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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정 Jul 16. 2019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예상치 못한 여정: 박서보 작가의 회고전 관람기

갑작스레 오전 약속과 오후 약속 사이에 4시간이 주어져 예상치 못하게 다녀온 박서보 작가의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 별 생각 없이 시간을 때우려고 방문한 국립현대미술관이었지만 계획하고 갔던 전시 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유익했다. 요즘 같이 더운 날씨에 한 숨 돌리고 갈 장소로 추천한다.






오디오 가이드 없이 브로셔 하나를 들고 전시장에 들어섰다. 요즘은 충분한 설명도 좋지만 전시관에서 나름대로 고민하고 인사이트를 얻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어서 전시장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잘 빌리지 않는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전시를 보면서, 혹은 전시를 다 보고 나서 찾아보며 곱씹어보며 새로운 매력을 느끼고자 한다.


박서보 작가님의 전시 설명에는 한국 현대 추상 미술 발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셨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처음 작가님의 작품을 접하고 든 생각은 여느 추상미술 작품을 접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게 뭐지...'


미술에 대해서 조예가 깊지 않은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추상미술'하면 떠오르는 온갖 색의 물감이 덕지덕지 겹쳐진 그림, 피카소의 그림처럼 형태의 왜곡이 주가 되는 그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큰 캔버스에 색 하나.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일정한 무늬의 연필자국이 물감을 긁으며 흔적을 남겼다. 이런 비슷해 보이는 그림만 몇십개가 늘어선 전시장의 모습과 그걸 처음 본 나의 모습...0.0



전시장에 붙은 설명을 통해 이내 이 그림들의 기법이 '묘법'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가졌던 의문들,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렸을까?' 에 대한 해답도 찾을 수 있었다.


... 어린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착안한 그의 연필 묘법은
쏟아지는 감정으로 그려낸 원형질 연작과 같이
새로운 무엇을 그려내야 한다는 의지가 아니라
체념과 포기에서 시작되는 비워내는 그림이다 ...

조금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그림이란, 또 미술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시각화 하는 것, 비어있는 캔버스나 공간을 채우는 것, 내가 느낀대로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비워내는 그림이라니.


그리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닌 포기에서 시작된 그림이라니 정말 신박했고, 놀라웠다. 누군가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해석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생각에 잠기게 하기에 충분했고, 아울러 그러고 나서 본 전시의 제목을 보니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작가의 작품은 회화로서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어디선가 들었던 말을 직접 체감했던 순간이었다.




박서보 작가의 이러한 묘법 작품은 '초기-중기-후기'로 나뉘었다. 중기 묘법시기의 작품은 재료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작가는 한지를 발라 마르기 전에 문지르고 밀어내며 반복적인 문양을 만들어냈다.



멀리서 보면 예쁜 벽지 같은 느낌이었고, 가까이서 보면 한지가 밀려 뭉친 자국들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올챙이들이 수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생각을 하셨을까? 이 시기는 무채색의 초기 연필 묘법에서 다시 색을 회복한 때라는 설명대로 온통 검정색인 작품부터 약간의 색을 가미한 작품들까지 초기의 미색을 벗어난 작품이 많이 보였다.




마지막 후기 묘법 시기 작품을 보며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며 작가님은 엄청난 고민과 시도를 하셨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색을 가미했다 한들 원색보다는 채도가 낮은 색 위주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던 중기 묘법 시기와 달리 후기 묘법 시기 작품은 확 변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 색채묘법이라고도 불리는 묘법의 후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작가는 한지를 손가락으로 직접 긁고 문지르는 대신
막대기나 자와 같은 도구를 이용하여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밀어냄으로써
화면에 길고 도드라진 선과 고랑처럼 파인 면들을 만들어낸다 ...

후기 묘법시기는 손을 쓰지 않았고, 화려한 색을 사용했다. 멀리서 보면 고랑과 튀어나온 선의 다른 두 가지 색이 섞인 색감이 들어오며 굉장히 촘촘한 줄무늬 옷을 보았을 때 시야가 왜곡되어 보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고, 가까이서 보면 줄무늬와 도드라진 원색의 색감이 조금 더 잘 드러난다.(바로 아래 사진처럼) 특히 아래 붉은색 작품은 작품 색도 강렬하지만 크기도 커서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의 시야를 확 사로잡고 있었는데, 나에게는 그림이 아니라 네온사인이 켜진 화면을 보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본래 이 전시는 작가의 작품을 최근 작품, 즉 후기부터 역순으로 전시해 두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전시장에서 이동하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반대로 관람했는데, 오히려 차근차근 묘법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았다.


최근 이런 저런 계기로 내가 미술에 대해 가진 편견과 선입견이 정말 많았구나를 느끼고 있었는데, 이 전시 역시 추상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깨준 전시로 남을 것 같다. 또한 처음 방문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내부의 전시장 공간이 정말 좋은 것 같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다. 박서보 작가님의 전시장 역시 넒은 공간과 채광이 잘 되는 천장 구조로 전시에 집중하기 좋았다.



한 장의 통합권으로 박서보 작가님의 전시 외 '아스거 욘'이라는 또 다른 추상표현주의 화가의 전시도 관람할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함께 관람하며 추상 미술에 대해 조금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기에 조심스럽게 추천한다. (여기 전시관도 공간이 참 특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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