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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정 Jul 16. 2019

상상에서 발견한 또 다른 현실

불가능이 없는 곳: 에릭 요한슨 사진전 관람기

우리는 누구나 상상을 하며 살아간다. 스스로 상상력, 혹은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나 또한 일상 속에서 작은 상상들을 한다. (지하철이 아파트 문 앞까지 오는 상상, 음식을 먹는데 맛만 느끼고 빠져나가는 상상, 과제 마감 시간이 다가올 때 잠시 온 세상이 멈추고 나만 움직이는 상상 같은...ㅎㅎ)


이런 상상을 현실 속에서 오래도록 느끼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한 작가가 그저 잠시 머리를 스치는 찰나의 순간과도 같은 상상을 현실 속, 눈 앞에 재현해 냈다. <에릭 요한슨 사진전: Impossible is Possible> 은 잠시 현실에서의 복잡한 생각을 멈추고 작가가 이끄는 상상 속 세상으로 나를 이끌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 유명세 답게 관람객도 매우 많았다. 많은 관람객에 비해 전시 공간이 협소하다는 아쉬움이 있으니 평일 오전에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에릭 요한슨은 자신의 작품에 설명 없이 제목만을 붙여 작품을 보는 개개인이 각자의 시각과 느낌으로 해석하기를 원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나도 오디오 가이드 없이 전시장 벽면에 적힌 설명을 따라가며 천천히 작품을 감상하고자 노력했다.


에릭 요한슨의 전시는 크게 4가지의 Room으로 구성되어 있다.


Room1. 어릴적 상상, 꿈꾸던 미래
Room2. 너만 몰랐던 비밀
Room3. 어젯밤 꿈
Room4. 조작된 풍경


모든 Room의 작품 하나하나가 놀라웠다.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작품 외에도 잠시 멈추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특별히 내가 조금 더 깊이, 오래도록 감상했던 작품 두 가지에 대한 솔직한 느낌을 남겨보고자 한다. (이어질 내용은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느낌과 감상평이다.)




Expectations, 2018


'Expectations', 우리는 많은 기대 속에 살아간다. 기대를 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기대를 받기도 하는데, 가운데 앉은 한 사람을 쳐다보는 수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저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받으며 '너무 부담되겠다. 다들 좀 비켜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부모님의 기대, 주변의 시선은 매우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물론 '기대'는 더욱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아직은 정말 나에게 잘 맞는 회사보다, 남들에게 잘 알려진, 연봉이 더 높은 회사를 찾게 되는 모습 속에서 '기대'가 언제나 긍정적인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런 생각을 하며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니, 뒤에 서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과 모두 같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고, 끝도 없이 서 있는 이 사람들 중에는 바닥을 바라보거나, 그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초점 없이 서 있는 사람들도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내가 외부로부터 받는 기대로 인해 느끼는 부담감과 조바심은 모두 나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게 아니었을까? 아무도 강요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리고 문득, 가운데 앉은 사람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 저런 무표정이 아닌 웃는 표정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작품의 제목을 'Cheering' 정도로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기대'라는 이름의 부담을 내려놓고 내 자신을 조금 더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응원해줘야 겠다.




Above all, 2019


'Above all', 이 그림은 보는 순간 이 곳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인상 깊었다. 에스컬레이터 밑에서 들려오는 시끄럽고 신나는 음악소리가 점점 멀어지다가 올리옴과 동시에 갑작스런 정적에 휩싸이는 기분. 생각만 해도 급 다운되는 순간이다. 심지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얼마나 허무할까. 그림 속 인물의 양 손에 들린 두둑한 쇼핑백들은 그 허무함을 채워주지 못하는 눈치이다.


일상 생활에서 이런 기분을 언제 느낄까 생각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왁자지껄한 삶을 살다가 혼자 남겨졌을 때, 세상의 지위와 명예를 바라보며 달려가는 화려한 삶 속에서 한 발짝 떨어지니 정작 그 속에 나 자신은 없는 것을 발견했을 때 등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모든 것 위에 남는 것은 무엇일지', '내가 인생에서 오르고 있는 에스컬레이터는 몇 층일지', '내 인생의 가장 마지막 층에 올랐을 때 그림과 같이 어둡고 쓸쓸하고 스산한 기분을 느끼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등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작품이다.




요즘 인생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인지 주로 조금은 어둡고, 생각이 많아지는 작품에 더 눈길이 갔지만,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작가의 귀엽고 대범한 상상에 피식하게 되는 순간도, 상상이 너무 현실같아서 조금 소름이 돋았던 순간도 있었다. 특히 미술 전시회는 가 보았지만 사진전은 처음이었던 나에게 에릭 요한슨의 전시는 사진에 대해 가졌던


'하나의 사진을 완성하는 일보다 그림을 완성하는 일이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사진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시작과 동시에 끝나는 작업이다.'
'사진은 과거를 포착해 기록하는 도구이다.'
'인터넷에서 보는 사진과 전시장에서 보는 사진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와 같은 편견들을 바뀌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셔터만 누르면 끝나는 게 저에겐 이상하게 느껴졌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끝이 아닌 시작이 되는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저는 저의 상상력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이미지를 채우고
우리가 사는 세계와 흡사하지만 조작되어 있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통하는 창문 같은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에릭 요한슨에게 '사진'은


'그림 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작품 하나하나가 대규모 프로젝트'였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시작되는 작업'이며,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 그리고 시간의 일직선상에 있을 수 없는 순간까지도 담아내는 수단이 아닌 목적의 가치'를 지녔고,

'직접 마주하고 바라볼수록 그 사진 속으로 빠져든다'


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뭐야, 그냥 포토샵 장인이네.'라고 하는 관람객도 있었다. (사람마다 취향과 시각, 이해도는 다르니까.) 하지만 에릭 요한슨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1년간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작품에 필요한 요소 하나 하나를 시점과 빛의 방향을 모두 고려해 각각 촬영하고, 150개가 넘는 레이어를 활용해 편집함으로써 현실이 아닌 것을 너무나도 현실같이 표현하는 과정을 본다면 단순히 합성을 잘 하는 사람으로만 기억하기 너무나도 아쉽고, 부족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간이 협소하여 여유롭게 집중해서 관람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굿즈샵에서 너무나도 잘 알려진 작품인 'Demand & Supply, 2017'(좌)과 'Full Moon Service, 2017'(우)을 클리어 파일로 데려왔다. 거대한 작품들 외에도 작품에 사용했던 소품이나 작가의 아이디어 노트, 작품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도 함께 준비되어 있으니 이 전시를 통해 나의 상상력과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를 제한시키는 유일한 것은 우리의 상상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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