짓을 일삼는 아이라 할지라도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네요.     



왜 하필이면 발이었을까?


안데르센은 다양한 작품에서 발과 다리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인어공주는 아름다운 목소리와 다리를 맞바꾸었고, ‘외다리 병정’은 쇳물이 부족해서 한쪽 다리를 얻지 못한 장난감 병정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눈의 여왕’에서 주인공인 게르다는 맨발로 눈밭에서 추위를 견뎌야 했고, ‘빵을 밟고 지나간 소녀’에서는 한 소녀가 자신의 구두가 더러워지는 것이 싫어 흙탕물에 빵을 던져놓고 밟고 건너가다 지옥으로 빠져버려 죽도록 고생을 하게 되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냥팔이 소녀’에서는 소녀의 차림새나 얼굴보다는 맨발을 통해 그녀가 겪고 있을 아픔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그가 발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데르센의 아버지 직업은 구두수선공이었습니다. 안데르센은 수선방을 겸한 있는 작은 집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대부분을 그곳에서 구두를 만들고 고치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죽은 뒤 만난 새아버지 역시 직업이 구두수선공이었으니, 그에게 있어 신발은 자연스럽게 젠더와 계급 그리고 아름다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의 자서전에는 신발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중 ‘발간 구두’의 이야기와 매우 흡사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세례식 때 주인공 카렌처럼 아버지께 새 구두를 선물 받는데, 구두를 너무나 자랑하고 싶어서 구두가 잘 보이도록 바지를 양말 속에 넣고 교회에 갔다고 합니다. 찬송가를 부를 때도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도 온통 신발에 신경이 쓰는 바람에 어느 곳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고 하네요.


학자들 사이에 안데르센이 발과 다리에 성적 페티시즘이 있었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그렇다고 단정 짓기엔 너무 멀리 간 것 같고요, 그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만나고 또 함께 해온 친숙한 소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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