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게으른 자의 개인 반성 일기
아무래도 시간에 로켓이 달린 것 같다. 벌써 한해의 절반이 지났다니. 나이 들수록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는 생각과 자료를 정리하여 이곳에 남기고 싶었는데, 도서관 현장을 떠나고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만 앞서는 한낱 게으름뱅이에 불과한 나를 발견한다. 그래도 뭘 했는지 정리는 해봐야겠다. 남은 6개월의 삶을 위해서.
이른바 기한이 정해진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5년을 지냈기 때문에, 임기가 1년 남짓 남았을 즈음 일하던 도서관을 떠나면 무엇을 할까 하는 고민이 간혹 들었었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고 금전 같은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고자 했던 것도 아니다. 내가 걱정했던 것은 일을 놓게 되었을 때 느낄 공허함과 상실감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였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뒤늦게 공공정책학을 공부한 것이다. 물론 수료만 했던 문헌정보학 박사과정을 마무리할 수도 있었으나 행정 구조 안에서 느꼈던 현실과 한계가 공공정책 공부를 선택하게 했다. 덕분에 2022년부터 올해 초까지는 논문을 쓰고 통과 후 박사학위 관련 행정처리를 하느라 일할 때보다 더 바쁘게 지냈다. 활동하던 것을 접고 서서히 정리할 나이에 낯선 분야 공부를 하자니 여간 고된 것이 아니었지만 끝나니 보람은 있었다. 그래서 상반기 결산에서 논문 통과와 박사학위 취득을 첫 번째 성과로 꼽고 싶다.
상반기 결산의 두 번째 내용은 학교 강의와 특강 등이다. 3월부터 6월까지 몇 개의 학교와 기관에서 열심히 강의와 특강을 했다. 강의의 이점은 가르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 특히 요즘처럼 급변하는 사회환경에서는 한 학기만 지나도 달라지는 것이 많아서 평소에 강의를 위해 자료를 읽고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학교에서 강의할 때는 이론과 현장의 경험을 접목하여 직업으로서의 사서에 대해 생각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려고 한다. 강의실에서 눈을 반짝이는 학생들이 좋은 품질의 재목으로 자라서 훌륭한 사서가 된다면 그 얼마나 보람된 '업'일까 싶다. 그래서 논문과 함께 학교 강의는 나를 '공부하는 삶'으로 이끌었다. 젊을 땐 놀고, 나이 들어 공부하니! 인생 참 철없이 산다.
세 번째는 옛사람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용무가 있어서 만나는 사람은 지인이고, 일이 없어도 만나는 사람은 친구라는 말이 있다. 도서관에서 일로 만난 사람들과는 이제 대부분 만날 일이 드물다. 그럼에도 먼저 연락해서 얼굴 보자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이야말로 일하면서 얻은 귀한 인연들이다. 또 하나, 예전 직장에서 다시 일을 하니 옛사람들과 연락이 되어 다시 얼굴 보는 일도 종종 있다. 이제는 모두 흰머리와 주름진 얼굴이지만 눈빛만큼은 변치 않은 그들과 젊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도서관에서 일할 때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바쁜 일상이었다. 작년에는 신문사 일을 하면서 강의하고, 논문 쓰느라 한시도 여유가 없었지만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조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며 절대 무리한 일을 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실감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어떤 제안이 들어왔지만 과감하게 거절했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고, 해야 하는 것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판단하는 것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 물론 아직도 하기 껄끄러운 일을 해야 하는 상황도 생겨나고, 어쩔 수 없이 끌려가기도 한다. 그래도 이 정도의 삶이라면 만족스럽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만족스러운 결산이고, 이제는 치열한 반성을 할 때다.
논문을 세상에 내놓아 뿌듯하기도 하지만 아쉬움의 첫 번째도 논문이 아닐까 싶다. 올해는 도서관법이 제정된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의 공공도서관 정책환경과 법제 변동을 주제로 논문을 쓰면서, 도서관법의 변천을 다루었기 때문에 이를 정리하여 단행본으로 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이연옥 교수의 '공공도서관 운동사'도 본인의 박사논문을 단행본으로 내었기 때문에 후배들이 역사적 '기록'을 읽고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부족하지만 '공공도서관 법제의 변화'를 기록 측면에서 남기고 싶었다. 그러나 학교 강의와 특강, 발표 외에 연구용역에 참여하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아직 6개월의 시간이 있으니 일단 노트북을 열어볼까?
그와 함께 그동안 몸담았던 도서관계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활동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를 고민했었다. 그 결과가 책을 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역사가 사회의 역사라는 점에서 지역사회에서 활동했던 구립도서관 관장의 경험과 서울시 도서관 정책을 고민했던 광역대표도서관장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시민들에게는 도서관을 더 잘 알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일상의 분주함에 밀려 조금도 실행하지 못하였다. 남들은 어떻게 그렇게 책을 펴낼 수 있는지 참 부럽다. 평소 자료 정리를 조금씩 해두었으면 시작하기가 어렵지 않았을 텐데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 반성은 지금까지 이끌어주신 주변의 어른, 선배님과 동료를 제대로 찾아뵙지 못한 것이다. 살갑지 못하고 무심한 내 성격과 게으름의 결과이다. 찾아뵈어야 할 분들을 기억만 할 뿐 실행에 옮기지 못하여 하루하루 죄송한 마음만 더하고 있다. 당장 전화라도 드리자.
올해 도서관계는 사건 사고가 많았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국가위원회와 국립중앙도서관은 수장도 없으니 정책이 있을 수 없다. 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료들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미안하다. 그러나 지금의 어려움이 빠른 시간 안에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어려운 시기 견디고, 견디길 바라고 이런 시기일수록 미래를 준비하길 바란다.
내일이면 7월이다. 두 달 동안 계절학기 강의가 있다. 다음 주에는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발표도 해야 한다. 8월까지 두 달 동안 2학기 강의 준비도 해야 한다. 하반기에는 그간 미진했던 일을 실행하고, 기대되는 일도 기다리고 있다. 브런치에 올릴 글도 준비하고! 써놓고 보니 할 일이 태산이다. 그래도 바쁜 티 내지 않고, 시간을 알뜰히 쓰면서 즐겁게 달려보련다.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