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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ux Dec 30. 2023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저 사람은 마녀입니다

 ‘마녀사냥’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정의하면 해당 단어는 12세기 무렵부터 유럽에서 기독교를 명분 삼아 대량으로 자행한 학살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로 인한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당연히 마녀로 몰린 여성들이었으나 기실 학살은 남녀노소는 물론 신분 고하를 따지지 않고 벌어졌습니다. 마녀사냥은 대략 중세 무렵 출현하기 시작하여 18세기쯤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본다는데요. 시초는 마녀에 대한 기독교의 부정적인 인식을 이용한 가해자 처벌이었으나, 점차 부정한 재산 축적과 정적 제거, 무수한 재앙들로 인한 피지배층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공포 조장을 통한 사회통제 강화, 개인적인 원한이나 경쟁자 제거 등을 합법화한 사업이 되었습니다. 누구든 마녀라고 자백만 하면 규정에 따라 그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었으므로, 마녀 혐의로 기소된 이들은 무죄 판정을 받은 경우가 거의 없었으며 하나같이 혹독한 고문 끝에 자백을 하거나 죽었습니다. 이렇게 죽은 이들의 재산은 몰수되어 영주·주교·이단심문관 등이 배분하였기 때문에 마녀사냥은 수지맞는 장사였던 겁니다. 


 인권 의식이 없던 당시에 공개 고문과 처형은 관중들의 재미있는 구경거리였고,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이 서로 죽이거나 맹수의 밥이 되는 걸 즐겨 본 로마인들처럼 중세인들은 마녀사냥으로 인한 희생자의 괴로움과 가해자의 잔인한 행각들을 즐기고 환호하였습니다. 오죽하면 심리학에서 마녀사냥을 집단 히스테리의 산물로 보고 있을까요. 고위인사도 드물게 기소되었다지만 피해자의 대다수는 유럽 사회의 하층 여성이었습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우둔하고 변덕스러우며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성차별적 사회 풍조도 한 몫을 하여, 통계에 의하면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지역은 희생자의 80%가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지역에 따라 남자들도 사탄의 제자 혹은 하수인, 마귀 등으로 불리며 희생된 경우도 적잖게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녀사냥’이란 단어가 합당한 표현이 아니라 여겨 ‘마녀 및 마귀사냥’으로 번역한 책들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피고인의 92%가 남성이었고, 에스토니아에서는 60%, 모스크바에서는 피고인의 3분의 2가 남성이었다지요.


 현대에 들어와 해당 단어는 사회의 불특정 다수가 한 사람 혹은 소수를 거세게 몰아붙이는 행위를 일컫고, 마녀재판이라고도 합니다. 개인정보 유포죄와는 엄연히 다른 개념으로, 개인정보 유포죄가 상대방의 사생활 등의 개인정보를 외부로 유포하는 행위에만 국한된다면, 마녀사냥은 인민재판처럼 허위 사실을 퍼뜨리거나 혹은 사소한 잘못을 크게 부각시켜 소수의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는 행위입니다. 이는 오프라인에서뿐 아니라 특정 인터넷 사이트 및 SNS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일이며, 사실상 현대 마녀사냥의 대부분을 SNS가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일단 SNS에서 누군가 표적을 정해 비난을 하기 시작하면, 표적이 된 이가 결백하거나 그가 용인될 만한 수준의 잘못만을 저지른 상황이라도 다수의 사람이 표적에게 달려들어 거칠게 몰아붙이고 맹렬하게 인신공격과 신상털이를 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때로 이런 공격을 당한 표적이 심각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후 표적의 억울함이 알려지더라도 정작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는 사회의 윤리성을 점점 더 크게 손상시키고 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 교육대학원의 스탠퍼드역사교육그룹(SHEG)은 2019년 미국 14개 주에서 3446명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온라인 정보 평가 능력을 테스트한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연구원들은 학생들에게 이산화탄소의 환경 파괴에 관련된 정보가 담긴 웹사이트를 보여주고, 해당 정보의 신뢰도는 온라인 검색으로 알아볼 수 있다고 일러주었습니다. 화석연료 회사에서 자금 지원을 받은 단체가 회사에 유리한 정보를 퍼뜨리기 위해 이 사이트를 운영한다는 걸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알 수 있지만, 학생의 96%는 이를 따져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연구원들은 투표소 직원들이 투표용지를 쓰레기통에 넣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린 후 2016년 미국 민주당 예비선거 당시 모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학생의 52%는 이 영상이 미국 부정 선거의 증거라 믿었지만, 기실 이는 러시아에서 찍힌 가짜였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 학생들이 잘못된 정보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는 결과들입니다. 영국 의회와 리터러시재단이 비슷한 연구 끝에 2018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어린이 5명 중 1명이 온라인에서 읽은 것을 모두 사실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초등학생 중 뉴스와 가짜뉴스를 구분할 수 있는 학생은 3.1%에 불과했고요.


