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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정 Jan 02. 2022

샤갈, 그의 인생을 엿보다

성서와 함께 만난 시인 '샤갈' : 샤갈 특별전 관람기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그의 대표작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술책에서 한 번쯤은 접했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나를 포함하여 그의 작품을 '동물이 날아다니는 그림', '사람들이 날아다니는 그림' 정도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중고등학교 이후 오랜만에 듣게 된 '샤갈'이라는 이름이 반가워 찾아간 이번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 은 단순히 그렇게만 기억하기에는 그의 그림이 너무 많은 이야기와 인생을 담고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전시였다.




전시의 주제가 '성서'라기에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샤갈이 어떻게 성경적인 장면들을 표현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관람하다 보니 그림 하나하나가 그의 삶을 제외하고 논할 수 없었다. 이 점에서 '윤석화' 님의 도슨트는 샤갈이라는 한 사람에 깊이 몰입하여 작품을 관람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전체적인 전시를 관람하는데 도움이 된 정보를 조금 덧붙이자면, 샤갈은 하시드파 유대교 출신으로 모든 사물에 신이 깃든 종교이기에 이것이 그의 그림 속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모티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세계대전을 거치며 나치에 의해 탄압을 경험하여 이 시기의 고통이 그림 속에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샤갈의 모티프(Motif of Chagalle) - 성서의 백다섯 가지 장면(105 scenes of Bible) - 성서적 메시지(Biblical Message) -  다른 빛을 향해(Towards Another Light)'로 이어지는 전시에서 가장 새로웠던 섹션은 1930년 볼라르에게 구약 삽화를 의뢰받아 그리게 된 105점의 에칭 연작을 다룬 두 번째 섹션이었다. '색채의 마술사'라고도 불리는 샤갈의 다채로운 작품을 두고 유족은 샤갈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작품으로 이 흑백 연작 105점을 꼽았다는데,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성경 이야기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작품을 보다 보니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마르크 샤갈, < 요셉과 그의 형제들, 1956 > / < 홍해를 건너다, 1931 >


'요셉과 그의 형제들' 작품에서 요셉을 질투했던 형제들에게 납치되는 요셉의 표정은 잔뜩 놀란 채 두려움에 휩싸여 있고, 그에 반해 형제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한 표정임을 알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홍해를 건너다' 작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기간 노예생활을 했던 애굽을 탈출하여 도망가던 중 홍해를 만나자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보여주시는 장면을 담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자 다시 바닷물로 뒤따라오던 이집트 군대를 전멸시키는 모습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당시의 긴박함을 느끼게 했는데, 샤갈이 얼마나 섬세한 화가인지 알 수 있었다.


이밖에도 100점이 넘는 연작을 보며 느낀 것은 샤갈은 글자를 이미지로 변환하는 작업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구도와 형상으로 눈앞에 표현해 낸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출애굽하는 그림, 예수의 죽음을 담은 그림은 무거움이 느껴져 더욱 집중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세계대전을 모두 겪고, 유대인으로서의 탄압을 받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그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어쩌면 '성서'는 유대인으로서의 그가 표현하고 싶은 '인간에 대한 희생과 사랑, 그리고 자유'라는 메시지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게 해주는 최고의 모티프가 아니었을까?




마르크 샤갈, < 푸른 다윗 왕, 1967 >


이번 전시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세 번째 섹션의 '푸른 다윗 왕' 작품은 꼭 직접 눈으로 보았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색을 담은 듯한 깊은 파란색으로 덮인(나의 표현력으로는 이것이 한계...), 그래서인지 차가운 색이지만 따뜻하게 느껴졌던 이 작품은 그 안에 담긴 색을 계속 보고 싶은 마음에 쉽게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유독 오래 서있었던 것을 보면 모두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 아닐까.


일렁이는 듯한 배경을 보고 물을 표현한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찰나, 도슨트 설명을 통해 눈물이 찬 눈으로 바라본 모습을 표현했음을 듣고 소름이 쫙. 샤갈을 시인이라고 하는 이유가 이것이었나!

샤갈 본인을 투영했다고 해석되기도 하는 다윗 왕의 모습에서는 편안한 표정과 자유롭게 날아가는 화면 구성이 눈을 사로잡았는데, 샤갈이 꿈꾸던 아무런 고통과 전쟁, 학살 없는 곳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고 싶은 삶을 떠올리며 눈물이 고인 것은 아니었을지 생각해 본다.



 

마르크 샤갈, < 강기슭에서의 부활, 1947 >


앞선 '푸른 다윗 왕'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색감의 작품이다. 분노가 느껴지는 듯한 이 작품은 샤갈이 히틀러에 의해 자신의 작품이 퇴폐 미술로 낙인찍혔던 시기에 그려졌다고 하는데, 당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듯 자신은 이젤에 못 박혔다고 말했을 정도라니 화가로서, 유대인으로서 상당한 좌절감을 느꼈을 것 같다.


상단에 가로로 표현된 예수 아래로 그가 애정을 지녔던 고향 비테스크의 모습과 그의 삶을 담은 여러 모티프들, 그리고 그림 중앙에 자세히 보면 보이는 복잡하게 얽힌 사람의 형상들까지 어느 하나 쉽게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나에게는 화가로서의 본분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샤갈의 복잡한 심경을 캔버스에 그대로 옮긴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그림 속 인물은 전부 하루에도 몇십 번씩 자신의 존재를 고민했던 시기에 그린 스스로의 모습일지도...?




전시를 자주 보러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 은 작품을 볼수록 그의 인생에 더욱 집중하고, 그림을 그릴 때의 감정을 생각해보게 되는 전시였기에 개인적으로는 여운이 꽤 길게 남았다. (전시장을 나서는데 작품보다 샤갈이라는 사람이 더 기억에 남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세션에서는 샤갈이 쓴 시와 그림을 함께 전시하여 그의 시인으로서의 모습도 마주할 수 있으니 새로운 샤갈의 모습이 궁금한 이들에게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Tip! 내가 기독교인 덕분에 두 번째 섹션을 비롯해 성서를 주제로 한 전시를 조금 더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던 것 같지만, 종교에 무관하게 도슨트와 오디오 가이드 등을 통해 샤갈의 인생과 그가 담은 성서의 내용을 함께 이해하며 즐길 수 있으니 그의 인생을 엿본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방문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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