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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rian Pia Jul 14. 2023

서울시는 공공도서관에 어떤 비전을 갖고 있나

- 권역별 도서관 건립 국회토론회 후기

어느 날 한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전화를 받았다. 국회에서 서울시 권역별 도서관 건립과 관련한 토론회를 준비한다는 것이다. 2018년 5월에 발표한 [지식문화도시, 서울을 위한 제2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에 권역별로 주제특화 도서관 건립 과제가 들어가게 된 배경부터 추진과정까지 설명을 해달라는 거다. 처음 계획대로 진행이 잘 되지 않는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공동으로 토론회를 개최함으로써 서울시에 도서관 건립을 촉구하기 위해서 토론회를 추진하겠다고 하였다.  나 역시 2019년 8월과 12월에 대시민 발표를 한 도서관 사업이 당초 기획과 다르게 진행되는 것이 마땅치 않았던 터라 토론회에 약간의 기대감을 갖게 되었고, 결국 가장 내용을 잘 아는 전 관장이 발제를 하자고 결론이 났다.  


나는 서울시의 현 상황을 비판하기보다 도서관정책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대도시의 공공도서관 시스템을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했고, 공부한 내용을 보여주고 함께 한 사람들과 공감대를 갖고 싶었다.  때문에 내가 발표한 주 내용은 뉴욕, 런던, 파리, 토론토와 동경의 도서관 정책과 서비스 체계가 어떠한지를 설명하였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은 지방자치단체 고유사무이나 중앙집권적 정책과 지역사회 관심의 공공도서관 서비스를 고민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광역과 기초 지방자치단체의 계층적 구조로, 광역의 역할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지방자치법의 한계를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도서관법이 제정된 지 60년에 불과하고, 실효성 있는 법은 2006년에나 가능했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개별 도서관 체제로 발전해 왔다. 1995년 선출직 단체장이 탄생하면서 1998년 무렵부터 자치구에 공공도서관이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2006년에 전부 개정된 법에 대표도서관 제도가 등장하였으나 20년이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법적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광역시도가 한 군데도 없다.

서울의 공공도서관은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자치구 소속 5개 공공도서관을 제외하고 모두 위탁운영하고 있어 수탁주체의 다양성, 조직구조의 상이, 비정규직의 높은 비중과 함께 60% 가까운 도서관이 1,500평방미터인 협소한 공간은 장서와 서비스에 한계를 가져와 서울시민의 도서관 만족도를 저하하는 큰 요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도서관인 서울도서관이 정책적으로 견인할 수 없는 것은 지방자치법 상에 광역의 권한이 부재하고, 도서관법에 명시된 대표도서관 역할은 시책 수립과 지원, 협력 및 조사 연구 등에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는 서울도서관 한 개관만 있어 정책을 만들어도 그것을 실행할 손발이 없는 기형적인 구조였기 때문에 외국의 도서관 선진국의 대도시(Metropolitan) 도서관 시스템은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는지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 관점이 아닌, 도시 관점에서 도시민들의 삶에 도서관 서비스가 어떻게 스며드는지 공부하면서 나름대로의 답을 찾게 되었다.

여러 도시 중에서 특히 집중해서 본 곳이 미국의 뉴욕이다. 뉴욕은 미국의 수도는 아니지만, 인구 850만 명의 세계적인 금융도시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뉴욕공공도서관(NYPL)은 뉴욕의 3개 구를 관할하는 하나의 도서관시스템이며, 퀸즈와 브루클린 도서관시스템이 더 있다. 이 세 개의 도서관 시스템이 뉴욕시민을 넘어 전 세계 시민에게 사랑받고, 미국인의 자부심이 되는 공공도서관인 것이다.

2012년에 처음 미국 도서관을 둘러볼 때에는 여러 지역을 거치는 바람에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이후 틈틈이 자료와 홈페이지를 통해  뉴욕시의 도서관을 이해해 갔다. 2019년 8월 권역별 도서관 건립을 시민들께 발표하고 나서 서울시에서 도서관 직원들과 함께 단기연수를 보내준 덕분에 일주일 넘게 뉴욕에 머물게 되었다.  매일 이곳저곳, 가본 곳을 또 가며 하나라도 더 배워오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뉴욕의 4개 주제연구도서관과 같은 도서관을 서울시가 만들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자치구 도서관의 한계를 극복하고, 서울시의 공공도서관 정책을 실현하는 한편보다 전문적인 정보서비스를 원하는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2020년 책과 도서관을 한없이 사랑하던 시장님이 돌아가시고 2021년 12월에 내 임기도 끝났다. 항해를 주도할  선장과 항해사가 교체되니 이미 정해진 정책추진에도 변화가 왔다. 도서관의 주제특화는 사라지고, 일반 공공도서관 또는 복합공간을 짓는다는 얘기가 들려올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 도서관은 자치구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고, 시립도서관과 자치구 도서관의 서비스가 중첩되고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기 뻔하기 때문이다. 이미 교육청 도서관과 기초 지자체 공공도서관과의 행정체계 이원화로 시민들이 공공도서관을 제대로 향유할 수 없는 구조인데, 서울시가 개선은 커녕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한 번의 토론회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토론회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권역별 주제특화 도서관이 단순히 뉴욕이나 다른 외국 도시의 겉모습을 따르려고 한 것이 아니라, 깊은 고민에서 도출된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이해해 주면 좋겠다. 

나는 발표 마지막에 미국 워싱톤 DC가 2006년에 기존 13개 공공도서관에 13 개관을 더 신축하는 블루리본 프로젝트를 소개하였다. 그 프로젝트가 "워싱턴 DC가 자유국가의 수도라면, 그에 걸맞은 지구상의 그 어떤 도서관보다 뛰어난 도서관이 필요하다"라는 취지에서 출발하였으며, 2008년 리먼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이 계획대로 건립되었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2011년  DC의 메인 도서관인 Martin Luther Jr. Memorial Library의 혁신안 보고서의 질문도 소개하였다. 그것은 "How can this library transform your world?"  이 도서관은 당신의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도서관은 얼마나 멋진가. 그래서 물었다.  서울시는 도서관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갖고 있으며, 시민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말이다.  누가 답을 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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