 현대의 젊은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전자기기와 더불어 살아가지만, 진실을 구분하는 능력까지 갖고 태어난 건 아니므로 후천적 교육에 의해 이를 길러야 하는 처지입니다. 가짜뉴스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미디어가 제공하는 메시지를 분석·평가하는 역량을 키우기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장 이후 가짜뉴스 논란이 거세진 미국에서는 뉴저지·캘리포니아주 등이 유치원부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의무화했습니다. 학교뿐 아니라 부모를 위한 가이드라인도 제공된다고 하지요. 전미미디어리터러시교육협회는 아이들이 온라인상에서 정보를 접할 때 누가 만든 것인지, 누가 돈을 냈는지, 이 정보로 얻는 이익은 무엇인지, 누가 피해를 보는지, 다른 사람은 이 메시지를 어떻게 다르게 이해할 수 있을지 등을 떠올려보도록 지도할 것을 권합니다. 자녀와 뉴스를 공유하고 뉴스의 출처를 찾아보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유튜브나 틱톡에서 봤어요”가 아니라 “뉴욕타임스에서 읽었어요”라고 대답하게 하는 식이지요. 


 대한민국 정부도 허위 정보 예방수칙으로 3권(사실과 의견 구분, 비판적 사고, 공유 전 한 번 더 생각하기)·3행(출처·작성자·근거 확인, 공신력 있는 정보 찾기, 사실 여부 재확인)·3금(한쪽 입장만 수용, 자극적 정보에 동요, 허위 정보 생산·공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지켜도 학생들은 거짓 정보를 어느 정도 가려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SHEG는 훈련된 교사에게서 1시간씩 6차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출처 신뢰성 판단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는 연구 결과를 2021년 내놓기도 했습니다.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의 저자인 제랄드 브로네르 프랑스 디드로대 교수는 ‘목소리가 큰 인터넷 권력자들의 인터넷 지배 현상을 볼 때, 과연 인터넷이 민주주의의 장인지 의문’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적 면역체계를 갖춰야 하고, 면역력을 갖추도록 가르치는 것이 오늘날 교육의 가장 큰 과제’라고 강조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 개의 가짜뉴스에 대한 팩트체크를 하는 동안 열 개 이상의 가짜뉴스가 만들어지고 있고, 딥페이크 등 기술의 발달로 가짜뉴스 가려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까닭입니다. 가짜뉴스를 수익형 사업모델로 삼는 1인 미디어도 갈수록 늘고 있고요. 


