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안팎의 풍경 둘러보기
가장 좋아하는 운동을 꼽으라면 역시 산책이다. 모든 곳을 걸어 다니며 현재를 생생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넋 놓고 걸을 때도 있지만, 운동이 되려면 조금 빠른 속도로 일정하게 걸어야 한다. 나에게는 30분이 마의 구간이다. 아 좀 힘들다, 싶어 스마트 워치를 보면 30분 언저리를 지난다. 그 뒤로도 조금 참고 걷다 보면 아무렇지 않게 걷게 된다. 러너들도 힘든 구간을 지나 무념무상 계속 달릴 수 있는 순간이 온다고 하는데, 러닝에서는 못 느껴보고 걷기에서 비슷한 순간을 겪는다.
애초에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운동과, 몸을 쓰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삶에서 걷기가 증폭된 시기는 미국 교환학생 때가 아닌가 싶다. 대중교통이 즐비한 한국과 달리 차가 없으면 이동에 제약이 있는 곳에서 예사로 걷고 또 걸었다. 목적지가 있었고 가는 길에 보이는 모든 것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 몸은 조금 힘들더라도 즐거웠다. 혼자 여행을 갔던 워싱턴에서도, 구글 맵을 보고도 길을 헤매던 나는 그냥 정처 없이 걸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사람이 보이면 길을 물어보고, 헤매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풍경을 즐기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걸었다. 지금도 여행을 가면 하루 2만 보 이상은 거뜬히 걷는다. 걸어서 나만의 풍경을 발견할 때 쓱싹쓱싹 마음에 깊게 그려지는 것이 좋다.
걸으며 길을 잃게 되는 물리적인 경험과 달리 보이지 않는 마음의 길을 잃었을 때에도 걸었다. 길 잃는 것을 약간 즐기기까지 하는 여행 때와는 달리 마음의 길을 잃었을 때에는 많이 조급해하는 편이다. 인생 최대의 자유로움과 마음의 여유를 느끼고 귀국한 후 맞닥뜨린 4학년 취준생이라는 현실은 숨 막혔다. 전공 수업을 들으며 손으로는 바삐 필기하면서도 머리나 마음은 멍하니 무디게 고여있었다. 인생에 다시 적응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며 학교 한 바퀴를 걸었다. 무아지경으로 쳇바퀴를 타는 햄스터처럼 밤늦게까지 학교를 돌고 또 돌았다(기숙사에 살았기 때문에 학교를 걸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머리를 환기하고 몸을 움직이며 잡념이 소강되길 기다렸다. 가만히 누워서 걱정의 타래를 산사태처럼 굴려나가는 것보다 확실히 움직이는 것이 도움 되었다.
산책을 하면 그 순간의 공기와 교감하고, 그 시절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주위를 무심하게 지나치면서도 많은 광경을 보게 된다. 어딜 산책하느냐에 따라 다르고 내 상황에 따라 다르다. 정처 없이 걷고 싶다는 욕망은 날씨가 좋을 때도 마음이 힘들 때도 불쑥 찾아온다. 계절의 감촉과 향기만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나라는 존재는 없는 것처럼 투명하게 걷기도 하고, 어지럽고 육중한 마음에 구멍을 내어 쌀알처럼 흘려보내기 위해 걷기도 한다.
산책이라는 운동을 좋아하는 건 내 속도를 맞추며 현재와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마다 좋아하는 포인트는 저마다 다르게 느껴지지만 대체로 살을 빼거나 건강해지기 위함이라는 또렷한 목적의식은 갖지 않는다. 그래서 비교와 절망이 없는 좋아함만 남는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끈이 달린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러닝 벨트에 휴대폰을 넣고 자유로운 두 손을 휘저으며 걷는다. 모자 쓰기가 어려울 땐 초경량 양산을 써서 따가운 햇빛으로부터 나를 보호한다. 초경량 양산은 바람이 세게 불면 쉽게 뒤집어지는데, 뒤집힌 우산과 함께 펄럭거리는 나를 보면 친구들이 웃겨 하면서도 부끄러워한다. 혼자 걷고 함께 걷는다. 휴대폰을 보지 않는다. 그 순간이 그리듯이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