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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rian Pia Feb 07. 2021

박완서 선생을 그리며

읽고, 쓰고 본 것들의 기록

 지난 1월 22일은 박완서 선생의 타계 1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나는 예전에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는 공공도서관에 근무한 인연으로, 박완서 선생의 작품을 다시 읽게 되었다. 선생께서 개풍군에서 서울로 이사와 처음 살게 된 곳이 현저동으로 작품들을 유념해서 읽어보면 지금의 현저동이 아닌, 길 건너 무악동 근처에 사시지 않았을까 추측되지만 아무튼 현저동을 무대로 한 선생의 작품을 읽으며 내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곤 했었다. 

 타계 10주기를 맞아 출판사들은 다투어 타계 10주기 기념 컬렉션을 펴내고 있다. 나는 이미 여러 권의 책을 갖고 있지만, 예쁘게 다시 탄생한 기념 컬렉션을 사모으고 있다. 책의 활자는 커지고, 표지는 너무 세련되고 사랑스러운 책이다.  특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1993년, 2003년 그리고 2021년판을 나란히 놓아보니 당시의 출판 인쇄 환경을 서지학적 측면에서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 나온 기념 컬렉션은 아니지만, 선생의 개인적인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박완서의 말](마음산책, 2018)을 읽어보았다.  이 책은 1990년부터 1998년까지 고정희 시인, 문학평론가 정효구, 김경수, 황도경 그리고 소설과 공지영과 여성학자 오숙희 선생 등과  인터뷰한 7편의 내용을 따님인 호원숙 작가께서 역은 것으로 문학작품과 사회, 개인사까지 풍성하게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특히 피천득 선생까지 대화 상대로 나선 부분이 있어 작가와 개인의 경험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인터뷰에는 등단 작품인 [나목]에 대한 언급이 많다. 작품은 한국전쟁 중 서울이 수복된 진후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데, 미군 부대 안의 초상화 가게에서 주인공과 화가가 만나고 헤어지는 사연을 그리고 있다. 작품 속 화가는 박수근 선생이 모델이신데, 박완서 선생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미군 PX 내 초상화 가게에서 일하던 시절에 그곳에서 초상화를 그리던 박수근 선생을 만나 위로를 받으셨다고 한다. 박완서 선생께서는 후일 천재화가 박수근 선생의 불행한 삶을 증언하고 싶은 마음에서 논픽션으로 글을 시작하였으나 잘 써지지 않아 소설로 전환하고, 본인 관점에서 자유롭게 써 내려갔다고 한다. 작품의 제목이 주는 의미는 주인공인 화가 옥희도가 그린 나무들이 늙은 고목이 아니라, 벌거벗은 나목으로 작품 속 주인공들이 1950년대의 황량하고 메마른 겨울을 견디면서 내면의 희망을 키우고, 삶의 좌절을 이겨나가는 모습을 나목에 비유한 것이다. 박완서 선생은 박수근 선생의 유작 전시를 보러 가셨다가 그가 나무를 많이 그린 사실을 알게 되어서 소설을 구상하였으며, 여주인공에게 본인을 많이 투사하였다. 선생의 식구들 중에서 남자들이 죽고 여자들은 살아남은 사실 등을 바탕으로 자기애가 강한 여주인공의 자기 각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박완서의 말]에 수록된 7편의 인터뷰 중에는 작품의 성격을 두고 페미니스트 작가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선생은 단호하게 본인은 "이념이 먼저인 작가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는 사회가 싫은 것이다"라고 밝히셨다. 억지로 무슨 주의를 붙이자면 그냥 개인주의자이며, 자유민주주의자라고 하였는데 그래서 이 책의 부제를 '소박한 개인주의자의 인터뷰'라고 붙인 것 같기도 하다.  책의 89쪽을 보면 "자기가 이 사회에 필요한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면 항상 떳떳할 필요가 있고, 자기 일을 남에게 존중받고 싶고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것만큼 남에게 대접하는 게 옳고, 남에게 당하기 싫으면 남한테 그러지 않는다는 아주 기본적인 평등 개념을 가졌다. 내가 중하니까 남도 중한 거지. 전체를 위해서 나 개인을 희생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런 소박한 민주주의 개념으로 남자와 여자 사이라고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도의 생각을 한다"라고 하셨다. 선생은 거창한 이념을 설파하기보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소박한 진실을 글로 풀어내었기 때문에 여러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고 본다.

  책 말미에는 피천득 서생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나온다.  두 분은 먹는 것과 입는 것, 그리고 돈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는데, 피천득 선생이 "돈을 많이 벌면 돈의 노예가 될 것 같아요" 하니 박완서 선생께서 "정말 그래요, 인생에 귀하고 좋은 게 얼마나 좋은 게 차고 넘치는지 그런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아요"라고 대거리하시고, 늙어서도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명랑한 사람으로 살고, 즐겁게 소중한 일 하나라고 더 하고 살자는 등 뭔가 거창할 대화를 할 것 같은 문학계의 두 거장은 예상외로 소박한 삶, 욕심 없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이란 존재는 부재 속에서도 존재한다"

 책 말미에 나오는 선생의 말씀이다. 이 말씀처럼 선생이 떠나신 지 1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선생은 작품으로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 같다. 핍박하고, 신산한 현실에서 선생의 책을 통하여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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