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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ux Jan 26. 2024

Prologue

앉아서 대한민국 여행

 초등학교 4학년의 어느 날이었다. 토요일에도 학교를 나가던 시절이었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한창 꽃망울을 터뜨리던 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토요일 4교시 수업을 마치고 종례하러 오실 담임 선생님을 기다리며 내일은 학교를 안 나와도 된다고 좋아하던 친구들 사이에서, 나 혼자만 일요일이 오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겐 일요일에 뭘 해야 할 지에 대한 계획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고, 나는 그 무계획 상태가 몹시도 불편했다. 빈 일정을 어떻게든 채워야 하는데 아버지께서 일요일에도 출근을 하시는지 아닌지가 결정나지 않아 덩달아 내 일정마저도 미정이었다. 지금 와서 되짚어보면 그때 깨달았어야 했던 거였다. 내가 남들과 상당히 다른 인간이라는 사실을. 


 나는 끊임없이 계획을 만들어내고 변수가 생기면 그 계획을 변경하며 그럴 일을 대비하여 또 다른 선택지의 계획을 만들어낸다. 계획은 나에게 있어 삶의 일부이자 원동력이다. 계획을 세우면서 나는 새로운 정보를 발견하고 알게 되고 배우며, 그걸 통해 한층 더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아울러 태생적으로 바쁜 걸 좋아하고, 힘들어 죽겠다고 외치면서도 스스로가 창출해낸 그 힘듦에 희열을 느끼는 일종의 변태적인 습성을 지녔다. 계획 짜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온갖 여건들에 의해 그 계획이 어그러지고 망가지며 심지어 그 계획을 포기하고 새 계획을 짜야 하는 그 짜증나는 순간 자체조차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그는 진정한 계획러가 아니니까. 그렇다. 이것은 계획과 분주함을 사랑하는 어떤 관광통역안내사의 대한민국 탐방기이다.


 관광통역안내사는 직업명이 아니고 자격증의 이름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통역 분야의 유일한 국가공인자격증이 관광통역안내사이며, 나의 본업은 관광이나 통역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이므로 내가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보유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 특이한 일이다. 직업으로서 관광이나 통역과 관계된 일을 하는 이에게는 ‘여행안내원’이라는 정확한 직업명이 있다. 때로는 동일한 사람이 여행안내원 뿐 아니라 ‘여행상품개발자’나 ‘여행사무원’, ‘여행인솔자’의 일을 동시에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행안내원의 일은 안내다. 다만 그 안내를 외국인 관광객에게 하면 관광통역안내사라 하고, 내국인 관광객에게 하면 국내여행안내사가 되는 거다. 나는 둘 다 땄고 국외여행 인솔 자격도 갖춘 상태이지만, 내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자격증은 관광통역안내사이니 이걸로 이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보고자 한다.


 다시 말하지만 국내여행안내사나 국외여행인솔자는 내국인 관광객 대상이다. 나는 지금 내국인을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한국어로 한국인이 읽고 있는 글을 쓰면서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겠지만, 궁극적으로 나의 목표는 나의 글이 외국어로 번역되어 외국인 관광객에게 읽히게끔 하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장소와 사람의 이야기를 외국인 관광객에게 알리고 싶다. 사실 한국은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는 나라이며, 골목골목 눈여겨 볼 만한 장소와 그에 얽힌 이야기가 수없이 많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즐겨 들고 다니는 론○○○○ 등의 여행 책자나 그들이 즐겨 검색하는 트○○○○○○, 에○○○○ 체험 등을 살펴보면 한국의 피상적인 이미지만 담겨 있는 듯하여 참 아쉽다. 2000년대 초 서울 여행이라고 하면 동대문 야시장 가서 식사하고 보세 의류를 사는 게 필수였다. 요즘 서울 여행이라고 하면 한복 빌려입고 궁궐 가거나 광장시장 가서 빈대떡 먹으면 다 한 거다. 


사실 이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기는 하다.

 그나마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관심이 조금 있거나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이들은 K-메이크업, 김치 만들기, 수제도장이나 민화 제작 등의 체험을 할 수는 있겠지만 이 모든 체험에 ‘스토리텔링’이 빠져 있다는 게 정말 안타까운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스토리텔링까지 갖춘 체험은 DMZ 투어인데 대절버스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 하는 데다 신분증 검사도 까다롭고 예약도 쉽지 않아 선뜻 선택하기가 망설여질 것 같다. 그래서 꼬박 한국에서 살아온 내가 용기를 내어 스토리텔링 읽기 투어를 시작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패키지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십분 공감할 텐데, 여행안내원의 성격과 특징에 따라 여행은 사뭇 달라진다. 여행안내원들은 같은 장소도 서로 다르게 설명하고, 중점을 두는 부분도 다르며, 중요치 않다고 여겨 빼는 부분도 다르다. 나는 앞서 내가 계획과 분주함을 사랑한다고 나에 대한 정보를 드러낸 바 있다. 그러니 반대로 일탈과 느긋함을 즐기는 이에겐 나의 탐방기가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문학 흥미가 있다면, 직접 가보지는 않더라도 아 이런 곳이 있구나 하면서 대리여행을 하는 느낌 정도는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 그러면 거두절미하고, ‘앉아서 대한민국 여행’을 이제부터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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