 제가 보이스피싱을 당한 이후 저를 취재하여 단독 기사를 내신 기자님이 계셨습니다. 우연과 필연이 겹쳐 해당 기사는 당일 포털 사이트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탑뉴스가 되었습니다. 미리 기자님께 무슨 요일에 기사가 나갈거다란 소식을 들어 알았음에도, 저 또한 당일 아침 무심코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제 기사가 떡하니 걸린 걸 보고 놀랐고, 그날 점심에 제 옆에 앉은 직장 동료가 제 기사 이야기를 꺼낼 만큼 온종일 그 기사는 화제였습니다. 이후 몇 년이 지나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기억만 하던 상태에서 엊그제 온라인 검색을 하다가 제 사례를 대표적인 사기 피해 사례로 소개하는 어느 검사님의 인터뷰 내용을 읽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보이스피싱 수법을 자세하게 풀어 단독으로 기사를 내는 경우도 흔치 않고, 정치 기사가 아닌 경제 기사가 탑뉴스를 차지하는 경우도 흔치 않은데, 그걸 또 고스란히 담아 두었다가 사기 예방교육 자료로 쓰는 분이 계시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해당 검사님이 얼마 전 사기 예방교육 도서를 발간하셨다는 걸 알고 도서를 구매했는데, 그 도서에도 제 사례가 소개되어 있었고 놀랍게도 그분은 이미 TV 유명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등장했을 때조차 제 사례를 소개하신 적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온갖 집단의 얽히고 설킨 영향 끝에 ‘기막힌 사연’을 갖게 된 사람이며, 기자님을 직접 뵙고 인터뷰하고 각종 증빙자료 등을 전송하여 기사 작성 작업을 도왔습니다. 즉 기사 내용 전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입니다. 저의 사례를 사기 예방교육 자료로 쓰시는 검사님께서도 저의 사연과 기사를 진실이라고 믿고 여러 매체에서 인용하셨을 겁니다. 그 점만으로도 저는 저의 고통과 슬픔에 어쩐지 그분이 공감해주신 듯해 감사하고, 저의 사례를 접한 누군가가 사기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헌데 만약, 저를 속인 피싱범들처럼 제가 사기꾼이었다면 어떨까요. 저의 인터뷰 내용과 각종 증빙자료 자체가 전부 조작된 거짓이고, 저는 알려진 바와 다른 직업을 가졌으며, 어떠한 종류의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기자님과 접촉하여 기사를 냈다면요. 더구나 그 가짜 기사가 탑뉴스로 등극하여 다른 누군가에게 저서 및 강연 자료로 이용될 만큼 공신력을 가지게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중은 그러면 제게 손쉽게 속아 넘어가고, 그걸 진실로 믿으며, 몇 년이 지나도 그게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게 될 겁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가짜뉴스라는 존재가 몹시도 무섭습니다. 


 세상에는 예상 외로 이상한 짓을 저지르는 이들이 많은 듯합니다. 저를 다룬 기사가 탑뉴스였던 그날, 댓글을 보려고 재검색을 하여 기사를 찾았던 저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어떤 신문사의 기자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기사를 낸 걸 발견했었습니다. ‘○○일 만난 A씨’란 부분까지 같아서 기가 막혔습니다. 제가 언제 그 사람을 만났단 말인가요. 저는 이름있는 언론사의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요. 그리고 남의 인터뷰를 처음부터 끝까지 베껴 보도하면서 보란듯이 자신의 실명까지 내거는 건 무슨 뻔뻔한 짓일까요. 괘씸한 마음에 진짜 기사를 쓴 기자님께 가짜 기사 링크를 보내드렸습니다. 이런 경우가 다 있다고요. 기자님께서 말씀하시길, 1인 미디어나 이름없는 인터넷 신문사에서는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가끔 그렇게 탑뉴스를 따다 붙여 자신들의 이름으로 내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 뒤 기자님께선 사내 보안센터에 이 일을 제보하셨던 듯하고, 저는 저대로 누가 이렇게 베낄 만큼 나를 다룬 기사가 인기 있었구나, 하고 말았지만 다시 생각해보아도 참 황당한 일입니다.


 진짜 기사도 가짜로 둔갑하는 시대인 만큼, 가짜뉴스를 걸러낼 수 있는 비판적 사고력과 문해력 신장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소망을 이루려는 목적으로 제작하여 본질을 흐리는 가짜뉴스에 더 이상 속아서는 안 됩니다. 가해의 방식이나 펼쳐지는 양상은 사뭇 다르지만, 집단 히스테리란 점에서 과거의 마녀사냥과 유사성을 갖는 현대의 온라인 테러에도 휩쓸리지 않는 게 가장 좋습니다. 북한이나 러시아의 동태, 세계에서 가장 귀여운 동물, 지구에 실존했었다는 어마어마한 괴물 등을 다룬 영상이라면 유난히 잘도 믿는 혹은 믿고 싶어하는 아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꾸준한 밥상머리 교육이 필요하겠다 싶습니다. 성인인 저조차 김정은이나 푸틴의 건강 이상설 같은 소식을 접하면 솔깃해지는데 하물며 어린이들은 어떻겠습니까. 신문을 구독하던 시절엔 NIE(News In Education) 교육이 한창 유행했었는데,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가짜뉴스 판별 교육이 훨씬 긴요할 지도 모른다는 걸 또 한 번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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