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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정 Jul 16. 2019

호크니의 감각세계로 초대합니다

현실의 실제감 느끼기: 데이비드 호크니 전 관람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데이비드 호크니 전에 다녀왔다. 전시 종료를 한 달 남짓 남겨 둔 시점에서 다녀온 터라 사람에 치이지 않아 좋았으나, 그래도 여전히 정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전시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호크니전을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최근 하나의 주제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모임에 참여하였을 때, 호크니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 호크니는 아이처럼 그림을 그렸다.
아이처럼 그리는 것은 감각의 단계에 행위를 하는 것이다.
호크니는 시각 세계에 매료되었다.
예를 들어 꽃을 보고 꽃을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꽃을 보고 느낀 것을 감각의 단계에서 만나
점, 선, 면 등의 붓자국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

이 말을 듣고 아무리 보고, 생각해도 어렵고 모르겠는 추상미술의 존재에 대해 처음으로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형태와 표현 방식을 가득 담은 추상 미술을 어쩌면 우리가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려고 해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작가들은 이성이 아닌 감각적으로 대상을 느끼고, 느껴지는 그 순간을 그저 캔버스라는 매개에 옮겼을 뿐인데 말이다.


... 과거, 현재, 미래 중 과거와 미래는 몸(신체)이 필요 없다.
오직 현재에만 몸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오직 현재에만 존재하는 몸으로 느끼는 실재감도
함께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호크니와 같은 훌륭한 예술가들은 이러한 우리들에게 주변 세상을
보이는 것보다 더 흥미롭고 불가사의하게 만들어준다 ...

그래서 다녀왔다. 호크니가 감각적으로 바라본 그 세계와 내가 놓치고 있는 현재의 실제감을 몸으로 느끼고 싶었고, 감각의 단계에서 그린 그림을 나 역시 이성을 내려놓고 감각의 단계에서 감상해보고 싶었다.


전시장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 예전 같으면 예쁜 그림과 함께 사진을 찍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쉬워했겠지만, 전시를 보며 모두가 스마트폰 액정이 아닌 눈에 열심히 그림을 담고 있으니 자연스레 나도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2층과 3층, 3개 전시관에 걸쳐 준비된 호크니의 작품은 총 133점으로 매우 많았다.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이라고 하니 편한 신발은 필수!


호크니전의 작품을 천천히 쭉 관람하며 느낀 점은 그 분의 감각세계는 정말 어마어마할 것 같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작가들이 작품을 보면 '어, 누구 작품이다!' 하고 알 수 있는 고유의 화풍을 찾아 자신만의 느낌으로 작품세계를 채워 나가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호크니의 화풍은 한 두 개가 아닌 것 같았다. 일곱 섹션으로 나눠진 본 전시에서 섹션마다 다른 작가가 그린 듯한 화풍을 보여주고 있어 그 차이를 가만히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것이 호크니가 '존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가 아닐까?




또한 호크니 하면 빼먹을 수 없는 소재가 있다. 바로 '물'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첨벙>(1967), Acrylic on canvas, 242.5 x 243.9 cm


어두운 런던 날씨를 벗어나 로스엔젤레스에서 맞이한 강렬한 태양빛은 호크니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나 보다. 자택 내 수영장이 있는 이 곳에서 호크니는 대표 작품인 <더 큰 첨벙>(1967)을 탄생시킨다. 이 그림에서 호크니가 2주동안 공들여 그렸다는 물줄기는 평화로운 그림 속 정적을 깨고 엄청 큰 '첨벙' 소리가 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분명 그림 속에는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가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데이비드 호크니, <비>(1973), lithograph and screenprint, 99.1 x 80.3 cm


또 하나 멍하니 바라본 그림은 <비>(1973) 이다. 그리 크지 않은 캔버스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모습을 자세히 담아낸 이 그림은 가늘고 곧게 뻗은 수많은 흰 색의 물줄기와 바닥에 고이는 물을 푸른색으로 동시에 표현했는데, 괜히 어디선가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화려하고 선명한 색감, 특히 청량하고 독특한 푸른색도 인상깊었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호크니의 수 많은 판화 그림에서 나타나던 선들, 그리고 수영장에서 튀어오르는 물줄기, 쏟아지는 빗줄기, 스프링쿨러에서 나오는 물줄기를 비롯해 호크니의 그림 곳곳에 담긴 세밀하고 개성있는 선의 표현이었다. 나에게 호크니는 '선과 색을 정말 자유롭게 쓰는 예술가'로 기억될 것 같다.




마지막 전시관에 있던 대망의 호크니의 역작, <더 큰 그랜드 캐니언>(1988)을 보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아직 전시를 가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면 사전에 이 그림에 대한 존재를 모르고 가서 마주하셨으면 좋겠어서 그림은 첨부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느꼈던 그 장엄함을 노트북 화면이 아닌 그 곳에서 처음으로 느꼈으면 좋겠거든요.)


이 작품은 호크니가 그린 최초의 멀티 캔버스 작품으로, 60개의 캔버스를 이어붙인 작품의 길이는 7M, 높이는 2M이다. 크기에서 한 번, 강렬한 색에서 두 번 압도당하는 이 작품 앞에는 앉아서 관람할 수 있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정말 세심한 배려인 것 같았다. 나는 한참을 앉아서 그림 속 풍경에 빠져 있었는데, 사진같은 극사실주의 그림은 아니었지만 언젠가 그랜드캐년을 가게 된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호크니는 단순히 그랜드 캐년을 그린 것이 아닌 그랜드 캐년을 보고 느껴지는 감정을 이 공간에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 같았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거죠...?




이 밖에도 더 큰 멀티 캔버스 작품과 호크니의 움직이는 초점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작품들, 피카소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 판화와 추상 작품 등 정말 다양한 작품들이 존재한다. 내가 지닌 모든 감각을 깨워 호크니의 감각세계를 느껴보는 경험을 선사한 전시, 완전 추천이다.


우리는 그림 앞에서는 매혹당하려 하지 않고 이해하려 한다.
 오히려 엉뚱한 것에 매혹당하는 것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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