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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 Jul 28. 2022

세상엔 얼마나 많은 내여미들이 있을까?

day 2 캣맘일지

3년 이상 거의 매일 밥을 먹으러 왔던 얼룩무늬 길고양이.

지난겨울을 마지막으로 만나지 못했고, 너를 위해 두었던 불린 사료 밥그릇을 오늘 치웠다.


너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이 난다. 담벼락에 네 발을 디디고 서 있었다. 날카롭게 보이는 눈초리와 그와 달리 여기저기 털이 뭉쳐 푸석푸석해 보이는 털, 한눈에 봐도 뼈가 어디 있는지 보일 만큼 말랐던 몸. 도망도 가지 않고 한참이나 내 눈을 바라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길 싫어하는 사람인지, 맛있는 거 하나 던져줄 사람인지. 


한눈에 봐도 아파 보였던 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렇게 고통스럽다는 구내염을 앓고 있는 듯했고, 귀가 커팅되어 있는 걸 보니 중성화도 되어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돌봤던 캣맘이 있다는 말인데 저 상태인걸 보면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다가가 캔 하나를 따 주었다. 경계하는 것도 잊을 정도로 굶었던 것인지, 입이 아파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것인지. 코를 박고 캔 하나를 다 먹을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순식간에 다 먹어치우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지던 너의 뒷모습이 더 서글펐다. 그거 하나로 배가 부를 리가 없는데. 더 달라는 표현도 하지 못했다.


그 뒤로 우리는 처음 만난 담벼락 근처에서 거의 매일을 만났다. 매일을 오는 주도 있었고, 일주일 정도 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만날 때는 캔을 주었고, 아침 저녁으로 씹기 좋게 불린 사료를 두었다. 어느 정도 서로에게 익숙해졌을 때 밥에 구내염 약을 타서 주기 시작했다. 약을 먹더니 겉모습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어느 정도 뭉친 털도 사라지고, 살도 꽤나 오동통하게 오르고, 먹으면서 입을 털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내딛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전엔 터벅터벅 걸어가더니 통증이 좀 사라지고 나서부터는 경쾌한 총총걸음이었다.


날씨가 서늘해지며 초겨울이 왔을 무렵. 구내염은 잘 관리되고 있는 듯했고 며칠을 캔이 지겨운지 다 먹지 않고 남기길래 다른 캔을 사 줘봐야겠다 마음먹었었다. 너를 본 마지막 날, 캔 냄새만 맡고 오도카니 앉아 있더니 몇 입 먹지도 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총총 몇 발자국 걸어가 아스팔트 바닥에 몸을 비비며 뒹굴거렸다. 평상시엔 컨디션이 좋을 때, 캔을 다 먹고 나서 하는 행동이었다. 다음 날 나타나지 않기에 하루 결석하려나 싶었고, 그게 일주일, 한 달을 지나 계절이 바뀌었다. 


이렇게 나타나지 않을 아이가 아닌데. 행복 회로를 돌려 누군가 내가 주는 밥보다 더 맛있는 밥을 주기 시작해서 오지 않는 것인지, 더 좋게 생각하면 누군가 구조를 해서 돌보고 있는 것은 아닐지. 혹은 사고를 당해 자신이 죽는다는 인식도 하지 못한 채 눈을 감은 것인지, 스스로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고 곡기를 끊고 어느 구석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어 간 것은 아닌지. 


그래도 한 번은 보지 않을까 싶어 너를 위한 불린 사료를 아침저녁으로 계속 두었다가, 이제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을 알고 그릇을 치웠다. 그릇을 치우면서도 한참 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딘가에서 네가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내게 너의 모습은 그 생을 다 산 것 같은 눈빛이 아니라, 총총거리며 걷던 뒷모습으로 기억된다. 아파도 살아있으니 힘껏 먹고, 그 한 끼에 만족스러움을 표현하던 너.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 내여미들이 있을까? 그리고 그들을 정성껏 돌보면서도 자신의 능력 없음을 탓하는 캣맘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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