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을 시작하며
브런치를 찾지 않은지 300일이 넘었다는 알림이 왔다. 작년에는 박사논문 쓰느라고 브런치라는 존재는 내 뇌리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알림 문자를 보면서 몇 가지 감정이 일었다. 논문을 마무리하고 후속 행정처리를 하느라고 2023년을 맞는 순간에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했을 뿐.
이제 한 해 동안 전념하였던 논문과 서류 제출도 끝나고, 두툼한 하드커버의 논문을 손에 쥐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얻게 되었다. 나에게는 설 연휴인 지금이 제대로 된 한 해의 출발인 것이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도서관 현장을 떠나게 되었던 작년 1월에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이, 뒤늦게 시작한 공부를 마치는 것만이 유일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게 강의와 원고 청탁, 유튜브 출연과 프로젝트 참여 등으로 적당히 바쁘게 지냈다.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 일을 하면서 저녁시간과 휴일에는 논문에 집중하였다. 그렇잖아도 퇴직을 하면 인간관계가 10분의 1로 줄어든다는 말을 들었는데, 논문을 쓰느라 사람들과 거의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덕분에 적당히 바쁘면서도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이 나름대로 좋았다.
그 사이 도서관 현장은 도서관법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작은도서관 등록 문제로 시끄러웠고, 시행령 제정 후에는 공공도서관 사서 배치 문제로 '개악'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원래 2021년 전부개정된 도서관법은 도서관의 양적성장에서 질적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법 개정의 취지였는데,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 불과 며칠 전에는 서울시의 작은도서관 지원 중단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후속 보도는 서울시장의 격노와 함께 추경에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떠나 온 곳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
도서관 현장을 떠났지만, 그 세계와 단절된 삶을 살기란 무척 힘든 것 같다. 우선 대학에 강의를 나가니 정책이나 현장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회의나 특강을 요청하는 곳이 있으니 더욱 그렇다. 그래서 2023년에는 도서관 정책이나 현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활동이 있다면 참여해 보려고 한다. 조직의 틀을 벗어나 자유를 얻은 사람이니 그만큼의 쓸모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게으르지도, 애써 부지런하지도 않은 삶을 영위하고 싶다. 젊을 때는 '안되면 되게 하라' 정신을 실천하느라 에너지를 필요 이상으로 쓰고, 사람들과 갈등도 겪었다. 부질없던 짓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랬기 때문에 반발짝이라도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 삶이야 그렇게 할 필요도 없고, 그럴 일도 없다. 책 읽고 공부하고, 강의하고 애정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브런치에 일상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지루할 틈이 없을 것 같다. 대충, 적당하게 살리라.
2023년에는 매년 세우던 계획 같은 건 없다. 그냥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평범한 내일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